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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신약' 눈앞에 둔 美…韓은 개인정보 장벽에
산업 기업 2025.06.16 17:47:10미국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기업 리커전파마슈티컬즈가 현재까지 AI로 발굴한 6개의 신약 후보 물질을 임상 2상에 진입시켰다. 그중에서 REC-994는 최근 뇌혈관기형(CCM) 환자 대상 임상 2상 결과 뇌 병변이 50% 줄었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만약 리커전이 업계의 전망대로 3년 안에 REC-994에 대해 품목 허가를 받으면 ‘세계 최초 AI 신약’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통상 최소 10년 이상 걸리던 신약 개발 기간을 비약적으로 단축시킨 리커전의 놀라운 성과의 배경에는 고품질 데이터가 자리하고 있다. 리커전은 유전자 라이브러리 제공 전문 기업인 템퍼스AI와의 협력으로 10만 명이 넘는 암 환자의 디옥시리보핵산(DNA)과 리보핵산(RNA) 데이터를 확보해 신약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템퍼스AI는 환자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맞춤형 약물과 치료법을 제안하고 관련 데이터를 제약사와 연구자 등에 판매한다. 의료 데이터가 신약 개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유연한 개인정보 규제 덕분이다. 미국은 20개 이상의 주에서 진료 정보의 소유권이 의료기관에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내 병원·제약사 등은 당사자 간 계약으로 원격진료, AI 신약 개발 등에 진료 정보를 활발하게 활용할 수 있다. 정부 후원 연구에서는 의료 데이터 2차 활용에 대한 ‘포괄적 동의’를 허용하고 있다. 반면 국내 AI 신약 개발 산업은 과도한 개인정보 보호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개인 동의 없이는 의료 데이터 활용이 사실상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AI 신약으로 임상 2상에 진입한 곳은 이노보테라퓨틱스 한 곳뿐일 정도다. 전문가들은 의료 데이터 활성화를 위해 2020년 개정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신용정보이용 보호법)이 오히려 ‘대못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상태 대한디지털헬스학회 부회장(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대규모 실사용데이터(RWD)를 신약 개발에 활용하면 시간·비용을 절감하고 성공률을 높일 수 있지만 불명확한 기준,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 간 상충 문제 등으로 국내 의료 데이터 활용은 저해되고 있다”며 “의료 데이터 2차 활용에 대한 포괄적 동의 등의 방식으로 데이터 활용을 촉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노보·릴리 '비만신약 임상' 공개…글로벌 빅파마 격돌
산업 산업일반 2025.06.16 17:45:47글로벌 빅파마들이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미국당뇨병학회(ADA)2025’에서 ‘진검승부’를 펼친다. 현재 비만약의 대세인 글루카곤유사펩사이드(GLP-1) 기반 치료제를 장기지속형·경구형 등으로 제형을 전환하고, 근육 감소나 구토 등 각종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기술력 경쟁을 벌일 예정이다. 특히 병용요법을 통해 GLP-1 성분을 비만이 아닌 다른 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약품·일동제약·펩트론·인벤티지랩 등 K바이오도 ADA에서 새로운 임상 결과를 속속 공개하며 비만약 대전에 참전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오는 20일(현지 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ADA의 하이라이트는 글로벌 비만약 연구개발(R&D) 동향이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 등 GLP-1 기반 치료제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새로운 치료법이 나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글로벌 비만약 대전을 주도하고 있는 투톱은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다. 양사는 현재 글로벌 비만약 시장의 93% 가량을 점유하며 새로운 기술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이번 ADA에서 기존 위고비(2.4㎎)보다 용량을 대폭 늘린 7.2㎎의 비만 치료 효과와 안전성을 공개한다. 고도 비만이나 고강도 체중 감량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치료법이 될지 관심이다. 차세대 비만약 ‘카그리세마’의 임상 3상 결과도 관심이 쏠린다. 카그리세마는 GLP-1 유사체인 세마글루티드 2.4㎎과 아밀린 유사체인 카그릴린티드 2.4㎎을 결합한 주사제다. 식욕 억제와 포만감 증가를 통해 강력한 체중 감소를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라이릴리는 ADA에서 경구용 GLP-1 비만약 ‘오르포글리프론’의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오르포글리프론은 저분자 기반 GLP-1 작용제로 경구용 제형을 만드는데 유리하다. 업계에서는 오르포글리프론의 상용화 예상 시점을 2026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르포글리프론과 함께 경구용 비만약 시장이 본격 개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일라이일리가 공개할 아밀린 작용제 ‘엘로랄린티드’의 초기 1상 데이터에 관심이 쏠린다. 아밀린은 췌장에서 생성되는 호르몬으로 인슐린과 함께 혈당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포도당의 흡수를 늦추고 식욕을 조절함으로써 에너지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일라이릴리는 스웨덴 카무루스에서 지속형 플랫폼을 도입해 장기지속형 주사제도 병행 개발 중이다. 두 회사는 비만약 시장에서 양보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최근에는 독자적인 기술개발과 더불어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서 우군을 확대하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최근 딥애플테라퓨틱스를 8억 1200만 달러(1조 1800억 원)에 인수했다. 딥애플은 현재 비만 파이프라인을 3개 보유하고 있다. 이번 계약은 GLP-1 기반이 아닌 G단백질결합수용체(GPCR) 기반 비만약 개발을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라이일리도 최근 비만약의 근육 건강 및 체성분 개선 목적으로 주베나와 6억 5000만 달러(8700억 원) 규모로 공동 기술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K바이오는 글로벌 투톱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 한미약품은 근손실 없는 차세대 비만약, 유노비아는 경구형 GLP-1 작용제의 임상 데이터를 공개한다. 펩트론은 식욕을 억제하고 혈당 조절 기능성이 높은 펩타이드 기반 신약 파이프라인 ‘PTAP-009’의 임상 과정을 처음 공개한다. 이 물질은 올 연말까지 일라이릴리의 기술성 평가를 진행 중이다. -
'환자 임상증거' 확보 못하는 韓…AI 신약 스타트업 고사 위기
