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취임 후 첫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가장 강조한 단어는 ‘내란’이었다. 정 대표는 내란을 26차례나 언급하며 ‘내란 청산’을 무엇보다 내세웠다. 국민의힘을 향해서는 “해산 심판 대상이 될지 모른다”며 엄포를 놓았고 ‘협치’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정 대표가 불과 하루 전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손을 맞잡았으나 하루 만에 협치에 대한 기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다. 정 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한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다”라며 “권력을 사유화하고 분단을 악용하고 정의의 가면 뒤에서 저질렀던 악행을 청산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내란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내란 청산의) 시작”이라며 “3대 특검법 개정안을 신속히 처리해 무너진 민주주의와 헌법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비상계엄 때 불법 명령에 저항한 군인들이 있다”며 “그들의 정신이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군인복무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다시는 책임을 회피한 역사가 현재의 우리를 괴롭히지 않도록, 한강 작가의 말처럼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도록 지연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며 “‘독립기념관법’ 개정으로 독립 정신의 훼손을 막겠다. 민주유공자법’ 제정으로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도 기억하겠다”고 덧붙였다.
정 대표는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까지 내란당의 오명을 끌어안고 살 것인가”라며 “이번에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 정당 해산 심판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정 대표의 입에서 ‘협치’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전날 오찬에서 합의한 ‘민생경제협의체’에 대해 “실질적 성과를 내는 협의체가 돼야 한다”고만 했다.
정가에서는 정 대표가 오찬 하루 만에 대야 강공 노선으로 회귀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 정 대표의 강경 발언에 연설 도중 곳곳에서 국민의힘 의원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일부 의원들은 항의의 표시로 본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장 대표는 연설 직후 기자들에게 “너무나 실망스럽다. 이 대통령이 정 대표에게 여당이 더 많은 것을 가졌으니 양보하라고 했는데 연설 내내 국민의힘을 없애겠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며 “어제 협치를 위해 손잡고 약속했던 것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이런 정치는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대통령은 협치를 원하지만 정 대표는 강경 일변도를 고집하는 모습”이라며 “이 대통령의 의중이 당의 행보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연설에서 검찰 등 3대 개혁 의지도 천명했다. 검찰 개혁과 관련해서는 “검찰 부패의 뿌리는 수사권과 기소권 독점”이라며 “공소청은 법무부에,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에 두고 검찰청은 폐지하겠다”고 했다. 당이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대법관 증원에 관한 우려에는 “반대할 일이 아니다”라며 “법원 스스로 개혁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짚었다. 언론 개혁에 관해서는 “‘가짜 정보 근절법’ ‘언론 중재 및 피해구제법’으로 우리 국민들을 보호하겠다”며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게 아니라 극소수의 가짜뉴스를 추방하는 것”이라고 변호했다.
정부의 성장 정책 뒷받침을 위한 입법 지원도 약속했다. 그는 “정부의 ‘인공지능(AI) 3대 강국’ 목표에 맞춰 로봇·자동차·조선·가전과 반도체 같은 주요 산업을 중심으로 AI 대전환을 추진하겠다”며 “‘AI 데이터 진흥법’을 제정해 AI 데이터센터를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민생과 관련해서는 “성실상환자 324만 명에 대한 신용 사면과 새출발기금 지원 확대도 뒷받침하겠다”며 “소상공인과 취약 계층의 채무 부담을 덜어내 제도권 안으로 다시 들어오게 돕겠다”고 했다. 아울러 “임대료 편법 인상을 막기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 은행의 과도한 가산금리 산정을 방지하기 위한 ‘은행법’ 개정, 가맹점 사업자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가맹사업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