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대 대통령
이재명 당선
더불어민주당
득표율
16.67%
득표수
6,058,641
대선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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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2일 "시장이 공정하면 다들 주식 투자를 할 것"이라며 "시장 불공정성 문제는 6월 3일 선거가 끝나는 순간에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유세차 제주시 동문로터리를 방문해 "주식시장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는데 불공정하면 누가 그 시장의 주식을 사겠느냐"며 이같이 밝혔다. 이 후보는 "우리나라의 경제만 유독 우하향인 이유가 몇 가지 있다"며 "정부 정책에 산업경제 정책이 없다. 이를 제대로 수립해 '앞으로 이런 쪽에 투자하세요' 이렇게 방향을 정해주는 게 리더의 역할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과 지나치게 강대강 대치 전략을 취하는 바람에 전세계가 '저 동네는 언젠가 충돌하겠구나' 싶어 한반도 투자를 망설이게 된다"며 "한반도 평화 리스크를 줄이고 남북 관계를 평화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기업들의 물적 분할로 인한 폐해를 거론하며 "우량주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 새끼는 내 것이 아냐. 이게 말이 되나"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걸 못 하게 막는 게 상법 개정인데 국민의힘이 거부했다"며 "국민의힘이 (개정)한다고 큰소리치던 건데 민주당이 진짜 (추진)하니까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또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된 김건희 여사를 겨냥해 "대통령 부인이 주가조작에 연루됐는데 힘이 세면 처벌이 안 된다"며 "돈 번 것 이상으로 벌금도 내야 하고 감옥도 확실하게 오랫동안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한민국 기업들의 낮은 배당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우리나라는 배당에 너무 인색해 10조 원을 벌어도 배당은 1~2조 원에 불과하다"며 "배당 성향이라고 하는 게 중국 공산국가 기업보다 더 배당이 낮다. 배당을 워낙 안 하다 보니까 주가가 왜곡됐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주식시장이 살아야 기업들도 이자 부담이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국민의 투자 기회도 늘어난다"며 "투자가 부동산 시장으로 몰렸고, 코인 시장도 보호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는 첫날이 바로 6월 3일이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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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2일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며 "대통령실에 기업의 각종 민원을 전담하는 담당 수석을 두고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이날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5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 "정부가 경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경제를 하고 정부는 도와드리는 역할"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는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등 경제 5단체장과 전국상공회의소 회장 등 기업인 20여 명이 참석했다. 김 후보는 "기업이 마음껏 연구하고 투자하고 세계로 힘차게 뻗어나가고 일자리를 만들어서 고용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라며 "이 눈치, 저 눈치 보고 욕 안 먹으려고 가만히 있다 보면 현상 타파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을 거론하며 "SK(하이닉스)가 당시에는 최태원 회장이 인수하기 전이라서 사실 은행 관리 상태에 있었다"며 "첨단 기업은 반드시 주인이 분명히 있어야 발전하지, 그냥 공무원이나 은행이 절대 첨단 기업을 성공시킬 수 없다는 건 상식적인 얘기이기 때문에 삼성도 최대한으로 많이 도와드렸다"고 소개했다. 경제계는 규제 혁신과 신산업 육성, 세제 개편 등을 건의했다. 최태원 회장은 "산업 구조와 당면 현황이 유사한 일본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6조 달러에 달하는 경제로 발전시킬 수 있고, 저성장·저출생·고령화 등 사회문제 해결 비용 뿐만 아니라 에너지 등에서 상당한 비용을 서로 줄일 수 있다는 구상이다. 그는 또 고급 인재를 포함한 500만 명 정도의 해외 유입이 있어야 내수 부양이 되고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는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류 회장은 "미국이나 일본은 랜드마크를 지어 내수 경기 살아나고 경제가 발전한 사례가 있다"며 랜드마크 건설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또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연계하고 방산 산업 등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손 회장은 정년 연장과 주 4.5일제 도입에 우려를 표하며 민간에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내외 모든 기관이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한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 활력을 되살릴 정책적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윤 회장은 미국 상호관세 등 통상 대응을 위해 민관 대미 아웃리치 활동에 주력하고 수출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진식 회장은 동기부여를 위해 기업인은 상속세와 증여세 부담을 낮춰주고 근로자들은 소득세를 감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이 전기료 부담을 덜기 위해 원자력발전 폐기물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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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6·3 대선의 유일한 승리 방정식으로 꼽히는 ‘반명(반이재명) 빅텐트’ 불씨 살리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김문수 대선 후보는 21일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를 향해 “결국 저와 단일화가 돼서 훌륭하게 우리 대선 승리를 이끌 수 있는 주역”이라고 치켜세웠고 당내 인사들도 앞다퉈 가교 역할을 자처하며 이준석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준석 후보가 당대표 시절 그와 각을 세웠던 옛 친윤(친윤석열)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재명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라면 어떤 요구든 들어주자”는 ‘통 큰 양보론’까지 나왔다. 