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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야에 휘둘리는 에너지 대계…정부, “신규 원전 1기 취소”

정부, 11차 전기본 수정안 마련

신규 건설 4기→3기로 축소변경

전문가 "국가대계 정치권에 휘둘려”

부산 기장군 해안가에서 국내 최초로 원전 해체 작업이 시작된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오른쪽)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오른쪽부터 고리1·2·3호기. 연합뉴스




정부가 야당의 반대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 중 1기를 줄이고 태양광 발전을 늘리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원전 4기 건설 계획을 바꾸지 않으면 국회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하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수정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가 에너지 정책이 정치권에 과도하게 휘둘리고 있다며 원전 건설을 줄일 경우 어렵게 복원한 원전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본지 1월 6일자 1·3면 참조

7일 정치권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조정안을 전달하고 실무 협의에 돌입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말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발표하고 발전 용량이 총 4.2GW인 대형 원전 3기와 0.7GW 분량의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포함해 원전 총 4기를 2038년까지 새로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까지 10.6GW 규모의 신규 설비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를 위해 원전 4기로 필요 설비 용량의 절반가량을 충당하고 전체 발전원 중 원전 발전량 규모와 비중을 2038년까지 각각 249.7TWh와 35.6%로 늘린다는 것이 실무안의 골자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 장기화에 원전 정책이 동력을 잃자 야당은 원전을 줄이고 신재생 발전을 늘리지 않으면 11차 전기본을 보고받지 않겠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전기본은 산업부 산하 전력정책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되지만 그 전에 반드시 국회 산자위 보고를 거쳐야 한다. 국회 보고가 사실상 전기본 확정을 위한 최종 관문으로 정부는 지난해 말까지 보고를 마칠 예정이었지만 비상계엄 및 탄핵 사태에 일정이 틀어졌다.



정부는 야당이 발목을 잡자 현실적인 방안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사정에 정통한 에너지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야당이 끝까지 보고를 받지 않으면 2038년까지의 전력망 계획과 원전 등 모든 게 무너지게 된다”며 “SMR 경쟁에서 더 늦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 입장에서는 고육지책을 쓴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부는 수정안을 통해 2038년 원전 발전량 규모를 기존보다 0.68% 줄인 248TWh로 축소하는 대신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발전 규모를 기존 204.4TWh에서 206.2TWh로 0.88% 늘리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도 기존 대비 7.17% 낮춘다. 이 경우 2038년 원전 비중은 35.6%에서 35.1%로, LNG 비중은 11.1%에서 10.3%로 쪼그라든다. 반면 재생에너지 비중은 29.1%에서 29.2%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기본 자체가 무산되면 에너지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다”며 “11차 전기본이 일단 조속히 확정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산자위 야당 간사인 김원이 민주당 의원은 “새로운 조정안이 나왔으니 조만간 민주당 산자위원들과 비공개 정책 간담회를 열어 전향적으로 논의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발전 업계에서는 국가 에너지 정책의 뼈대가 되는 전기본이 정치 논리에 휘둘려 바뀌는 나쁜 선례를 또 한번 기록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언제든 또다시 탈원전이 추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원전 업계는 불안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산업부가 탈원전 때처럼 손바닥 뒤집듯 에너지 정책을 바꾼다는 비판도 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에너지 문제에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국회에는 전기본 수립 시 국회 보고 절차를 국회 동의로 바꿔 전기본에 대한 국회 권력을 강화하자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정부 안팎에서는 국회가 행정부의 업무까지 간섭하는 수준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원전은 짓는 데 오래 걸리는 만큼 (11차 전기본이) 무산되는 것보다는 통과되는 것이 낫다”면서도 “다만 15년짜리 전력 수급 계획을 만들 때 원전을 그 정도(4기) 규모로 넣은 이유가 있을 것이고 만약 실무안 발표 이후 바뀐 것이 있다면 인공지능(AI) 때문에 오히려 전력 수요가 더 늘어난 상황일 텐데 재생에너지로 전력 수요를 충당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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