산업 기업 2025.06.16 17:41:28지난해 글로벌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업계에서는 초대형 계약이 잇따라 터졌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설립한 AI 신약 개발 기업 아이소모픽랩스는 일라이릴리와 최대 17억 4500만 달러(약 2조 4000억 원), 노바티스와 최대 12억 3750만 달러(약 1조 7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고 신약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AI 신약 개발 기업 미국 리커전파마슈티컬스(리커전)는 또 다른 AI 신약 개발사 영국 엑센시아(Exscientia)를 계약금 6억 8800만 달러(약 9500억 원)에 흡수 합병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AI 신약 개발을 위한 인수합병(M&A)과 공격적인 파트너십 체결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는 전무하다. 국내의 경우 AI로 발굴한 신약을 임상 궤도에 올린 기업들도 매년 100억 원 이상의 적자를 내고 있다. 실제 국내 임상 2상을 완료한 이노보테라퓨틱스는 지난해 약 130억 원, 글로벌 임상 1상을 진행 중인 파로스아이바이오는 지난해 약 126억 원의 적자를 냈다. 국내 AI 신약 개발 기업 중 최초로 해외 투자를 받아 이목을 끌었던 스탠다임은 최근 구조조정을 단행해 임직원을 80명에서 27명으로 줄였다. 국내에서 관련 산업이 정체되고 있는 것은 고품질 데이터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에 데이터를 활용하려면 약물 반응 정보가 포함된 데이터 생산이 필요하지만 국내에서는 폐쇄된 환경에서만 관련 데이터 접근이 가능하고 연구 외 목적으로 데이터를 구축한 사례가 많아 활용도가 떨어진다”며 “해외에서 신약 개발을 위해 생산한 데이터는 자국 연구자가 먼저 활용한 후 공개돼 혁신 신약 개발을 위한 가치는 낮아진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의료 데이터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2020년 개정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신용정보이용 보호법)이 신약 연구 분야에서 오히려 ‘대못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데이터 3법은 환자로부터 사전에 동의를 받지 않았어도 개인정보를 가명 처리하면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가명 처리는 약효 분석에 필수적인 실사용증거(RWE) 수집을 가로막는다. 실사용증거란 환자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실사용데이터(RWD)를 기반으로 어떤 치료 방식의 효과와 안전성 등을 보여주는 임상 증거를 말한다. RWE 기반의 질병 진행 데이터 등이 있어야 다양한 조건에서 시나리오를 해볼 수 있는 ‘가상 환자’를 만들 수 있는데 이 부분이 막혀 있다 보니 효과적인 신약 개발이 어렵다. 가명 처리 정보 재식별(익명화 정보에 속한 특정 개인을 식별)에 따른 처벌이 과도해 병원 등 데이터 보유 주체가 데이터 제공 자체를 꺼리는 점도 문제다. 개인정보보호법 28조는 ‘특정 개인을 알아보기 위해 가명 정보를 처리하면 전체 매출액의 3% 이하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미국 리커전에 10만 명 이상의 암 환자 데이터를 제공해 AI 신약 개발의 기폭제가 돼준 템퍼스AI와 같은 기업이 국내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산업에서 AI를 통한 신약 개발은 게임체인저로 꼽힌다. 전통적인 방식의 신약 개발에는 평균 10~15년, 1조~2조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고 성공률은 0.01%에 불과하다. 하지만 AI는 후보물질 탐색을 가속화하고 임상시험을 최적화해 신약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성공률은 높일 수 있다. 현재 AI 없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할 경우 전임상까지 평균 5.5년이 걸리지만 AI를 활용하면 최대 80%까지 단축해준다. 전문가들은 의료 데이터 공개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꼽고 있다. 정상태 대한디지털헬스학회 부회장은 “별도 기금 등을 마련해 데이터를 공개한 개인에게 직접 보상하고 대규모 의료 데이터를 제공한 의료기관에 보험 수가 책정, 대가 산정 등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해 데이터 보상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터 3법 개정 이후 논의에서 밀려난 ‘옵트아웃(opt-out, 사후철회)’ 방식 도입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옵트아웃이란 정보 소유자가 자신의 데이터 수집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할 때만 정보 수집을 금지하는 일종의 네거티브 규제 제도다. -
"美처럼 조단위 투자 몰리려면…네거티브로 규제 방식 바꿔야"
산업 바이오 2025.06.16 17:40:26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스타트업 ‘자이라테라퓨틱스’는 지난해 10억 달러(약 1조 3600억 원)를 유치하며 바이오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자이라테라퓨틱스는 신약 후보 물질 발굴부터 임상 개발까지 신약 개발 전 과정에 AI 모델을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당시 투자는 바이오 전문 벤처캐피털(VC) ‘아치벤처파트너스’ 역사상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미국에서 AI 기반 신약 개발이 활발한 것은 연구개발(R&D), 데이터, 자본, 제도 등 생태계 전반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혁신 인프라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연한 개인정보 규제는 빅파마(대형 제약사)와 VC들이 앞다퉈 미국 AI 신약 개발 스타트업들과 손을 잡는 배경이다. 미국 내에서는 당사자 간 계약으로 원격진료, AI 신약 개발 등에 진료 정보를 활발하게 활용할 수 있다. 국내 산학연 및 스타트업 관계자들도 AI 신약 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고 그 안에서 데이터 활용의 역할과 책임,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AI 신약 개발 기업인 스탠다임의 송상옥 대표는 “고품질 데이터를 다수 보유한 국내 병원들이 개인정보 규제 등을 이유로 기업에는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은 채 병원 내부 사업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사실상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를 확 풀어줘야 병원의 데이터 독점을 막고 데이터 부족에 허덕이는 AI 신약 개발 업계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신용정보이용 보호법)의 까다로운 가명 처리 규정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명 처리 기준이 갈수록 강화돼 과도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는 데다 병원이 외부에 의료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 명분으로도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엽 대한의료정보학회 이사장(건양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은 “2020년 개정된 데이터 3법은 환자로부터 사전에 동의를 받지 않았어도 개인정보를 가명 처리하면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오히려 규제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가명 처리 기준도 올라가 원시 데이터를 가공하는 데만 연구 예산의 20~30%를 소진해버릴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소아희귀질환을 연구하는 조성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희귀질환 조기 진단을 위해 해외에서는 국가 검진 프로그램이나 빅데이터를 활용해 의심 환자를 활발하게 발굴하지만 국내에서는 지나치게 엄격한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익명화된 데이터조차 활용하기 어렵다”며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희귀질환 진단과 연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의료 데이터 활용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의료 빅데이터 활용 시급한데…클라우드도 못 쓰는 국립병원