옛 여권 인사들의 정권 재창출을 위한 노력이 무색하게 조기 대선의 원인 제공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은 ‘부정선거론’에 재차 힘을 실으며 보수 결집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2주도 채 남지 않은 이날 국민의힘 인사들은 범보수 단일화의 핵심인 이준석 후보를 설득하기 위해 전방위로 움직였다. 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은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성남시 가천대에서 진행된 이준석 후보의 유세 현장을 직접 찾아가 구애에 나섰다. 안 위원장은 이준석 후보와의 차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준석 후보가 단일화에 생각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주로 했다”며 “추후 만남 가능성도 열어놓자고 합의했고 필요하다면 김 후보와 직접 만나는 것도 주선할 수 있으니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김 후보도 이날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대선 승리를 위한 특단의 대책에 대해 “우리 당의 대표를 하다가 나가서 지금 뛰고 계시는 이준석 후보”라며 “(단일화를 위해서라면) 이준석 후보가 좋아하는 방법을 많이 배려해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100% 일반 국민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 방안도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겠다”며 “이 후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하든지 단일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도 “보수 본가가 고쳐 쓸 수 없는 집이라면 그 자리에 더 좋은 집을 새로 짓겠다”고 공언했다. 옛 친정에 앙금이 남아 있는 이준석 후보에게 당내 개혁을 다짐한 것이다. 다만 이준석 후보는 “(기존 생각과) 전혀 달라진 점이 없다”며 국민의힘이 내건 단일화론에 일단 선을 그었다. 그는 “저나 내부에서도 단일화를 고민하거나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김 후보도 지금 만나면 오해를 살 가능성 있어 만날 생각이 없다”고 일축했다. 정치권에서는 이준석 후보가 단일화 국면에서 일종의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 보니 느긋하게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급한 건 국민의힘 측인 만큼 협상을 위한 더 큰 선물을 가져올 수 있고 보수 진영이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보수 적장자’로 지방선거와 차차기 대권을 노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의힘의 한 3선 의원은 “이준석 후보 입장에서는 지금 몸값을 올리기 좋다”며 “가만히 앉아서 새우가 고래를 먹을 기회가 아니겠느냐”고 진단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단일화 시계’를 앞당기기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 지체해서는 단일화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크다. 영남의 한 재선 의원은 “이재명을 막기 위해서라면 이준석 후보에게 총리 자리든 원하는 건 다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혁신당 내에서는 옛 친윤계 인사들이 이준석 후보에게 ‘국민의힘 당권’을 고리로 단일화를 요구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처럼 범보수 빅텐트조차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또 ‘윤석열 리스크’에 부딪혔다. 윤 전 대통령이 이날 파면 후 첫 공개 행보로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면서다. 윤 전 대통령 탈당을 계기로 ‘중도 확장’을 꾀하려던 당으로서는 ‘부정선거 프레임’이라는 암초에 다시 직면한 것이다. 특히 한동훈·유승민 등 당내 탄핵 찬성파 세력이 ‘윤석열과의 절연’을 원팀 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윤 전 대통령의 행보는 또 다른 내홍을 불러올 수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김 후보에게 “부정선거 음모론과 단호히 절연한다고 선언해달라”며 “부정선거 음모론과 단호하게 선 긋지 못하면 더불어민주당은 3일간, 우리는 하루만 투표해 이길 수 없다”고 역설했다. 유승민 전 의원 측 관계자는 “당이 윤 전 대통령과 완벽히 절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니 우리로서는 합류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당 지도부는 즉각 악재 대응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예정된 유세를 취소한 뒤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힘은 김건희 여사의 과거 행위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헤아리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 앞에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에 따른 후속 조치로 영부인 검증 절차 마련, 영부인에게 공적 책임 부여, 대통령 친인척과 주변 인사 등에 대한 감시·감찰 등 3가지를 약속했다. 또다시 ‘부정선거 의혹’이 대선판 쟁점으로 불붙기 전에 윤 전 대통령 부부와 선을 긋는 선제 조치 성격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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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국민의힘 특사단을 만나 김문수 후보 지지 의사를 나타내면서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더불어민주당 합류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특사단이 요청한 선거대책위원회 합류는 끝내 거절했다. 홍 전 시장은 최근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탈락 후 탈당 및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미국 하와이로 떠나 체류 중이다. 