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금융투자사업에 시큰둥 하던 은행 중심 지주사
KB금융 선전포고...‘증권 자회사’ 육성 촉매제로
‘증권업 명가’ 미래에셋·한투와 정면승부 불가피
KB금융지주의 현대증권 인수는 국내 금융투자 업계에 은행과 증권의 만남을 통한 새로운 투자은행(IB)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다. NH농협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 등 이미 증권사를 자회사로 거느린 은행계열 금융지주사들도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기세다. 전문가들은 KB금융의 현대증권 인수로 금융백화점으로 불리는 유니버설뱅크가 한국형 글로벌 IB의 새 모델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KB금융의 현대증권 인수는 증권사 간 순위 변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동안 국내 금융투자 업계에서 증권사의 대형화와 해외진출 등 글로벌 IB 전환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 거의 배제됐던 은행 중심의 금융지주사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실제 금융당국이 지난 2013년 한국판 골드만삭스 양성을 목표로 종합금융투자사업자제도를 도입할 당시 은행계열 증권 자회사들은 별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증권사에 한해 기업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의 100%까지 풀어줬지만 이미 총자본금 20조원 이상의 은행을 핵심 계열사로 보유한 지주사들에는 흥미 없는 게임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금융지주 계열사 가운데 NH투자증권만이 홀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KB금융이 이번에 종합금융투자 자격을 취득한 현대증권을 인수하면서 다른 지주사들에 자극을 주며 은행의 증권업종 진출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은행 중심 금융지주사들은 자산이나 자본 규모로는 일본의 노무라그룹·다이와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보수적인 은행 DNA 탓에 증권업 분야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않았다”며 “KB금융의 현대증권 인수는 잠자고 있던 은행 지주사들의 경쟁심리를 깨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계열 지주사들은 아직 시작 단계지만 은행·증권업 결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부터 금융지주들은 서울 강남과 강북 등 거점 지역에 은행 및 증권계열사를 한데 모아 복합점포를 설립했다. 투자일임업 경험이 없는 은행의 단점을 증권사가, 증권사의 판매채널이 약한 점을 은행이 보완하는 방식이다. 하나금융은 자산관리 분야에 강점인 하나금융투자를 필두로 대형 복합점포를 개설했고 신한금융은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를 한 곳에 모은 신한PWM 점포로 고객들에게 다변화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KB금융은 현대증권 인수로 취약했던 리테일과 자산관리 분야를 보완할 것으로 보인다.
총자산이 수백조원인 은행계열 지주사들이 증권업 투자를 늘리면서 미래에셋대우와 한국금융지주 같은 증권업 기반 그룹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지난해 말 대우증권 인수 직후 “오는 2020년까지 자기자본 10조원을 달성해 미래에셋대우를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IB로 만들겠다” 는 포부를 밝혔다. 이에 대해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순수 IB이라면 일본 노무라를 생각할 수 있는데 미래에셋대우증권은 그쪽 모델로 나가는 듯하다”며 “KB금융은 은행의 자본력과 고객기반을 활용하는 유니버설뱅크 모델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진정한 한국형 글로벌 IB가 어떤 모델이 될 것인지를 놓고 KB를 내세운 은행계열 지주사들과 미래에셋대우·한국금융 등 증권업 기반의 지주 간 치열한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며 “두 진영 간 대결을 통해 국내 증권시장의 판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 중심의 지주사들이 증권업을 강화할 때 보수적인 은행 DNA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NH금융지주의 우리투자증권 인수 당시 임종룡 회장(현 금융위원장)이 “증권 업무에 은행은 개입하지 말라”고 언급하며 합병 진행속도가 빨라졌다는 일화는 은행과 증권 간 벽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IMF 위기를 거친 후 국내 은행업은 4대 금융지주사로 재편됐지만 결국 이들은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안정적인 사업에 안주하며 출혈경쟁을 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며 “은행과 증권 간 이종결합을 할 때는 증권업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며 양측이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낼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민우·박시진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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