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의 무게중심이 빠르게 바이오로 옮겨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력에 휘둘리는 ‘잡주’ ‘작전주’로 취급 받던 제약·바이오 종목이 이제는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권을 장악하며 시장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시총 상위 20개 기업 가운데 12곳이 제약·바이오 기업이다. 시총 1위 알테오젠(25조 원)을 비롯해 펩트론(7조 원), 파마리서치(6조 원), 리가켐바이오(5조 원), 에이비엘바이오(5조 원), HLB(5조 원)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휴젤·클래시스·케어젠 같은 미용·의료기기 업체와 삼천당제약·코오롱티슈진·보로노이 등 치료제·유전자치료 기업까지 합류하며 코스닥 상위권의 절반 이상을 ‘바이오 클럽’이 차지했다. 반면 전통 제조·기술 기업은 에코프로비엠·에코프로·리노공업·레인보우로보틱스·이오테크닉스 등 소수에 그쳐 ‘코스닥은 바이오’ 지형이 굳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셀트리온이 코스피로 이전한 뒤 한동안 바이오는 코스닥의 주도주 자리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팬데믹을 거치며 산업 위상이 높아졌고 최근에는 기술이전 계약과 글로벌 임상 진입, 투자자 수요 확대가 맞물리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바이오 기업들의 실적은 잇따라 호조를 보이며 주가 상승을 견인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기대감에만 의존하던 ‘테마주’에서 벗어나 실적과 성과를 내는 ‘성장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도 알테오젠(1.71%), 파마리서치(1.29%), 에이비엘바이오(7.85%), 리가켐바이오(1.94%) 등 주요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다.
알테오젠은 올 상반기 매출 1023억 원, 영업이익 606억 원으로 모두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기반 플랫폼의 글로벌 파트너 임상 진척에 따라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수익이 본격화된 결과다. 기술 용역 수익 비중은 전체 매출의 80%를 넘었다. 주가는 1년 새 55% 뛰었다. 파마리서치는 ‘리쥬란’ 브랜드를 앞세워 코스닥 스타주로 부상했다. 상반기 매출은 2574억 원으로 전년 대비 63%, 영업이익은 1006억 원으로 75% 증가했다. 최근 1년 새 주가가 250% 이상 치솟았다.
에이비엘바이오도 올해 4월 GSK와 최대 4조 1000억 원 규모 기술이전 계약을 맺으며 반기 매출 779억 원, 영업이익 117억 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주가는 1년 새 270% 이상 올랐다. 리가켐바이오 역시 오노약품공업과의 기술수출 마일스톤 수익으로 반기 매출 842억 원을 올리며 주가가 1년 새 80% 이상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올 상반기 전통 제약사가 다소 소외됐지만 펩트론·리가켐바이오·에이비엘바이오 같은 코스닥 바이오텍들은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올해는 실적이 ‘상저하고’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4분기에는 굵직한 글로벌 학회 일정이 이어져 투자 모멘텀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9월 한 달만 보더라도 세계폐암학회(WCLC, 6~9일), 미국갑상선학회(ATA, 10~14일) 등 국제 학회에서 임상 데이터가 발표된다. 알테오젠은 23일 ‘키트루다SC’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PDUFA)을 앞두고 있으며 HLB도 임상 2상 결과 공개를 예고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도 업계에 호재다. 금리가 낮아지면 중소형 바이오기업의 유상증자, 인수합병(M&A), 기술수출 여건이 개선되고 정부의 규제 완화, 세제 지원까지 더해지면 성장세는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상반기 관세 등 악재와 모멘텀 부재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반기에는 기저효과에 따른 반등 여력이 크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바이오를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언급한 것도 정책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