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통상 협상을 이끄는 수장들이 15~16일 제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다시 한 번 만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제주 합의’가 나올지 주목된다. 한국을 비롯한 역내 주요 국가들의 통상장관들이 제주도에 집결하는 만큼 미중 간 치열한 외교 전쟁이 펼쳐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나라가 양국 협상에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단연 미중 간 후속 합의 여부다. 앞서 양국은 12일 ‘제네바 경제 무역 회담 연합 성명’을 통해 최대 145%에 달했던 상호관세를 각각 115%포인트 낮추기로 전격 합의했지만 그 기간은 90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희토류 수출제한, 서비스 시장 개방 등 비관세장벽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미국이 펜타닐 유입 혐의를 이유로 중국에 부과한 20%의 관세도 유지한 만큼 양국 간 의제는 산적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양국은 경제·무역 관계를 협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후속 협상을 이어나가기로 한 상태다.
현재로서는 상당한 합의가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 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합의에서 가장 큰 것은 중국이 시장을 개방하기로 한 것”이라며 “우리는 중국과의 무역 관계에서 완전한 재설정(total reset)을 이뤘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도 이뤄질 수 있다”고 예고했다. 만약 양국 정상 간 통화가 이뤄진다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인 1월 18일 이후 약 4개월 만이며 취임 이후로는 처음이다. 트럼프 특유의 과장 어법을 감안하더라도 양국 간 협상이 긍정적인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은 분명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양국 간 긴장이 언제 다시 고조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90일 동안 양국 간 실무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현재 10%로 낮아진 대중·대미 상호관세가 다시 치솟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관세가 양국 간 무역을 사실상 단절 상태로 만드는 수준으로 돌아갈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니다”라며 선을 그으면서도 향후 미중 협상이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현재 설정된 30%의 관세보다는 “상당히 더 높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중국에 품은 기본적인 불만들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당시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않고 수정주의 노선을 취하고 있다는 점, 중국 정부의 무차별적인 보조금, 핵심 기술 유출 등인데 이에 대한 언급은 이번에 따로 없었다”며 “양국 모두 국내 경제에 대한 상당한 부담 때문에 일시적으로 합의를 했지만 이후에는 양국 관계가 더 큰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급진전된 양국 간 화해 무드 속 이번 제주 APEC 통상장관회의는 이 같은 미중 간 대화와 견제가 얽히고설키는 ‘글로벌 통상 협의의 큰 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이 이번 회의를 계기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히려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한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한미 관세 협상 고위급 중간 점검도 중요한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한미 2+2 고위급 통상 협의를 마친 뒤 제주에서 고위급 통상 중간 점검이 이뤄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지난달 26일 방미 귀국길 인천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의 중간 점검 회의는 제가 갈 가능성도 꽤 많다”고 밝혔다. 현재 한미 통상 당국은 2+2 협의에서 정한 7월 8일을 협상 시한으로 두고 ‘패키지 딜(줄라이 패키지)’ 타결을 위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실무 선에서 관세 및 비관세, 경제 안보, 투자 협력, 통화(환율)정책 등 분야에서 의제를 좁혀가며 본격적인 협상을 이어가는 중이다. 다만 미국 측이 현재 18개 주요 국가와 상호관세 관련 협상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 한미 협의가 속도를 내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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