홍 전 시장은 2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올려 "(특사단이) 모두 돌아갔다"며 "대선이 끝난 후 돌아간다는 입장 변함없다"고 밝혔다. 특사단의 김대식 의원은 이날 귀국 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홍 전 시장이 탈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선대위 합류에 명분이 없다고 했다"면서 "그러나 김 후보와 30년 동안 정치 인생을 같이 걸었던 것을 높게 평가하고, (대선에서) 선전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지지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홍 전 시장은 대한민국 안정을 위해 보수 대통합은 피할 수 없는 길이고, 우리는 분열보다 통합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함께 홍 전 시장을 만난 유상범 의원은 "홍 전 시장이 국민의힘을 비판하던 포스팅을 중단한다고 했다"며 "민주당발 '홍준표 영입설', '국무총리 제안설' 등의 대선 공작을 직접 확인했다. '민주당과 손잡을 일은 없다'는 아주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또 ‘홍 전 시장이 대선 이후 돌아오면 어떤 정치적 역할을 할 거 같냐’는 질문에 “(홍 전 시장이) 보수대통합을 말씀하셨고 귀국해 만약 정치활동을 재개하신다면 보수대통합의 방안을 실행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판단한다”고 답했다. 앞서 홍 전 시장은 김 후보의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바 있다. 하와이로 떠난 후에 페이스북 및 지지자 온라인 커뮤니티 ‘청년의 꿈’을 통해 '자신들이 국민의짐이 된 줄도 모른다', '대선이 끝나면 정통 보수주의는 새판을 짜야 한다' 등의 글을 올리며 국민의힘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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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46%,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32%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22일 나왔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10%로,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NBS)가 지난 19~21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이재명 후보는 전주 대비 3%포인트 하락했고 김 후보는 5%포인트 상승했다. 이준석 후보는 3%포인트 상승했다. NBS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고,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응답률은 26.7%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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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0%대를 돌파한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2일 “이제 단일화 질문은 안 주셔도 될 것 같다”며 “(상승) 속도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인천 인하대에서 ‘학식먹자, 이준석’ 행사를 진행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지난 (18일) TV토론 이후 한 주 동안 3%포인트 정도가 순상승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준석 후보는 “단일화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완강한 것은 과거의 문법으로 이번 선거를 치러낼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단일화 관련해서 국민의힘의 언론 플레이가 너무 심하다”며 “실질적 선거 준비가 지장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핸드폰의 통화는 다 차단해 놓았다”고 설명했다. 오는 23일 예정된 2차 TV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정조준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그는 지난 1차 토론 당시 “이재명 후보가 침대 축구를 구사해서 웬만한 내용은 답하지 않았다”며 “이재명 후보도 자존심이 센 사람이기 때문에 (2차 토론에선) 침대에 누워있는 자세로 토론을 하지 않고, 제게 네거티브를 시도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재명 후보의 전략은 이미 간파됐다”며 “큰 기술을 걸다가 되치기를 당하면 더 처참하다는 걸 보여드리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준석 후보는 자신은 친윤계 인사로부터 ‘당권 거래’를 조건으로 단일화 요구를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동훈 전 대표를 겨냥해 “친한계 인사 일부는 (이를) 대선 과정 중에 당권 투쟁에 사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대선 중에도 당권을 노리는 세력이 있다는 걸 확인했고, 당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긴 어려울 것 같다”고 화살을 돌렸다.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후보는 김문수 후보보다 저랑 붙었을 때 (지지율이) 더 낮게 나온다”며 “그게 흔히 말하는 확장성이자 연성 민주당 지지율 표를 가져오는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단일화에 부정적인 이유는 동탄 주민들과의 약속”이라며 “어려운 (지난해) 총선에서도 제게 신뢰 보여주신 건 앞으로 ‘똑바르게 정치하고 그 과정 속에서 흔들리지 않으면 동탄 주민들이 밀어준다’는 생각이다.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정치를 그렇게(단일화) 한다는 건 지금 상황에서 전혀 고민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편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NBS)가 지난 19~21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대선 후보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이재명 후보 46%, 김문수 후보가 32%, 이준석 후보 10%를 각각 기록했다. 이재명 후보는 전주 대비 3%포인트 하락했고 김 후보는 5%포인트 상승했다. 이준석 후보는 3%포인트 상승했다. NBS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고,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응답률은 26.7%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하면 된다.