산업 바이오 2025.06.16 17:39:21인공지능(AI) 기반의 정밀 의료와 신약 후보물질 탐색 등의 과정에서 ‘데이터 은행’으로 불리는 대용량 클라우드 활용은 필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국립대병원 등 공공병원들은 관련 규정에 막혀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이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활발한 연구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처지다. 특히 내외부 인터넷 망분리 규정까지 있어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일일이 다운로드해 내부 PC로 옮겨야 하다 보니 효율성 저하가 심각한 상황이다. 16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공공병원 정보시스템은 국가정보원 ‘정보보안업무기본지침’ 규정에 따라 보안 최고 수준인 ‘상 등급’에 해당돼 내외부 망분리는 물론 글로벌 클라우드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애저를 비롯한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는 보안인증 ‘상 등급’을 충족하지 못해 국립대 등 공공병원에서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김광수 서울대병원 융합의학과 교수는 “외부 클라우드를 쓸 수 없다 보니 대용량 데이터를 병원 자체에서 관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활용하기 위한 연결망 설정도 힘들다”며 “자체 클라우드를 구축한다 해도 AI에 필수적인 대규모언어모델(LLM) 구축에 필요한 딥러닝 등은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반면 민간 병원들은 자유자재로 외부 클라우드를 활용해 전자의무기록(EMR)을 외부 장소에서 보관·관리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 지정 의료데이터중심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클라우드 서비스를 거대한 데이터의 ‘저수지’로 활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연구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모든 자료를 삭제·폐기했지만 지금은 당사자의 동의를 거쳐 클라우드에 그 자료들을 저장해 둔다. 연구자가 요청할 경우 쌓아둔 데이터와 자료를 의료기관 차원에서 큐레이션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연구자가 심전도 100만 건을 분석한 자료를 클라우드에 남겨둘 수 있고 다른 연구자가 이 데이터를 다른 연구에 쓸 수 있다. 인터넷 내부망과 외부망을 분리·운영해야 하는 망분리 규제도 고질적 문제다. 사무실 책상에 외부 인터넷용 PC와 내부망용 PC를 각각 두고 쓰는 셈이다. 외부 데이터를 내부 PC에 받기 위해서는 관리자 승인하에 주 1회 등 특정 일자에만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김 교수는 “다른 연구자들이 개발해놓은 모델을 기반으로 빠르게 신규 AI 모델을 개발해야 하는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연구 효율성이 저해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같은 현장의 어려움에도 의료 데이터가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점에서 보안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허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학계·의료계·업계 등 여러 곳에서 보안 가이드라인, 망분리 등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국정원의 기조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다. 한 수도권 대학병원 교수는 “국정원 규제가 문제 있으며 한심한 수준이라고 여러 차례 문제제기를 했지만 고쳐지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
로슈, 美 280개 병원 데이터로 신약개발…濠는 의료정보 통합관리
산업 바이오 2025.06.16 17:38:23우리나라의 바이오 산업이 의료 데이터 규제로 제자리걸음을 면하지 못하는 동안 주요 해외 국가들은 빠르게 앞서가고 있다. 최근에는 신약 개발에 인공지능(AI)이 결합하면서 방대한 보건의료 데이터가 필요한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들은 최대 시장인 미국을 중심으로 공격적으로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핀란드와 호주 등은 개인별 진료·건강 정보 등을 통합된 시스템에서 관리하는 ‘보건의료 마이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트렌드에 올라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대중화된 비대면 진료 역시 만성질환·정신건강 등 비교적 예측 가능하고 관리가 쉬운 질병을 중심으로 진료 체계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빅테크와 빅파마가 결합해 AI 기반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핵심은 의료 데이터다. 아무리 AI 기술이 발달하고 신약 개발 경험이 풍부해도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병원·제약사 등이 당사자 간 계약을 통해 원격진료, AI 신약 개발 등에 의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아울러 영리기업에도 데이터 개방이 가능하다. 로슈는 유전체 분석 전문 업체와 의료 데이터 플랫폼 업체를 각각 자회사로 두고 있다. 플랫폼 업체는 미국 내 280개 암센터 및 병원과 계약을 맺어 환자들의 전자의무기록(EMR)을 수집한 후 가명화해 신약 개발과 연구용으로 활용한다. 환자의 건강 상태나 의료 서비스 제공과 관련된 실사용데이터(RWD)를 확보해 면역항암제 ‘티쎈트릭’의 적응증 확대 과정에서 임상 기간을 기존 대비 수개월 단축했다. 속도가 생명인 신약 개발 경쟁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의 허가도 앞당기며 매출 증대 효과를 톡톡히 봤다. 유전체 분석 업체를 통해 확보한 유전체 데이터로 환자에게 맞춤형 항암제를 처방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맞춤형 항암제 처방 사업이 로슈의 항암제 매출 비중을 전체의 50% 이상까지 끌어올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민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바이오산업단 연구원은 “AI 신약 개발 플랫폼은 새로운 타깃 발굴, 연구개발(R&D) 주기 단축, 임상 및 시장 출시 기간 단축 등으로 효율성을 높인다”며 “주목할 점은 AI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규제가 유연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핀란드와 호주는 헬스케어 마이데이터 시스템을 통해 의료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높여 제약·바이오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핀란드는 2008년부터 ‘칸타(Kanta)’ 서비스를 통해 1950년대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해온 의료 기록, 처방 정보, 진단 데이터 등을 정부 주도로 통합 관리하고 있다. 이 데이터는 당사자 동의를 거쳐 제3자에게 제공할 수도 있다. 특히 2019년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연구·지식개발·통계·교육 등 목적으로는 이용자 동의 없이도 데이터 허가청(Findata) 승인을 얻은 뒤 2차 이용이 가능해졌다. 칸타 서비스 덕분에 핀란드의 헬스케어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핀란드의 헬스케어 산업 무역흑자는 2003년 3억 7300만 유로에서 2018년 10억 5800만 유로까지 3배가량 증가했다. 호주도 2012년부터 시작한 ‘나의 건강 기록(My Health Record)’ 서비스를 통해 의료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관리·활용하고 있다. 시스템에 등록된 데이터는 개인의 의료 기록, 처방전, 검사 결과, 예방접종 기록 등 광범위하다. 호주 국민의 97%, 약국의 99%, 공공병원의 97%가 나의 건강 기록 서비스에 등록돼 있다. 호주 국민들은 출생부터 노년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건강 정보를 저장·관리할 수 있어 연령대별 적합한 건강 관리와 의료 서비스를 지원받는다. 호주 정부에 따르면 ‘나의 건강 기록’ 서비스 덕분에 연간 최대 54억 호주달러가량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비대면 진료 분야는 이미 단순한 만성질환 약 처방을 넘어서 체계화된 진료를 제공하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통해 비교적 관리가 쉬운 질환들을 중심으로 의료 서비스 시스템, 진료, 서비스 제공자들을 고려한 진료 지침을 만들었다. 그 결과 보건부 산하기관 조사에 따르면 2022년 8월 기준으로 ‘최근 4주간 비대면 진료 이용률’이 전체 응답자 118만 명의 22.5%에 이르렀으며 현재는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도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에 대해 원격 모니터링과 비대면 상담을 결합한 프로토콜을 운영하고 있다. -
