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요금 인상과 이에 따른 산업 경쟁력 약화는 독일만의 고민이 아니다. 국내 기업들 역시 미국·중국·일본 기업들과 경쟁하는 동시에 최근 몇 년 새 급증한 전기료 부담까지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산업계의 자체적인 원자력발전 운영·전력 거래 등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5일 한국전력공사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5월 산업용 전기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1.9% 줄었다. 산업용 전기를 사용하는 개별 업체들이 지난해보다 전기를 덜 썼다는 의미로 한전의 산업용 전기 판매량은 지난해 11월부터 7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산업용 전기 판매량이 줄어든 배경에는 경기 부진뿐만 아니라 원가 부담이 급증한 요인도 있다. 한전은 지난해 10월 말 주택·일반용 전기요금을 동결하는 대신 산업용 전기요금을 ㎾h(킬로와트시)당 평균 9.7% 올렸는데 이 같은 인상이 제조 업체를 비롯한 산업계에는 고스란히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 것이다.
실제로 대규모 공장 및 산업 시설에서 주로 사용되는 산업용(을) 고압B·C 전기요금은 2022년 ㎾h당 105.5원에서 현재 185.5원으로 약 3년 만에 75.8%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정·사무실 등에서 쓰는 일반용 전기요금이 31.4% 올랐다는 점과 비교하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률은 일반용의 2배를 뛰어넘는다. 산업용(을) 고압B·C뿐 아니라 산업용(을) 고압A, 중소기업이 주로 쓰는 산업용(갑) 전기요금도 2022년 대비 각각 64.9%, 46.4%씩 상승했다.
이에 일부 산업계는 원전을 통해 생산된 값싼 전기를 민간기업이 직접 끌어다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경우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탄소 중립 과제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스코홀딩스는 이달 1일 경북도 및 경주시와 손잡고 소형모듈원전(SMR) 1호기 유치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지방자치단체는 SMR 1호기를 경주에 유치한 뒤 포스코홀딩스의 투자를 일부 받아 국가산단을 조성하고 포스코홀딩스는 향후 SMR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식이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탄소 중립 달성 수단인 수소환원제철을 가동하려면 대규모 전력을 24시간 공급할 수 있는 무탄소 전원이 필요하다”며 “결국 원전밖에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이처럼 직접 원전을 운영하거나 원전 운영사와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해 공장·데이터센터 등에 값싼 무탄소 전력을 조달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 메타는 6월 초 미국 최대 원전 사업자 콘스텔레이션에너지가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운영하는 원전의 전력을 2027년 6월부터 20년 동안 구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콘스텔레이션은 지난해 9월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의 상업운전을 재개해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센터에도 20년간 전력을 공급하기로 한 바 있다. 아마존은 2039년까지 500만 ㎾(킬로와트)의 SMR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으며 구글도 50만 ㎾짜리 SMR 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국 정부 역시 원전을 통한 전력 조달을 지원하는 모습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지난달 말 미시간주 팰리세이즈 원전의 재가동을 승인했다. 이는 미국 내에서 해체 결정이 났던 원전을 다시 운영하기로 결정한 첫 번째 사례로 팰리세이즈 원전 운영사인 홀텍은 연말까지 원전을 재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우리 정부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답변서를 통해 “원전 기반 PPA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을 안다”며 “다만 가동 중이거나 현재 계획된 원전이 생산하는 전력을 PPA를 통해 특정 기업에 제공하는 것은 형평성 논란이나 전기요금 인상과 직결될 수 있는 만큼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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