대선후보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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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주식시장 불공정, 대선 끝나는 순간 해결될 것"
- 이재명, 제주·양산 유세…"글로벌 해양강국 도약 지점 제시"
- 이재명 "기본사회 국가전담기구 설치…민관협력으로 재정 부담 줄일 것"
인생스토리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산골 출신 소년공으로 자라 정치권에서도 ‘변방 장수’로 이력을 채우다가 대권에 도전한 독특한 삶을 살아왔다.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배출한 전·현직 대통령들(김대중·노무현·문재인)과 비슷한 비주류의 삶을 살았으면서도 더 비주류였던 다른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기초단체장·광역단체장·국회의원·당대표를 모두 경험한 첫 번째 대통령이 된다. 이 후보는 1964년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의 깊은 산골에서 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의 싸움’이었다. 1976년 삼계초등학교 졸업 후 온 가족이 아버지가 일을 하던 경기 성남으로 올라가 터를 잡았다. 그는 성남시 상대원동에 있던 ‘동마고무’ 공장에서 소년공 생활을 시작했다. 나이가 어려 법적으로 취업이 불가능하자 취업이 가능한 동네 형님 이름을 빌려 위장 취업을 했다. 무려 6년 동안 ‘이름 없는’ 소년공으로 살았다. 그마저도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에 왼쪽 팔뚝을 찍혀 장애 등급 판정을 받고 군대는 면제됐다. 6년 동안 ‘이름없는’ 소년공의 삶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공장 생활을 하던 그의 꿈은 “남에게 쥐어 터지지 않는 것, 배불리 먹는 것, 자유롭게 다니는 것”이었다. 공장에서 본인을 괴롭히던 고졸 출신 대리처럼 간부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지만 아버지는 공부하는 것을 반대했다. 더구나 장애인이 된 본인 처지를 비관하며 열일곱 살 때 두 차례 자살까지 시도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1년여 만에 중고교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본고사를 폐지하고 학력고사만으로 대입 제도를 바꾼 것이 이 후보에게는 기회가 됐다. 그는 1982년 전액 장학금과 매달 생활비 30만 원을 지급하는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이 후보는 대학에서 접한 5·18민주화운동의 실상이 “삶을 통째로 바꾸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공장 생활 당시에는 ‘폭도·빨갱이’로 광주 시민을 불렀던 경험도 고백했다. 처지 비관 두 차례 자살까지 시도에도…사시 합격 이 후보는 성남에서 노동과 인권 사건 변호를 주로 맡았다. 소년공으로서 겪어야 했던 가혹한 노동 현장의 현실이 그가 노동 변호사와 시민운동가의 삶을 선택하는 근본적인 동기가 됐다. 이 후보는 스스로 “법조계에 ‘파견된 노동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밝힌 바 있다. 성남시민모임을 만들어 2000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 2002년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성남시장과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공무원 자격 사칭 혐의로 구속됐다. 2004년 성남 구시가지 내 대형 병원들이 계속 문을 닫자 공공 의료원 설립을 목표로 주민 발의 조례를 만들었다. 당시 한나라당이 다수였던 성남시의회는 막강했다. 결국 시 의료원 설립안은 부결됐고, 이에 좌절한 그는 정치 입문을 결심했다. 공공의료원 설립 좌절에 정치 결심 이 후보는 2006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성남시장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2007년 대선에서는 당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비서실 수석부실장을 맡는가 하면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성남 분당갑에 출마했지만 떨어졌다. 2009~2010년 정세균 대표 체제에서 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내기도 했다.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그는 취임 직후 ‘성남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며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긴축재정을 실행하면서도 취약계층 지원은 착실히 해나갔다. 청년·노인 일자리 확보, 청소용역 노동자·버스 기사 일자리 안정화, 시장실 개방 등을 통해 호평받은 그는 더 높은 지지를 받아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첫 시장 경험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재선 시장 시절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정책들을 쏟아냈다. '청년 배당·무상산후조리지원·무상교복지원' 등 3대 무상복지 정책이 대표적이다. 또 생리용품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을 대신 사용한다는 한 여고생의 사연이 전국에 알려졌던 2016년, 성남시가 전국 최초로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연 30만원의 생리용품 구입비를 지원한 것도 유명하다. 이 사업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 시절, 지역화폐 사업과 연계돼 확장됐다. 또 국가 및 지자체 주도의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생리용품 지원 사업은 21대 국회에서 청소년복지 지원법 개정을 통해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정치권 등과 직접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고 ‘리틀 노무현’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성남시장 재선 후인 2016년 10월 박근혜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지자 민주당 정치인 중 ‘탄핵과 하야’를 초반부터 주장하며 당 지지층 사이에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2017년 “대한민국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 되겠다”며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지만 문재인, 안희정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득표율은 21.2%였지만 단숨에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했다. 첫번째 대선도전…문재인>안희정>이재명 3위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16년 간 보수 정당이 차지했던 지사직 탈환에 성공했다. 