국내 호텔 업계의 양대 산맥 호텔신라(008770)와 호텔롯데가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선 가운데 각기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주목된다. 호텔신라는 삼성그룹 네트워크에 발맞춰 비즈니스 숙박 수요를 겨냥한 안정적 확장 전략을 구사하는 반면 호텔롯데는 글로벌 브랜드 영향력 확대에 초점을 맞춰 공격적으로 확장에 나서고 있다.
먼저 호텔신라는 삼성그룹과 보조를 맞추는 노선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호텔신라가 해외에 처음 진출한 베트남 ‘신라모노그램 다낭’이다. 이 호텔은 삼성전자의 베트남 대규모 생산기지와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다. 현지 주재원과 협력사 임직원, 삼성 계열사 워크숍 및 휴양 수요를 염두에 둔 전략적 배치라는 분석이다. 단순히 관광객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비즈니스 수요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진출이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사실상 삼성그룹의 해외 확장과 맞물려 있는 셈이다.
향후 계획 역시 삼성그룹과의 연계성이 뚜렷하다. 호텔신라는 중국 진출을 추진 중인데 삼성전자의 유일한 해외 메모리반도체 생산기지가 위치한 시안에 신라모노그램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 다른 진출 후보지 옌청은 삼성 협력사 위주의 한국 기업들이 몰린 지역이다. 비즈니스 수요를 겨냥한 신라스테이 개장 계획이 검토되고 있다. 호텔신라는 삼성전자가 미국에서의 연구개발(R&D)과 투자를 집중하는 핵심 거점인 실리콘밸리에도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호텔신라의 전략은 삼성그룹이 구축한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흡수하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외부 변동성보다는 내부 안정성을 택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 호텔 업계의 고위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해외 네트워크와 맞물려 진출 지역을 정하는 만큼 초기 리스크가 적다”며 “호텔신라만의 브랜드 색깔을 어떻게 녹여낼지가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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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롯데는 공격적인 확장 행보를 보이며 판을 키우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 7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 ‘더 뉴요커 바이 롯데호텔’을 프랜차이즈 형태로 선보였다. 이는 호텔롯데의 자체 브랜드를 전 세계에 심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다. 뒤이어 러시아 흑해 연안 관광지 소치에도 두 번째 프랜차이즈 호텔이 곧 문을 열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그룹 수요에 기대지 않고 세계 시장에서 독자적 입지를 구축하려는 전략이 뚜렷하다. 롯데호텔이 ‘글로벌 톱 호텔 체인’을 목표로 내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롯데호텔의 공격성은 이전부터 나타났다. 앞서 2015년 9000억 원을 들여 뉴욕의 ‘더 뉴욕 팰리스 호텔’을 인수하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이후 꾸준히 해외 확장을 모색하며 국내 호텔사 중 브랜드 확장에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왔다. 최근 일본 롯데홀딩스와 조인트벤처(JV) 설립을 발표한 것도 그룹 영향력을 활용하는 것이지만 해외 확장에 진심인 호텔롯데의 전략을 반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내 거점 확보와 동시에 아시아 시장 확장의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물론 롯데그룹 차원의 비즈니스 숙박 수요를 흡수하는 움직임도 존재한다. 실제로 롯데 계열사들이 많이 진출한 베트남 하노이에는 ‘롯데호텔 하노이’가 자리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수익 기반일 뿐이며 본격적인 전략의 무게는 글로벌 브랜드 영향력 확대에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관광 업계 전문가는 “롯데호텔은 대규모 인수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보한 드문 국내 호텔사”라며 “일본 롯데홀딩스와 손잡은 것도 지역 거점을 확실히 하려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양사의 전략은 안정성 추구와 공격적인 확대로 뚜렷한 대비를 보이지만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안정적 수요 기반을 확보한 뒤 브랜드 확장을 꾀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호텔신라 역시 그룹 의존형 전략으로 시작해 시간이 지나면 향후 공격적 행보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두 호텔 모두 안정성과 공격성을 적절히 조합한 균형 전략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양 사가 운영하는 면세점 사업이다. 호텔 사업은 면세점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면세점 실적이 뒷받침돼야 호텔 투자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최근 신라면세점이 부진하면서 호텔신라가 공격적으로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2분기 호텔신라 면세 부문은 11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다. 반면 롯데면세점은 반등에 성공하며 호텔롯데의 투자 여력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결국 면세점 사업의 성패가 호텔의 해외 전략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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