'마트 대못' 13년째… 전통시장 상인도 "마트 휴업일 의미 없다"
산업 생활 2025.05.27 05:30:0025일 대구 전통시장인 동구시장. 불 꺼진 미용실 간판 아래 ‘점포 임대’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미용실 옆 육개장을 파는 식당 역시 보증금, 월세 금액을 알려주는 안내문만 부착돼 있다. 그 옆의 의류 가게는 ‘점포 정리, 폭탄 세일’이 한창이지만 방문하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전통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줄면서 시장에는 빈 가게만 늘고 있다. 동구시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인근 대형마트도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2년 전 대구시가 대형마트 의무 휴업 규제를 매월 두 번째, 네 번째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전환해 한숨을 돌렸으나 효과는 미미하다. 규제와 상관없이 마트도 전통시장도 오프라인 상권은 붕괴되는 모습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이 13년째 시행 중이지만 규제 효과는 시장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26일 서울시에 따르면 남대문시장·방산종합시장 등 서울 중구에 위치한 전통시장의 점포 수는 지난해 말 1만 6161개로 2019년(1만 7407개) 대비 1246개(7.2%)나 감소했다. 5년 생존율도 같은 기간 60.9%에서 53.7%로 줄었다. 올해 1분기 기준 대형마트 3사(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점포 수도 370개로 법 시행 직후(2013년) 대비 13개 감소했다. 전통시장을 위협하는 존재를 대형마트로 규정하고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것이 법의 취지였지만, 결국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전국 최초로 휴업일 평일로 전환했지만… “전국에서 매출 10위 안에 들던 대형마트가 일요일에 쉰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손님들이 마트 대신 전통시장으로 많이 올 줄 알았어요. 6, 7년 전부터는 대형마트가 일요일에 쉬나, 월요일에 쉬나 전통시장에 손님 없는 것은 똑같습니다.” 19년째 대구 동구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신 모 씨는 25일 취재진과 만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규제가 전통시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대구는 2023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전환했다. 이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공생하기 위해 손을 잡았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동구시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 매장에는 동구시장 내 맛집을 소개하는 광고판이 걸려 있다. 추석·설 대목에는 마트 전단지에 동구시장에서 파는 물건들이 함께 소개돼 동네에 배포됐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동구시장 상인들은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규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마트가 쉬는 요일과 상관없이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동구시장에서 두부 가게를 하는 조 모 씨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은 우리 매출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며 “쿠팡으로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봉지도 배달되고 식자재 마트에서 할인해서 파는 마당에 일요일에 마트가 쉬나, 문을 여나 (전통시장에는) 변화가 없다. 한마디로 죽을 맛”이라고 했다. 실제 일요일인 이날 동구시장에는 상당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영업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한창인 시간에 방문했지만 시장 내 식당에도 한두 테이블만 차 있었다. 쿠팡·식자재마트에 대형마트·전통시장도 속수무책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 규제는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서 비롯됐다. 이 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은 대형마트에 공휴일 중 월 2회 의무휴업일을 정하되 이해 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평일로 바꿀 수 있다. 대구와 충북 청주시, 서울 서초구 등 일부 지자체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대형마트가 달마다 두 번씩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 당초 법은 대형마트의 영업을 규제해 전통시장 및 전통 상점가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만큼 작동되지 못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통시장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시행된 초기인 2013년 1502개에서 2023년 1393개로 109곳이 감소했다. 전통시장의 하루 평균 방문객은 2019년 5413명에서 2023년 3994명으로 26% 급감했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점포도 2013년 대비 2023년 8곳 줄었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을 막론하고 오프라인 상권이 모두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대형마트 규제가 전통시장 소비를 활성화하는 대신 오히려 소비를 온라인으로 유도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소비자들은 온라인에서 신선식품을 비롯해 물건을 구매하는 게 익숙해졌다. 대형마트의 판매지수는 2013년 112.7에서 지난해 93으로 감소한 반면 온라인의 판매지수는 27.7에서 129.7로 급증했다. 판매지수는 통계청이 업태별 판매 금액을 조사해 지수화한 것으로 2020년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다. 2020년을 기점으로 온라인의 매출은 아예 대형마트를 넘어섰다. 오프라인에서는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식자재 마트의 공세도 거세다. 전통시장 앞에 식자재 마트를 열어 오프라인 구매 수요를 빨아들이는 행태가 곳곳에서 목격된다. 이마트에 이어 마트 업계 2위를 차지했던 홈플러스가 올 3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것 역시 대형마트에 비우호적인 규제 환경에서 새로운 유통 강자에 맞서 경쟁력을 키우지 못한 점이 작용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고객 이끌 핵심 점포, 전통시장 유치해야 업계와 전문가들은 유통 시장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경쟁 구도에서 온라인 대 오프라인으로 바뀐 지 오래인 만큼 낡은 규제를 손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현 시장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규제가 오프라인의 활로마저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복합 상권을 조성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등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을 넘어 외식·여가·오락 등을 즐길 수 있는 복합 쇼핑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대구 동구시장에서도 20~40대 젊은층을 전통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해 시장 건물 옥상에 테라스와 카페 등을 조성하고 키즈카페 등을 시장 인근에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데 실패했다.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다이소·올리브영과 같이 고객을 유인하는 핵심 점포(키테넌트)를 전통시장에 유치하는 식의 상생 방안이 필요하다”며 “대형마트 역시 전통시장의 키테넌트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구진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통 상권이 대형마트 인근에 있으면 대형마트의 주차장·화장실·수유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고 대형마트를 통한 집객 효과가 주변 상권에도 확산될 수 있다”며 “대중소 유통의 분리가 아닌 복합 상권의 개발을 통해 상생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시장마저 무너뜨린 '마트 대못' 13년