취임 직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한 기본소득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후보는 도지사로서 굵직한 족적들을 남겼다. 만 24세 경기도 청년들을 대상으로 분기별 25만원씩 연간 10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청년배당'을 실시했고 도지사 재임시절 경기도 용인시에 대규모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를 유치하는데 성공한 것 등이다. 코로나19 대응에서도 이 후보는 적극 나섰다는 평가다. 당시 종교단체 신천지를 대상으로 방역 목적의 강제 조사를 실시하는 강수를 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성남시절, 경기도지사 시절 시민들과 SNS를 통해 소통한 것도 유명하다. 민주당 내 한 관계자는 "시정, 도정에 필요한 부분을 시민들로부터 SNS로 직접 전달받고 단체장이 이를 또 직접 SNS로 확인해주면서 이 후보에 대한 호응도 커진 게 사실"이라며 "이 후보가 강조하는 '국민들이 정치 효능감을 느껴야 한다'는 말도 그와 같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7월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된 후 당시 ‘대세론’을 이뤘던 당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빠르게 추격해갔다. 2021년 7월 ‘새로운 대한민국,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뒤 8월 처음으로 지지율(한국갤럽 기준) 1위에 올라섰다. 이후 줄곧 민주당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며 2021년 민주당의 20대 대통령 후보가 됐다. 하지만 2022년 3월9일 치러진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0.73%포인트 차로 석패했다. 윤석열에 0.73%p석패…야당 지휘봉 잡아 이 후보는 대선 패배 뒤 정치적 공백을 택하지 않고 곧바로 중앙정치에 복귀했다. 2022년 6·1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같은 해 치러진 당대표 선거에서 77.77%를 득표해 승리했다. 국회에 입성한 뒤에도 이 후보의 정치 역정은 순탄치 않았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쌍방울 관련 수사 등 사법 리스크가 끊이지 않았다. 친문(문재인)계와의 갈등도 지속된 끝에 결국 2023년 가을에는 자신을 향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는 정치적 위기를 마주했다. 이 후보는 24일간 단식으로 저항했고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지난해 1월 2일에는 부산 북항 방문 중 흉기에 목을 찔리는 정치 테러를 당했다. 응급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다. 이 후보는 "살인테러 미수 사건 이후 남은 생은 하늘이 준 덤으로 여기고 오직 국민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씀드렸다"며 "또 다른 칼날이 저를 향한다고 해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같은 해 4월 치른 22대 총선에서는 174석을 확보하며 전화위복이 됐다.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임기 종료인 3년 뒤를 준비하던 이 후보의 대선 시계는 지난해 12월 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의결했고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자 이 후보의 대권 가도가 활짝 열렸다. 3월 선거법 2심에서 무죄까지 받아내 승승장구하며 지난달 27일 득표율 89.77%, 압도적인 1위로 경선을 통과했다. 물론 5월1일 대법원이 2심 판결을 유죄취재로 파기환송하면서 재판을 계속 받아야할 처지가 됐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오는 15일에서 대선 이후인 다음 달 18일로 연기했다. 이 후보는 이를 두고 “법원이 헌법 정신에 따라 당연히 해야 할 합당한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 대선에서도 이 후보는 ‘대장동 특혜 의혹’ 등에 발목을 잡혔지만 국정감사에 직접 출석해 소명하는 등 적극적으로 의혹 해소에 나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념보다 실용 강조…89.77%득표율 다시 대선후보 후보 수락 연설에서는 이념보다는 실용을 강조했다. 이 후보는 “어떤 사상과 이념도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며 “어떤 사상과 이념도 국민의 삶과 국가의 운명 앞에서는 무의미하다”고 외쳤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했다. 이 후보는 “23년 전 오늘은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날”이라며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자 했던 노무현 후보는 불신과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개혁의 시대, 통합의 시대로 가자고 당당하게 선언했다”고 말했다. 이어 “2002년 4월 27일이 그랬듯, 2025년 4월 27일도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대결이 아니라 미래와 과거의 대결, 도약과 퇴행의 대결, 통합과 분열의 대결”이라며 “이념과 사상·진영에 얽매여 분열과 갈등을 반복할 시간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연표 1964. 경북 안동 1976. 안동 삼계초 졸업 1978. 고입 검정고시 합격 1980. 대입 검정고시 합격 1976. 성남공단 노동자 1986. 병역면제(산재 지체장애 6급) 1986. 중앙대 법대 졸업 28회 사법시험 합격 1989. 민변 국제연대위원 1990. 이천노동상담소 소장 1994. 성남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2006. 성남시장 낙선(열린우리당) 2008. 18대 총선 낙선(성남 분당·통합민주당) 2010. 민선 5기 성남시장(민주당) 2012. 민주통합당 기초자치단체장협의회 회장 2014. 민선 6기 성남시장(새정치민주연합) 2017. 더불어민주당 19대 대통령 후보 경선 후보 2018. 민선 7기 경기도지사(더불어민주당) 2021.7 20대 대선 출마 선언 2021.10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2022.3 20대 대통령 낙선 2022.6 21대 국회의원 당선(인천 계양을 보궐) 2022.8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당선 2024.4 22대 총선 압승 (인천 계양을 재선) 2024.8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연임 2025.4 21대 대선 후보 확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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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수 "의원 정수 10% 감축하겠다…40대 총리 가능하게 세대 교체도"
