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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금융산업이 후퇴하고 있다

김영필 금융부장

금융감독체계 개편안 시장 발전에 역행

금융사 시어머니만 늘어 경영 부담 증가

신산업 정책 뒷받침할 골든타임도 놓쳐

기관간 정보공유 등 부작용 최소화 필요





9일 금융감독원 직원 700여 명이 검은 옷을 입고 시위를 벌였다. 이재명 정부의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과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에 대한 반대가 이유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굳은 표정으로 직원들을 지나쳐 출근했다. 전날 “안타깝다”고 했던 만큼 더 할 얘기가 없었을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 감독 체계 개편이 한국 금융 산업을 후퇴시킬 것이라고 본다. 확정적인 표현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당정이 제시한 안은 금융위원회의 정책 기능을 떼내 재정경제부로 넘기고 금융감독위원회를 부활시켜 감독만 전담하는 것으로 돼 있다. 또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분리해 소비자 업무를 전담하게 하는 구조다.

시위에서 금감원 직원들은 “감독 업무와 소비자 보호를 따로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금감원 직원들은 얘기하지 않았지만 금융 정책과 감독도 별도로 볼 수 없다. 핵심은 운용이다. 정책(액셀러레이터)과 감독(브레이크)을 같이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이 있지만 자동차에는 두 장치가 함께 있다. 상황에 따라 적절히 번갈아 밟으면서 차를 움직이면 된다. 누가 운전하느냐가 중요하지 액셀과 브레이크가 같이 있는 게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산업과 감독을 떼놓으면 각자 더 잘될 것 같지만 현실은 반대다. 꼬일 대로 꼬인 석유화학 구조조정을 보자. 은행의 건전성을 생각해야 하는 금감위는 여신 회수가 최우선이고 재경부는 석유화학이 기간산업으로서 갖는 의미와 국내 경기 및 고용을 같이 봐야 한다. 기관 간 방향성이 서로 다르다. 금소원은 개인들이 투자한 상품이나 채권 보호만 따지게 된다. 기업이 망하든, 산업 경쟁력이 사라지든 소비자만 피해를 보지 않으면 그뿐이다. 이 과정에서 2002년 카드 사태나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불거졌던 책임 떠넘기기와 감독 사각지대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 시기에 대한 반성으로 금융 정책과 감독을 금융위로 합쳤던 것 아닌가.



특히 4명의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다. 신사업을 하거나 문제가 터졌을 때 재경부와 금감위·금감원·금소원을 모두 찾아가야 한다.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도 두 곳이다. 서울과 세종을 오가며 챙겨야 할 ‘영감님’들도 두 배, 세 배로 늘어나게 됐다. 경영에 신경 쓰기보다 “길바닥에서 버리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됐다”는 푸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금융 산업이 발전한다면 그것은 기적에 가깝다.

국가 경제에도 치명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종말을 선언했다. 브레턴우즈 체제를 포함해 80년의 자유무역 질서가 끝난 것이다. 보호무역주의의 귀환과 글로벌 대전환 시기에 필요한 것은 신산업 정책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 도구 가운데 하나가 금융인데 이에 대한 계획과 준비가 어려워졌다.

조직 분리를 위해서는 9000개가 넘는 법조문을 개정해야 한다. 지금은 국가 차원의 큰 그림보다 부처 개편 과정에서 터질 수 있는 사고를 막는 게 우선이다. 벌써부터 금융위 안팎에서는 소상공인 지원과 배드뱅크 설립 등 새 정부의 정책에 힘이 빠질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조직 개편이 이뤄지고 새 구성원들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 안팎의 시간이 걸릴 것이고 한국은 기업 지원과 생산적 금융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글로벌 경쟁자들은 저만치 앞서나가 있을 것이다.

정부의 섣부른 금융 감독 체계 개편의 대가는 국내 금융 산업과 경제의 몫이다. 이제라도 결정을 뒤엎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부작용이라도 최소화해야 한다. 감독 기관 간 네거티브식 정보 공유와 공동 검사, 감독 정책 협의체를 검토해야 한다. 금감원도 “취업 사기”라는 식의 접근보다 금융 산업 발전과 금융 안정, 소비자 보호라는 3개의 큰 틀 안에서 이번 사안을 접근했으면 한다.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문제도 중요하지만 한국 금융 산업의 균형 있는 성장과 발전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에 대한 논의부터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다. 지금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한국 금융은 지금보다 더 뒷걸음질 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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