산업 생활 2025.05.26 17:48:1725일 대구 전통시장인 동구시장. 불 꺼진 미용실 간판 아래 ‘점포 임대’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미용실 옆 육개장을 파는 식당 역시 보증금, 월세 금액을 알려주는 안내문만 부착돼 있다. 그 옆의 의류 가게는 ‘점포 정리, 폭탄 세일’이 한창이지만 방문하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동구시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인근 대형마트도 한산하기는 매한가지다. 2년 전 대구시가 대형마트 의무 휴업 규제를 매월 두 번째, 네 번째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전환해 한숨을 돌렸으나 효과는 미미하다. 규제와 상관없이 오프라인 상권은 공멸하는 모습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이 13년째 시행 중이지만 규제 효과는 시장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26일 서울시에 따르면 남대문시장·방산종합시장 등 서울 중구에 있는 전통시장의 점포 수는 지난해 말 1만 6161개로 2019년(1만 7407개) 대비 1246개(7.2%)나 감소했다. 5년 생존율은 같은 기간 60.9%에서 53.7%로 낮아졌다. 올해 1분기 기준 대형마트 3사(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점포 수도 370개로 법 시행 직후(2013년) 대비 13개 줄었다. 홈플러스 직원 수는 팬데믹 이전 2만 3000명에서 지난해 상반기 2만 명으로 3000명 감소했다. 전통시장을 위협하는 존재를 대형마트로 규정하고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것이 법의 취지였지만, 결국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전자상거래(e커머스), 식자재 마트 등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업체들은 반사이익을 누리며 급성장했다. 대표 e커머스인 쿠팡의 지난해 매출은 41조 원으로 대형마트 규제가 시작된 2013년 대비 86배 급증했다. 반면 미국·유럽의 대형마트들은 e커머스가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전미소매업협회(NRF)가 발표한 ‘2025 글로벌 리테일 기업 순위’에는 코스트코 등 오프라인 기업이 상위 5위 안에 들었다. 2007년 아마존의 식료품 배송이 시작된 후 ‘월마트의 시대는 끝났다’는 평가를 듣던 월마트도 여전히 승승장구 중이다. 다양한 물류 실험을 통해 광활한 미국 땅에서 ‘당일 배송’ 시스템까지 구축했다.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측면도 있는데 유통법은 이런 점이 고려되지 않은 규제”라며 “전체 유통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대형마트 의무 휴업과 같은 규제는 이제 지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
규제 시효 다했는데…민주 "출점 제한 연장"
산업 생활 2025.05.26 17:36:06대형마트의 의무휴업제와 심야 영업 제한을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 개정 논의가 차기 정부에도 주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시효를 다한 낡은 규제임에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형마트 규제를 지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현행 유통법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매월 둘째·넷째 일요일에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하며 평일 자정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금지된다. 이 규제는 2012년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기업형슈퍼마켓(SSM)의 경우 전통시장 반경 1㎞ 이내에 출점을 제한하는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모두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조치다. 유통 업계는 온라인 쇼핑의 확산과 소비 패턴의 변화에 따라 현행 규제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면서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으나 규제로 서비스 제공에 제한이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 서비스 제한은 소비자 편의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며 유통 업계의 경쟁력 강화에도 장애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단체 역시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제가 소비자의 쇼핑 편의성을 저해하고 있고 지적한다. 반면 소상공인단체는 현행 규제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더불어민주당은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 중이다. 최근에는 전통시장 반경 1㎞ 이내에 SSM 출점을 제한하는 규제를 5년 연장하는 법안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유통산업발전법의 규제 완화 또는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 외 11인은 지난해 7월 유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면서 “의무휴업일 지정을 통한 영업 규제가 사실상 중소유통업을 보호하는 데 그 주된 목적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형마트 등에 대한 온라인 쇼핑 영업을 규제해도 그 반사이익이 중소 유통에 돌아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고 오히려 다른 오프라인 또는 온라인 소매업에서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며 규제 개선 필요성을 촉구했다. -
시장 상인 "두부 한모도 배달시키는데…마트 규제 의미 없어"