인생스토리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대통령 자리를 두고 한 판 승부를 벌이게 됐다. 이달 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다. 최근 그는 ‘꼿꼿문수'로 불린다. 윤석열 정부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 국회에 출석해 12.3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 요구에도 머리를 숙이지 않아 생긴 별명이다. 윤 전 대통령의 지지층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그 길로 김 후보는 보수 진영에서 차기 대권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오랜 기간 침묵을 깨고 지난달 8일 국무회의를 마지막으로 장관직에서 사퇴한 그는 다음날인 9일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김 후보는 스스로를 좌·우 이념을 아우르는 다양한 경험 속에서 살아왔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동시에 중도 확장성이 약하다는 평가 속에 순탄치 않은 경선 과정을 통과했다. 부동의 1위를 이어오던 지지율의 부침도 겪었다. 아직 숙제는 남았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의 단일화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단일화를 둘러싼 긴 싸움을 벌인 후 한 차례 국민의힘 후보 지명 취소까지 당하며 기사회생으로 대선 후보에 오른 김 후보다. 그는 꾸준히 반(反) 이재명 빅텐트와 후보 단일화를 외쳐온 만큼 다시 한 번 지지자들의 선택을 받게 됐다. 다만 이준석 후보가 대선 완주를 선언한 만큼 단일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그가 걸어온 길을 살펴봤다. 전태일 열사 분신…김문수 노동운동에 투신하다 “상당한 충격이었다” 김 후보가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이튿날인 지난달 10일, 첫 행선지인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사의 분신을 두고 그가 한 말이다. 1970년 열사의 분신을 계기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는 김 후보는 대학시절 학업을 뒤로 하고 공장 노동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공장 생활을 7년 이상 했다는 그는 수 차례의 해고로 공장을 옮겨 다녔다고 한다. 김 후보는 “재단 기술을 배워 공장에 들어갔더니 한 달 하고 해고를 당해 다른 곳에 갔더니 일주일도 되지 않아 또 잘렸다"며 “일을 하지 않아 해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초등학생들이 많았던 공장에서 성인인 내가 그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만연했던 미성년자 노동 착취와 근로기준법 미준수 현장을 꼬집은 것이다. 공장 생활을 하며 당시 우리 노동 현장의 현실을 직시한 김 후보는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교육하는 한편 노조 활동을 이어갔다. 생전 전태일 열사와의 친분은 없던 그였지만 1984년 설립한 전태일기념사업회 초대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김 후보는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을 설립하고 이듬해 5.3 인천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2년 6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보수 정당으로…김문수, 36년 정치 인생 시작 운동권에선 이미 유명인사였던 김 후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입으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며 보수 정치인으로 깜짝 변신했다. 입당 4년 전인 1990년 이재오 전 의원 등과 민중당을 창당하며 정치권에 이미 발을 들인 그이지만 보수 정치인으로의 탈바꿈은 세간의 경악을 자아냈다. 노동운동에 투신하던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지만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의 붕괴를 목격하면서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 전향에 대한 김 후보의 설명이다. 이후 1996년 김 후보는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연이어 같은 지역구인 부천 소사에서 3선에 성공한 그는 2006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됐으며 2010년 재선에 성공하며 행정가로써 시민들에게 다가섰다. ‘119 상황실'에 장난전화?…'김문순대' 오명 얻은 金 “여보세요 나는 도지사 김문수입니다. 남양주소방서 맞아요? 이름이 누구요?" 김 후보를 대중에게 각인한 또 하나의 사건이다. 지난 2011년 경기도지사 시절 김 후보가 119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소방관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관등성명을 요구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 사건으로 김 후보는 ‘갑질’ 이미지와 함께 ’김문순대'라는 오명을 얻었다. 김 후보는 이 사건으로 타격을 입으며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김 후보는 이달 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 나와 “제복공무원이 지켜야 할 것은 계급과 이름을 먼저 말하는 것”이라며 “도지사가 전화한 적이 없으니 분명 장난전화라고 생각하고 오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상당히 고지식한 사람인데 융통성이 좀 부족했다”며 “소방관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尹 부름 받다…논란 끝 고용노동부 장관 임명 두 번째 경기도지사직을 마무리하고 물러난 김 후보는 총선(대구 수성구)과 지선(서울시장)에 도전했지만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이후 김 후보는 자유통일당을 창당하며 대표를 맡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의 관계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런 그를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2022년 9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발탁했다. 과거 격렬한 노동운동의 거두로 불린 김 후보였지만 이후 행적은 노동계의 궤적과 사뭇 달랐던 탓에 경사노위 위원장 임명이 정치권과 노동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후 2024년 윤석열 정부 두 번째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되며 윤 정부와의 밀착 행보를 가속화한다. 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 대정부질문에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참석한 김 후보가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무위원 전원 사죄 요구에도 요지부동한 장면이 보도되면서 ‘꼿꼿문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계엄 선포 자체에는 반대하면서도 대통령 탄핵은 격하게 반대했던 그는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흡수하며 국민의힘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했다. 