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를 오가는 건 기이한 생김새의 각종 어종만이 아니다. 국제통신의 99% 정도를 감당하는 해저케이블이 바다 깊이 깔려 전 세계에 통신을 전송하고 있다. 지구 위를 도는 인공위성이 방송과 GPS 등에 주로 이용된다면 해저케이블은 국제전화·금융거래·전자상거래·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터넷검색·클라우드서비스 등 국가 간 각종 통신과 인터넷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데이터 시대의 핵심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해저케이블이 갑자기 끊긴다면 어떨까. 통신·인터넷 장애는 물론 각종 데이터 전송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며 발생할 혼란은 짐작하기 어려울 수준이다. 해저케이블이 단순한 물리적 연결의 의미를 넘어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이유다. 실제 매년 100건 이상의 크고 작은 해저케이블 파손 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고의로 훼손되고 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연말과 올해 초 유럽 발트해와 대만해협 등지에서 확인된 각종 해저케이블 절단 사고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한국의 경우 해저케이블 대부분이 중국, 일본, 대만과 연결돼 있어 지진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해저케이블은 절단뿐만 아니라 감청에도 취약하다. 대만만 해도 중국의 잠재적 위협을 의식해 중국을 우회하는 통신망을 구축하고 대체 네트워크를 개발하는 식으로 대안을 찾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정책 연구를 진행 중”이라는 답변만 내고 있다. 더구나 계엄 정국에서 사실상 손을 놓았다. 데이터 안보 문제를 떠나 인공지능(AI) 서비스 이용이 급증하며 해외 트래픽은 날로 늘어나는 추세인데 계엄 이후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준비해서 맞는 미래와 떠밀려서 맞는 미래는 천양지차다. 디지털 시대의 안보는 단순히 영토 방위만으로 지켜낼 수 없다. 올 2월 미국이 구글 등 자국 빅테크에 대한 해외 규제를 ‘비관세장벽’으로 규정하며 관세 협상 카드로 국내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을 압박하고 있는 점은 또 다른 차원에서 데이터 안보, 데이터 주권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국민 세금으로 구축된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중요한 국가 자산이다. 하필 이를 요구하는 곳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서비스를 운용 중인 구글이라는 점은 얄궂다. 구글은 한국에서 연간 수조 원대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법인세 납부는 수백억 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데이터 자원을 표적 삼은 패권국이나 글로벌 빅테크의 횡포를 비난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지도 반출을 막아서는 게 사용자 불편과 혁신 저해, 한국의 디지털 갈라파고스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마냥 틀렸다고 볼 수도 없다. 보다 중요한 건 종합적·전략적 판단이 있었느냐는 점이다. 해저케이블의 데이터 안보 위협 문제가 제기된 게 수년 전인데 마땅한 대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정책 당국의 모습 또한 누차 봐온 풍경이다.
조기 대선을 맞아 부처 개편 논의가 점증하고 있다. 제도나 시스템보다는 운영상 문제가 크다는 판단이지만 필요하다면 시대 흐름에 발을 맞춰 거버넌스를 재구성할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특히나 변화의 속도가 빠른 ICT 분야는 시대의 흐름에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방송 이슈에 가려져 온 데이터 안보, 데이터 주권 문제도 보다 명확하게 지혜를 모아가며 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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