산업 생활 2025.05.26 17:34:32“전국에서 매출 10위 안에 들던 대형마트가 일요일에 쉰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손님들이 마트 대신 전통시장으로 많이 올 줄 알았어요. 6, 7년 전부터는 대형마트가 일요일에 쉬나, 월요일에 쉬나 전통시장에 손님 없는 것은 똑같습니다.” 19년째 대구 동구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신 모 씨는 25일 취재진과 만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규제가 전통시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대구는 2023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전환했다. 이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공생하기 위해 손을 잡았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동구시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 매장에는 동구시장 내 맛집을 소개하는 광고판이 걸려 있다. 추석·설 대목에는 마트 전단지에 동구시장에서 파는 물건들이 함께 소개돼 동네에 배포됐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동구시장 상인들은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규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마트가 쉬는 요일과 상관없이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동구시장에서 두부 가게를 하는 조 모 씨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은 우리 매출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며 “쿠팡으로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봉지도 배달되고 식자재 마트에서 할인해서 파는 마당에 일요일에 마트가 쉬나, 문을 여나 (전통시장에는) 변화가 없다. 한마디로 죽을 맛”이라고 했다. 실제 일요일인 이날 동구시장에는 상당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영업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한창인 시간에 방문했지만 시장 내 식당에도 한두 테이블만 차 있었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 규제는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서 비롯됐다. 이 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은 대형마트에 공휴일 중 월 2회 의무휴업일을 정하되 이해 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평일로 바꿀 수 있다. 대구와 충북 청주시, 서울 서초구 등 일부 지자체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대형마트가 달마다 두 번씩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 당초 법은 대형마트의 영업을 규제해 전통시장 및 전통 상점가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만큼 작동되지 못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통시장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시행된 초기인 2013년 1502개에서 2023년 1393개로 109곳이 감소했다. 전통시장의 하루 평균 방문객은 2019년 5413명에서 2023년 3994명으로 26% 급감했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점포도 2013년 대비 2023년 8곳 줄었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을 막론하고 오프라인 상권이 모두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대형마트 규제가 전통시장 소비를 활성화하는 대신 오히려 소비를 온라인으로 유도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소비자들은 온라인에서 신선식품을 비롯해 물건을 구매하는 게 익숙해졌다. 대형마트의 판매지수는 2013년 112.7에서 지난해 93으로 감소한 반면 온라인의 판매지수는 27.7에서 129.7로 급증했다. 판매지수는 통계청이 업태별 판매 금액을 조사해 지수화한 것으로 2020년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다. 2020년을 기점으로 온라인의 매출은 아예 대형마트를 넘어섰다. 오프라인에서는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식자재 마트의 공세도 거세다. 전통시장 앞에 식자재 마트를 열어 오프라인 구매 수요를 빨아들이는 행태가 곳곳에서 목격된다. 이마트에 이어 마트 업계 2위를 차지했던 홈플러스가 올 3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것 역시 대형마트에 비우호적인 규제 환경에서 새로운 유통 강자에 맞서 경쟁력을 키우지 못한 점이 작용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유통 시장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경쟁 구도에서 온라인 대 오프라인으로 바뀐 지 오래인 만큼 낡은 규제를 손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현 시장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규제가 오프라인의 활로마저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복합 상권을 조성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등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을 넘어 외식·여가·오락 등을 즐길 수 있는 복합 쇼핑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대구 동구시장에서도 20~40대 젊은층을 전통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해 시장 건물 옥상에 테라스와 카페 등을 조성하고 키즈카페 등을 시장 인근에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데 실패했다.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다이소·올리브영과 같이 고객을 유인하는 핵심 점포(키테넌트)를 전통시장에 유치하는 식의 상생 방안이 필요하다”며 “대형마트 역시 전통시장의 키테넌트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구진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통 상권이 대형마트 인근에 있으면 대형마트의 주차장·화장실·수유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고 대형마트를 통한 집객 효과가 주변 상권에도 확산될 수 있다”며 “대중소 유통의 분리가 아닌 복합 상권의 개발을 통해 상생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테슬라·BYD, 3년 앞서 레벨3 상용화…안방마저 내줄판
산업 기업 2025.05.19 18:18:37지난달 3일 세계 전기차 1위 기업인 중국 비야디(BYD)의 한국 법인을 이끄는 류쉐량 아시아태평양 자동차사업부 총경리가 서울 모빌리티쇼에서 국내 취재진과의 만남을 자처했다. 류 총경리는 서울 모빌리티쇼 전시장 한복판에 현대차·기아와 맞먹는 크기의 부스를 마련한 후 취재진을 만나 “단기 이익이 아닌 지속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면서 “한국에 더 많은 차를 들여와 고객군을 넓힐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류 총경리는 서울모빌리티쇼에서 BYD가 7월 한국에 선보일 전기차(EV) 세단 ‘씰’을 직접 공개하고 전기차 SUV ‘씨라이언’의 국내 출시 계획도 밝혔다. 실제로 BYD의 진격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올 1월 첫 출시된 아토3는 지난달 출고되자마자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 단일 모델 기준 판매 1위(단일 모델 기준)에 등극했다. BYD의 자신감은 무엇일까. 자동차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전기차가 아닌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신의 눈(天神之眼)’ 프로젝트다. 올 2월 왕촨푸 BYD 회장은 전 차종에 자율주행 시스템인 ‘신의 눈’을 무료 탑재해 ‘자율주행 시대’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업계에 따르면 BYD가 전 차종에 자율주행 기술을 배포하면서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BYD의 주행 데이터는 2024년 하루 7200만 ㎞가 쌓였는데 올해는 축적량이 1억 5000만 ㎞로 두 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터가 쌓일 수록 자율주행 기술은 빠르게 진화한다. 왕 회장은 3월 운전자가 개입하는 조건에서 고속도로와 도심 자율주행을 수행하는 레벨3의 자율주행 상용화에 대해 “2~3년이면 된다”고 자신했다. BYD는 이미 중국에서 레벨3 자율주행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다. 