결국 ‘반탄파’ 주자로 당심을 얻으며 제21대 대선 국민의힘 최종 후보가 됐다.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가 된 이후에도 12.3 비상계엄과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사과 요구가 빗발쳤다. 비상계엄과 관련해서는 명백한 반대 의사를 표한 김 후보지만 윤 전 대통령의 파면에 대해서는 여전히 선을 긋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달 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도 그는 “자기가 뽑은 대통령이 잘못하면 정당이 책임 져야지 그 사람을 잘라내는 것은 잘못됐다”며 “무조건 내쫓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면책이 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파면된 윤 전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반박하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진실로 사과해야 한다면, 탄핵에 대해 우리 당이 보여주는 부끄러운 모습에 대해 정중한 사과와 반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연표 1951. 경북 영천 출생 1969. 3선 개헌 반대 시위 주도로 제적 후 복적 1970.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입학 1971. 위수령 관련 학생운동으로 제적 1974. 복학 후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 1978. 전국금속노동조합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1985.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 1986. 인천시 5·3직선제 개헌투쟁 주도 혐의로 구속 1990. 민중당 창당·14대 총선 낙선(서울 구로갑) 1994. 민주자유당 입당 1996. 15대 총선 당선(신한국당·경기 부천 소사구) 2000. 16대 총선 당선(한나라당·경기 부천 소사구) 2004. 17대 총선 당선(한나라당·경기 부천 소사구) 2006. 민선 4기 경기도지사(한나라당) 2010. 민선 5기 경기도지사(한나라당) 2012. 한나라당 18대 대통령 후보 경선 후보 2016. 20대 총선 낙선(새누리당·대구 수성갑) 2018. 서울시장 낙선(자유한국당) 2020. 자유통일당 창당 2022. 윤석열 정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2024. 윤석열 정부 고용노동부 장관 -
인생스토리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국내 정치사에 다양한 ‘최초’ 기록을 세운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역대 최연소 제1야당 대표, 헌정사 최초 30대 당 대표 등 화려한 수식어가 그를 따라 다닌다. 언뜻 보면 만 39세의 이른 나이에 국회의원 뱃지를 단 성공한 정치인이다. 하지만 14년 남짓한 이 후보의 정치 인생을 돌아보면 순탄했던 순간은 단 한번도 없었다. 거듭된 낙선은 물론이고 국민의힘에서 당 대표 축출이라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좀처럼 겪기 힘든 사건도 견뎌내야 했다. 그가 “최대한 어려운 길로 가는 게 스스로의 도전이고 나와의 경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정치적 역경을 딛고 일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민의힘에서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 이 후보에겐 예상치 못한 스토리가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불가능에 가까웠던 지역구 선거에서 승리하며 ‘동탄의 기적’을 만들었고, 개혁신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당선자를 모두 배출한 원내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국회의원이 되기까진 13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로부터 대통령 후보가 되는 데까진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계엄 사태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자 이 후보는 유력 대선 주자 중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했다. ‘세대교체의 기적’을 꿈꾸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돌면서 선거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이 후보가 6·3 대선에서 당선되면 헌정사 최연소 대통령이자, 3석의 군소정당에서 대통령을 배출하는 초유의 기록을 쓰게 된다. 과학고 출신 수재, 교육으로 나눔 실천 1985년생인 이 후보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아버지와 고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뛰어난 학습 능력으로 서울과학고등학교에 진학했고 학생회장을 지내며 리더십을 키웠다. 서울과학고 조기졸업 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입학했지만 곧 미국 하버드대학교로 넘어가 컴퓨터공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귀국해 대체복무를 마친 이 후보가 선택한 길은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자원 봉사단체였다. 이 후보는 기초생활 수급자 등 소외계층 학생들을 가르치는 비영리 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설립해 대표 교사로 활동했다. 정치에 입문했을 당시 한 인터뷰에서 그는 “사람들은 나를 엘리트라고 보지만 인생의 절반을 상계동에서 보낸 만큼 스스로 중산층으로 칭하는 것이 부담이 없다”며 “엘리트라고 해서 사람들의 삶에 공감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5년 동안 교육 봉사를 한 경험은 당에 들어와 법안을 논의할 때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쓴소리 마다하지 않는 ‘박근혜 키즈’ 2011년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에서 활동하던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만 26세의 젊은 나이였다. 하버드대 출신의 인재라는 점에서 정치권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영입된 동갑내기 손수조 전 새누리당 미래세대위원장과 함께 ‘박근혜 키즈’로 이름을 알렸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18대 대통령 선거 승리에 일조하면서 이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인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에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추진을 강력히 주장했다. ‘박근혜 키즈’라는 태생에도 불구하고 당을 향해 거침없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젊은 개혁 보수 이미지를 구축했다. 2017년 새누리당을 탈당한 이 후보는 유승민 전 의원과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후 바른미래당, 새로운보수당 등을 거쳐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으로 돌아왔다. 