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280㎞ 길이의 초고압직류송전망(HVDC) 건설 사업이 우여곡절 끝에 일단 한고비를 넘었다. 도시 미관을 해친다며 송전망의 마지막 관문인 동서울변전소 건립을 반대해왔던 하남시가 ‘조건부 허용’으로 입장을 바꾸면서다. 다만 앞으로도 추가 건축 인허가 과정이 더 남아 있어 사업이 추가 지연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하남시는 26일 ‘2025년 제7회 하남시 공공디자인심의위원회’를 개최한 결과 한국전력공사가 제출한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에 대한 경관 심의를 조건부 의결했다고 밝혔다. 하남시는 지난해 9월 한전이 처음으로 경관 심의를 신청한 후 두 차례에 걸쳐 반려했는데 세 번째 시도 만에 한전의 제안을 수용한 것이다.
하남시는 경관 심의 의결에 대한 조건으로 △주민 수용성 강화 △120명 이상 근무할 수 있는 사무실 조성 △주민 편의 시설을 포함한 복합 사옥 건립을 내세웠다. 앞서 한전은 동서울변전소 증설과 함께 복합 사옥을 짓겠다고 하남시에 제시한 바 있다. 복합 사옥에는 한전 동서울지사, 한전KPS 등 6개 유관 기관 직원이 상주하는 사무실과 함께 HVDC 엔지니어링센터와 연구·교육·전시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하남시 관계자는 “한전은 주요 전력 설비를 건물 안으로 이전하고 외관 디자인에는 주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했다”며 “이 같은 계획을 충분히 이행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국가 전력망 구축을 방해하던 경관 심의 문턱을 넘은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 착공에 이르기까지 절차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우선 하남시가 주민 수용성을 주요 조건 중 하나로 내걸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하남시가 인허가 과정에서 추가적인 문화·편의 시설 설치를 요구할 수 있는 구조다. 실제 이현재 하남시장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전아트센터’를 예로 들며 “주민들이 확실히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을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은 국가적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프로젝트”라며 “지방자치단체가 이것저것 요구하며 사업을 지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복합 사옥에 대한 인허가 동서울변전소에 대한 인허와 연계될 경우 기본적인 행정절차를 거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진행했던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 인허가는 복합 사옥 건설을 전제하지 않고 진행됐기 때문이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복합 사옥은 인허가 절차가 막히면서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사후에 제시된 안”이라며 “복합 사옥에 대한 인허가를 새로 받아야 한다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관리 계획 변경 등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황에 따라 인허가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거치는 데만 1~2년 가까운 시간을 더 허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전은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 공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시급한 문제라고 강조한다. 수도권 전력 수요를 고려하면 당장 공사를 시작해 2027년 말까지는 사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서울변전소는 경기도 지역 주민은 물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국가 기반 산업 시설에 전기를 공급하는 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예정이다. 한전에 따르면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 사업 지연에 따라 추가로 발생하는 연간 전력 구입비는 3000억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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