업계는 BYD가 늦어도 2027년이면 사실상 레벨3인 자율주행 ‘레벨2++’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국내 출시하는 전기차에 탑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BYD가 테슬라에 이어 국내 전기차 시장의 판도를 뒤바꿀 다크호스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BYD가 자율주행 기술을 앞세워 한국 시장에 전기차를 쏟아내면 현대차·기아는 더욱 치열한 경쟁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 현대차·기아는 내연기관을 합친 국내 시장 점유율이 80%를 넘는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에서는 위상이 다르다. 지난해 기준 내수 시장에서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점유율은 약 40%에 그친다. 반면 압도적인 운전자 보조 기능인 오토파일럿을 앞세운 미국 테슬라가 약 2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테슬라 모델Y가 국내 전기차 시장 판매 1위를 달렸다. 업계는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 기술이 국내에 도입되면 시장 점유율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판매 부진으로 최근 울산 공장의 전기차 라인 일부를 일시적으로 멈춰 세울 만큼 고전을 거듭하는 상황이다. 2026년 투입될 테슬라의 FSD도 부담스러운데 2027년에는 BYD까지 레벨3에 가까운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차를 선보이면 현대차·기아는 상당한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현대차·기아가 규제의 늪에 빠져 경쟁의 무기가 될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 도입이 쉽지 않다는 측면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테슬라나 BYD처럼 국내에 판매되는 차량에 자율주행칩과 센서를 장착해 데이터를 모아야 자율주행 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국내에서 자율주행 시범 운행 사업마저 중단하는 실정이다. 현대차는 2022년 강남에서 자율주행차 ‘로보라이더’를 운행했지만 이듬해 철수를 결정했다. 또 현대차그룹 산하 포디투닷은 2022년부터 서울 청계천 일대에 운행하던 자율주행셔틀 운행을 지난해 말을 끝으로 중단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가 국내 자율주행 사업에서 철수하는 상황에 대해 “정해진 구간만 다니는 운행에서 질 좋은 데이터가 쌓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하려면 출퇴근 시간과 같은 복잡한 도심 교통 환경, 악천후 등의 주행 데이터가 중요하다. 하지만 보슬비만 내려도 운행 중단을 권고하는 상암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의 사정에서 국내에선 자율주행 데이터와 기술을 고도화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자율주행 중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이 불분명해 기업이 적극적인 도전에 나설 수 없는 것이 최대 장애물로 꼽힌다. 미국과 독일·일본 등은 자율주행차를 운행하는 사람은 물론 AI 운전자의 책임과 면책 규정까지 정비해 놓고 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만들겠다고 한 자율주행차 사고 조사 처리 지침을 여전히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발생할 민형사상의 문제를 예측할 수 있는 법제를 당국에서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업은 망설이고 정부는 뒷짐을 지는 사이 이미 기업 경쟁력은 뒤지고 있다. 현대차는 레벨3 수준의 SDV를 2028년에 내놓는다. 테슬라보다는 3년, BYD보다는 1~2년 늦다. 현대차가 양산할 차의 자율주행 기술이 BYD보다 뒤지면 전기차 시장에서의 위상은 더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청계천에서 자율주행차를 운행하다 철수한 포디투닷에 무엇을 얻었느냐고 물어보니 ‘얻은 것은 없다’는 답을 했다”며 “2년 전에 운행하던 자율주행차를 타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최대 80% 이상 개입하고 기술적으로 무엇이 발전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
"법·제도가 신산업 가로막아…모빌리티 컨트롤타워 시급"
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2025.05.19 18:16:47“법과 제도가 기술을 따라오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혁신을 막아버렸습니다. 차라리 현대차·기아가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을 가져오는 게 더 경쟁력이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정경일 교통 전문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가 1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율주행과 같은 신사업은 정부의 적극적 뒷받침이 있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술 발전 과정에서 제도가 걸림돌이 되고, 그 이후에 제도 개정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미 늦었다는 의미다. 그는 이어 “정부가 기업과 소통하며 한 발짝 일찍 제도를 마련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아직까지도 자율주행 레벨 4단계의 사고 책임 소재가 모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자율주행 레벨 3단계까지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일반 차량 사고와 마찬가지로 운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운전자 개입이 없어지는 레벨 4단계부터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일찍이 책임 소재를 마련해 방향성을 제시한 미국과 독일 등 해외 선진국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정 변호사는 “결과적으로 정부의 수동적인 태도가 자율주행 기술을 발목 잡은 현상이 벌어진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국내 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과 미국 기업들과 경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차라리 자율주행 데이터를 축적한 미국·중국 기업들과 협약을 맺고 협업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했다. 정 변호사는 입법부와 행정부·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입법부와 행정부는 기술에 대해 잘 모르고, 기업은 꽉 막혀 있는 법과 제도를 탓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주도해 각 주체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모빌리티 혁신이라는 파도를 막거나 지연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빠르게, 잘 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기득권의 반대로 국내에서 쫓겨난 타다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한 정부의 전폭적 지원도 주문했다. 정 변호사는 “국내 일부 지역에서 이뤄지는 시범 구역 형태의 제도를 넘어 상용화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제주도 등 하나의 행정구역을 통째로 자율주행 구역으로 변경하는 등 깜짝 놀랄 만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
현대차 모셔널, 3조 투입에도 자율주행 기술 5위→15위 추락
