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5000 고정밀 국내 지도 반출을 원하는 구글이 한국 정부의 보안 강화 요구를 추가로 받아들여 주요 보안시설의 좌표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한·미 통상 실무 협상과 맞물려 한국 정부가 구글의 입장 변경을 발판으로 지도 반출 여부를 통상 카드로 쓸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단 정부는 이에 대해 국가 보안과 산업 이슈를 함께 검토한 뒤 결정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크리스 터너 구글 대외협력 정책 지식 및 정보 부사장은 9일 서울 강남구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 영역의 좌표 정보를 구글 지도의 국내외 이용자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조치하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구글은 지난달 5일 한국 내 민감 시설에 대해 가림 처리하겠다고 밝혔으며 이번 발표는 이후 보안을 강화하라는 한국 정부 측의 요구에 대한 구글의 추가 수용이다. 터너 부사장은 이밖에 “구글은 한국 정부와의 협력을 지속하는 한편 티맵모빌리티 등 국내 기업과의 파트너십도 강화할 것”이라며 “필요한 경우 이미 가림 처리된 상태로 정부 승인된 위성 이미지를 국내 파트너사로부터 구입해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구글은 올해 2월 18일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에 1대5000 축적의 국내 고정밀 지도를 해외 구글 데이터센터로 이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했다. 2011년과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다. 국토교통부, 국방부 등 참여하는 ‘측량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는 처리 기한이 도래했던 5월 처리 기한을 60일 유예한 이후 지난달 또다시 11월 까지로 60일 연장했다. 지도 국외 반출 금지 문제는 미국 정부가 한국의 대표적인 디지털 비관세 장벽으로 꼽는 분야인 만큼 당시 한·미 정상회담 이후로 결정을 미룰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1대 2만5000 축척보다 자세한 고정밀 지도는 군사나 보안상의 이유로 해외 반출을 금지해왔다. 애플 역시 2023년 같은 지도의 국외 반출을 신청했지만 우리 정부의 반대 기조에 막힌 바 있다. 구글과 애플은 다만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올 들어 잇따라 지도 반출을 재신청하며 한국 정부를 설득에 나선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해외 국가의 규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바탕으로 통상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일에는 최근 유럽연합(EU) 구글에 35억 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한 점을 두고 “차별적인 조치”라며 보복을 예고하기도 했다.
구글의 이날 좌표 비공개 요구 수용 발표도 한국과 미국 협상단이 통상 실무협상을 진행하는 가운데 나왔다. 지난달 진행된 한미 관세협상과 정상회담에서 고정밀 지도 반출 건은 의제로 다뤄지진 않았고, 통상 실무 협상도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가 중심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업계에서는 지도 반출 카드는 양측 모두가 언제든 활용 가능한 통상 협상 카드라고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협상 중 구글의 이런 발표는 미국 정부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지도 문제는 (구글이 아닌) 한국 정부가 주도권을 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구글이 정부의 요구 조건을 모두 수용한 것이 아닌 만큼 추가 협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정밀 지도가 국내가 아닌 해외 데이터센터로 반출 되는 이상 국가 핵심 인프라의 위치 등 안보와 직결된 정보에 대한 정부 통제권이 약화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유영석 구글코리아 커뮤니케이션 총괄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데이터 센터를 특정 지역에 설립하는 건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가 원하는 즉각적인 대응을 위해 책임자를 두고 핫라인을 거쳐 우려 사항을 적기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정부와 얘기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국토교통부는 “구글이 정부의 좌표 표시 금지 조건에 대하여 수용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서버 설치 등 사후보안관리 방안에 대해 구글 등과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정부 내 관계기관이 긴밀하게 협의 중에 있으며 국가 안보 및 산업 등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반출 허용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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