이 후보는 2021년 전당대회 당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자신을 영입 해준) 박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지만 탄핵은 정당했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0선 중진’서 제1야당 대표로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바른정당 청년 최고위원,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등 굵직한 당직을 맡아왔다. 하지만 유독 원내와 인연이 없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재보궐선거, 2020년 21대 총선에 연이어 뛰어들었지만 모두 패배했다. 이 후보는 의정활동 대신 각종 시사 프로그램 패널로 활동하며 대중 인지도를 쌓았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2030 세대의 대변자를 자처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캠프 뉴미디어본부장을 맡아 2030세대를 유세차량에 올리자는 아이디어를 내 큰 성공을 거뒀다. 여세를 몰아 국민의힘 당 대표에 출마한 이 후보는 당시 5선이었던 주호영·조경태 의원, 4선의 홍문표·나경원 의원을 꺾고 헌정 사상 최초 30대 교섭단체 정당 대표로 선출됐다. 임명직, 선출직을 통틀어 공직을 맡은 경력이 없는 최초의 당 대표였다. 임기 시작부터 당 대표 전용차가 아닌 따릉이를 타고 출퇴근 하는 모습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큰 선거를 치르며 쌓은 대중적 인지도와 노하우를 활용해 2022년 20대 대선에서 윤 전 대통령의 당선을 이끌어냈다. 같은 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두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험지’에서 쓴 반전 드라마 국민의힘에서 두 차례 선거 완승을 이끌었지만 당 대표로서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 운영을 두고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과 갈등을 빚다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되는 사태까지 겪고 결국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한 이 후보는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뜻이 맞는 개혁 보수 성향 인사들과 함께 개혁신당을 창당해 초대 당 대표에 올랐다. 비례대표라는 다소 쉬운 방식으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지만 지역구에 출마하겠다는 기존의 발언을 고수하면서 더불어민주당 강세 지역인 경기 화성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잘 나오던 대구·경북(TK)이 아닌 수도권을 택한 것도 예상 밖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신생 정당에서 치르는 선거인 만큼 정치적 기반이 부족했던 이 후보는 직접 몸으로 뛰는 전략을 구사했다. 자신이 출마한 지역구에 속한 동탄 100개 아파트 단지를 직접 탐방하며 포부와 공약을 소개했고 유세차 대신 자전거로 지역을 돌며 유권자들을 만났다. 선거 당일 이틀 전부터 48시간 무박 유세를 펼치며 막판까지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민주당 후보를 따라잡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반전 드라마는 현실이 됐다. 이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20% 포인트 이상 차이 나던 민주당 후보를 꺾고 본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며 원내에 입성했다. 이 후보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4낙선을 경험하시면서 험지 도전을 잃지 않으셨다. 그런 부분에서 용기를 많이 얻었다”고 밝혔다. 본인의 당선 뿐 아니라 비례대표 2석을 더 확보하는 데도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압도적 새로움으로 ‘동탄 어게인’ 이 후보의 과감한 도전은 현재 진행중이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나기 전이던 지난 2월 서울 홍대 앞 거리에서 일찌감치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달 윤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 직후 유력 대선 주자 중 가장 먼저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기도 했다.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이 후보는 젊은 세대를 대변하고 기존 정치의 낡은 틀을 깨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인공지능(AI)을 필두로 과학기술 패권 경쟁을 주도할 적임자라는 점을 연일 부각하고 있다.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이후 ‘수학교육 국가책임제’, ‘국과과학영웅 우대 제도’, ‘규제 기준 국가제’ 등 파격적인 공약을 연이어 제시하는 것도 이 같은 전략의 일환이다. 이 후보의 선거 슬로건은 ‘압도적 새로움’이다. 그는 “존 F. 케네디는 43세에 미국의 지도자가 되어 사람을 달에 보냈다. 46세의 버락 오바마는 흑인 최초로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며 “대한민국도 과감하게 세대 전환과 구도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연공서열 문화 혁파 △네거티브 규제 △교육 투자 등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제3지대에서 치르는 쉽지 않은 선거이지만 이 후보는 “선거는 이겨 본 사람만이 이길 수 있다”며 ‘완주’가 아닌 ‘당선’이 이번 대선에 임하는 목표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 연표 1985년 서울 출생 2003년 서울 과학고 졸업 2007년 하버드대 졸업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교사 2011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2014년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2018년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2020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2021년 국민의힘 당대표 2024년 개혁신당 당대표 경기 화성을 국회의원 2025년 제21대 대선 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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