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규제로 자국 땅에 들이지 못하는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현지화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초고난도 기술 결합체인 EUV 노광기를 양산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지 곳곳에서 자립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어 주목된다.
8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유력 반도체 연구기관인 중국과학원(CAS)과 장장(Zhangjiang) 연구소가 올 들어 EUV 빛에 관한 새로운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중국과학원과 장장 연구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EUV 노광기를 양산할 수 있는 ASML의 EUV보다 전력이 4배 더 높은 빛을 생성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레이저플라즈마(LPP)로 생성한 기존 EUV는 3나노 이하 반도체 공정을 위한 전력을 제공하지 못한다"며 "우리가 개발한 새로운 기술로 현재 EUV 전력인 500W보다 높은 2kW(2000W) 이상을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광 공정은 반도체용 웨이퍼 위에 빛으로 회로를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공정이다. EUV 빛은 기존 노광 공정에 쓰였던 불화아르곤(ArF), 불화크립톤(KrF) 빛보다 더 얇은 회로를 균일하고 깔끔하게 찍어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부터 적용됐다.
다만 EUV의 문제도 있다. 빛 속의 입자인 '광자'가 다른 광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해 노광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지금보다 전력을 4배 정도 더 올리면, 노광을 더욱 정확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정 시간까지 절약할 수 있다고 중국측 연구원들은 주장했다.
중국 연구소는 ASML이 쓰는 LPP 방식을 탈피해 자유전자레이저(FEL)와 에너지 회수형 선형가속기(ERL)을 결합해서 EUV를 생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이 중국 현지에 수출을 금지하고 있는 ASML 장비의 특허를 우회하는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업계에 따르면 CAS와 장장 연구소의 연구개발(R&D) 뿐 아니라 중국 곳곳에서 EUV 노광기 자립화를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화웨이 등 중국 최대 IT 업체들이 EUV 노광기 국산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고, 최근에는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EUV 노광기 사진이 노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국이 EUV 기기 국산화에 적극적인 것은 미국의 제재로 2019년부터 ASML의 EUV 시스템을 아예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반도체 굴기’를 통해 칩 자립화를 꿈꾸는 중국은 ASML 기기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절실한 시점이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EUV 노광기를 국산화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EUV 노광기는 ASML 뿐 아니라 독일 최고의 렌즈 회사 칼자이스, 미국의 레이저 회사 트럼프 등 세계 최고의 광학계 회사들이 모여 만든 장비인 만큼 난이도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의 지속적인 연구개발 시도와 천문학적 투자가 있다면 시간이 문제일 뿐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네덜란드의 EUV 노광기를 따라잡으려면 최소 10년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EUV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유의미한 투자를 진행하지 않는 것보다는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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