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둘러싸고 대립을 이어오던 국회가 1일 예산 1조 6000억 원 증액에 합의한 배경에는 우리 경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깔려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2%를 기록한 상황에서 경기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인식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먼저 이번 추경안 협상의 최대 쟁점이었던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이 4000억 원 반영됐다. 앞서 지난달 28일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1조 원 증액안을 단독 의결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여기서 6000억 원이 감액됐다. 향후 상품권 발행 규모는 관계부처 간 협의를 통해 정해질 계획이다.
지역화폐는 양당이 팽팽히 맞서온 예산 사업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지역화폐 사업이 재정 승수효과가 낮다며 반대해왔다. 승수효과는 정부 지출이 1원 늘어날 때 국내총생산(GDP)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승수효과가 0.6이라면 정부 지출을 100억 원 늘렸을 때 GDP가 60억 원 증가하는 셈이다.
그러나 지역사랑상품권과 같은 정부 이전지출은 승수효과가 낮다는 게 학계의 다수설이다. 한국은행이 2020년 펴낸 ‘한국은행 거시계량모형(BOK20) 구축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등 정부 투자의 재정 승수는 0.64인 반면 긴급재난지원금 등 정부 이전지출의 재정 승수는 0.2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로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지역화폐 사업에 반대해왔으나 신속한 추경안 통과를 위해 한 발짝 물러섰다.
경기 부양 효과가 큰 SOC 예산도 8000억 원 증액됐다. 이를 통해 임대주택과 도로·철도 등 경기 부양을 위한 인프라 투자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다만 올해 본예산이 감액 통과되는 과정에서 이른바 ‘쪽지 예산’들이 상당수 반영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상당수 지역 민원성 예산이 SOC 예산에 포함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추경 편성의 단초가 된 산불 피해 복구와 민생 지원 예산도 증액됐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산불 피해 농민과 소상공인 재기 지원액을 대폭 확대했다”며 “특히 (산불로 인한) 공장과 상가 철거 복구 예산이 마련된 것은 최초”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산불 피해 복구 예산은 2538억 원이 증액됐다. 대학 등록금 인상 부담 완화를 위한 국가장학금 지원 예산도 1157억 원 늘었다. 장바구니 물가 안정을 위한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 예산은 1000억 원 증액됐다. 기존 정부안을 포함하면 1700억 원이 포함됐다.
지난해 민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한 본예산에서 전액 삭감됐던 법무부 소관 검찰 특정업무경비 507억 원과 감사원 특경비 45억 원은 복원됐다. 여름철 수해 복구 예산 300억 원, 딥페이크와 마약 등 민생 범죄 대응 예산 107억 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지원 예산 101억 원 등도 반영됐다.
미중 관세전쟁 대응을 위한 산업계 지원도 강화된다. 정부는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에 재정을 지원해 특별 자금 25조 4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1조 5000억 원을 투입해 연내 최신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 장을 확보하는 등 인공지능(AI) 산업 인프라 확보에도 나설 방침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추경 편성이 지나치게 지연돼 경기 부양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1분기 성장률이 당초 한국은행 전망치 대비 0.4%포인트 낮아지면서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0%대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기본적으로 이 예산안은 전부 나라가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며 “국가 채권을 발행해서 미래 세대들이 갚아야 할 돈이기 때문에 정부와 국민의힘은 가급적 이 빚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경안을 마련하되 꼭 필요한 부분만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즉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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