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부활의 신호탄을 쏜 대규모 파운드리(위탁 생산) 수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간 네트워크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사법 리스크에서 자유로워진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행보에 나서 대규모 추가 수주나 협업·인수합병(M&A)이 한층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머스크 CEO와 그간 수차례 만나 협업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공식적인 만남은 2023년 5월로 당시 머스크 CEO가 미국 실리콘밸리 삼성전자 북미 반도체연구소를 방문했다. 이 회장과 머스크 CEO는 테슬라 자율주행·전기차용 반도체에 대해 중점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식적 만남은 이보다 훨씬 자주 이뤄졌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와 테슬라 본사가 위치한 텍사스 오스틴까지는 자동차로 약 30~40분 거리다. 이 회장이 비공식 일정으로 텍사스 공장 부지를 둘러본 뒤 어렵지 않게 머스크 CEO와 교류할 수 있는 셈이다.
이 회장이 “1년 중 가장 바쁜, 가장 신경 쓰는 출장”이라고 말한 ‘선밸리 콘퍼런스’에도 머스크 CEO는 수차례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재계 관계자는 “중요한 의사 결정은 수장들 간의 만남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테슬라 수주까지 이 회장이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재계는 대법원 무죄 판결로 사법 족쇄에서 벗어난 이 회장의 향후 행보에 더욱 주목하게 됐다. 이 회장은 이달 9~13일(현지 시간)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열린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아마존의 앤디 제시 CEO와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팀 쿡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등을 만났다. 당시 이원진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장도 동행해 빅테크들과 다양한 시너지를 논의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 회장은 이달 말에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글로벌 테크 CEO 모임 ‘구글 캠프’에 참석한다. 구글 캠프는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2012년부터 개최한 글로벌 사교 모임이다. 매년 7월 말~8월 초 2박 3일간 진행되고 억만장자와 대기업 CEO, 정치인, 유명인들이 참석한다. 빅테크는 삼성의 파트너이자 파운드리 부문 잠재 고객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재판 등으로 이 회장이 활동에 제약을 받은 점도 삼성 위기의 원인으로 꼽힌다”며 “위기 극복의 첫 단추는 반도체 회복인 만큼 이 회장의 공격적인 수주 영업이 기대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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