산업 산업일반 2025.05.19 18:15:47국내 자율주행이 규제에 발목이 잡히면서 현대자동차가 3조 원을 투입해 설립한 자율주행 자회사 모셔널의 글로벌 위상도 추락하고 있다. 자율주행 데이터 확보가 늦어지자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구축한 글로벌 기업들과 손 잡으며 돌파구를 마련하려 애쓰고 있다. 19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005380)가 미국 앱티브와 합작해 세운 모셔널은 로보택시 상용화를 2026년 이후로 미루면서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인 주행 데이터 축적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박세혁 모셔널 최고전략책임자(CSO)가 2023년 취임 직후 “무인 상용 서비스를 광범위하게 배치하겠다”고 밝힌 포부가 무색하게 자율주행 사업은 사실상 정지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분초를 다투며 주행 데이터 확보에 뛰어들고 있는 미국·중국 기업들과 대비되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5월 모셔널이 로보택시 운영을 무기한 연기한 뒤 글로벌 자율주행 업체들과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기술 전문 시장조사 기관 가이드하우스에 따르면 지난해 자율주행 업체 기술 순위에서 5위에 올랐던 모셔널은 올해 15위로 추락했다. 임직원이 150명에 불과한 한국 스타트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11위)’에도 밀렸다. 그 사이 지난해 13위를 기록하며 모셔널에 겨우 두 계단 앞섰던 바이두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발판으로 단숨에 2위로 올라섰다. 업계에서는 모셔널이 핵심 사업에서 사실상 손을 떼며 매해 감수했던 수천억 원의 손실이 무의미해졌다고 허탈해 한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모셔널의 총포괄 손실은 지난해 3688억 원, 2023년 7916억 원에 달한다. 모셔널의 지분 85%를 보유한 현대차그룹의 지분법 손실도 지난해 기준 2674억 원에 달한다. 현대차가 선택한 돌파구는 수억 마일의 자율주행 데이터를 확보한 미국·중국 기업과의 협업이다. 현대차는 중국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인 하오모의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탑재된 자율주행 전기차를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하오모가 보유한 ‘드라이브 GPT’를 탑재한 전기차 전용 모델인데 드라이브 GPT의 사전 학습 모델은 1200억 개의 매개변수를 사용해 약 4000만 대의 차량 운전 데이터 기반으로 설계됐다. 현대차의 자율주행 기술력이 뒤져 있는 만큼 현지 AI기업의 기술력을 활용해 시장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자율주행 1위 기업인 구글의 웨이모와도 AI 기반 자율주행 알고리즘 공동 개발에 나서고 있다. 웨이모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등 9개 도시에서 무인 로보택시를 운영하며 약 6만 4000㎞(4억 마일)의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기존까지 웨이모 자율주행 기술이 탑재된 차량을 생산해 공급했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협업에서 한 단계 나아간 셈이다. -
차량공유·카풀·타다 잇단 좌초…한국은 '모빌리티 혁신의 무덤'
산업 IT 2025.05.19 17:41:57규제 장벽에 둘러싸인 한국은 전 세계 시장에서 ‘모빌리티 혁신의 무덤’으로 불린다. ‘타다 사태’ 등 택시 업계의 반발에 부딪힌 정치권이 중재에 실패해 눈치만 보다 신사업이 무산되는 일은 반복되고 있다. 모빌리티 업계 전반의 분위기가 위축되며 자율주행이라는 미래 기술도 한국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2009년 미국에서 설립된 우버는 2014년 8월 한국에서도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X’를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는 우버를 불법으로 간주하며 단속에 나섰다. 특히 서울시는 우버를 신고하면 포상금 100만 원을 내걸어 결국 우버는 2015년 2월 우버X를 무료로 전환했고 같은 해 3월 중단했다. 2015년 콜버스는 심야에 애플리케이션 이용자들이 목적지와 탑승 시간을 입력하면 비슷한 경로의 승객을 모아 운행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우버X의 버스 버전이었다. 하지만 택시 사업자들이 위법이라며 반발에 나섰고 콜버스는 결국 해당 사업을 약 2년 만에 접은 후 전세버스 예약 중개로 방향을 틀었다. 풀러스는 출퇴근 시간대에만 제공하던 카풀 서비스를 2017년 24시간으로 확대했다. 서울시는 불법 유상 운송이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카풀 관련 조항이 담겨있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81조에는 출퇴근에 한해서는 허용한다고만 명시돼 있을 뿐 구체적 시간대 등을 규정하고 있지 않았지만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네이버와 미래에셋의 합작펀드인 신성장기술펀드와 옐로우독·SK 등에서 22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던 풀러스는 결국 문을 닫았다. 카카오모빌리티도 2018년 2월 카풀 스타트업 ‘럭시’를 252억 원에 인수한 뒤 같은 해 12월 카풀 서비스를 시범 시작했지만 다음 달 서비스를 결국 포기했다. 11인승 승합차 호출 서비스를 내놓았던 타다는 변화를 거부한 정치권이 모빌리티 혁신에 어떻게 집단 배임 행위를 했는지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 됐다. 타다는 2018년 ‘11인승 이상 승합차는 기사 알선이 가능하다’는 여객 운수사업법의 예외 조항을 근거로 ‘타다 베이직’ 서비스를 선보였다. 하지만 택시 업계의 거센 반발에 편승한 정치권이 2020년 ‘타다 금지법’을 통과시켜 서비스는 강제로 멈춰 섰다. 검찰은 타다 베이직이 옛 여객자동차법상 금지되는 ‘불법 콜택시 영업’에 해당한다며 2019년 10월 이재웅 전 쏘카(403550) 대표와 타다 운영사였던 VCNC 박재욱 전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1·2심은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하급심의 판단이 옳다고 최종 판단했다. -
레벨4 상용화 외치는 韓…시범지구마저 태반이 낙제점
산업 기업 2025.05.19 17:40:47정부가 2027년 레벨4 자율주행(완전자율주행) 상용화를 목표로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를 꾸준히 늘려왔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에 그치고 있다. 시범운행지구 10곳 중 4곳에서는 자율주행차가 다니지 않는 실정이다. 올해로 시범운행지구 도입 5년 차를 맞았지만 운전자 없이 완전 무인으로 자율주행차를 운행할 수 있는 지역은 전무하고 대부분 정해진 길만 오가고 있어 기술 고도화에도 한계가 명확하다는 평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시범운행지구 지정 이후 1년을 경과한 34곳 중 자율주행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는 지구는 14곳으로 전체의 41.2%에 달한다. 자율주행 인프라 조성 차원에서 2020년부터 시범운행지구는 매년 늘었지만 자율주행 사업자 유치, 예산 부족 등 문제로 무용지물로 전락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각 지자체에서 의욕적으로 시범운행지구 운영 계획을 세우고 시작했지만 관련 사업자의 부재나 예산 문제로 진행조차 안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토부가 지난해 시범운행지구 24곳을 대상으로 운영 성과를 평가한 결과 절반이 넘는 13곳이 낙제점인 D·E등급을 받았다. 시범운행지구를 둘러싼 복잡한 행정 절차, 규제는 민간 사업자의 참여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자율주행차 규제 특례를 적용하는 시범운행지구는 지방자치단체의 신청과 시범운행지구 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정부 승인으로 최종 선정된다. 민간 사업자가 시장 수요나 기술 테스트 여건에 기반해 시범운행지구 선정이나 운영 계획을 제안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다. 자금력이 부족한 사업자들은 정부·지자체 주도로 마련된 시범운행지구에서 적자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시범운행지구에서 자율주행차를 통한 유상 운송은 운전자가 탑승하는 등 일정 조건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인건비 부담에 차량 유지·관리비, 보험료 등을 고려하면 비용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에 지정된 시범운행지구 42곳 중 운전자 없는 완전자율주행이 가능한 지역은 단 한 곳도 없다. 자율주행 데이터 확보도 여의치 않다. 정해진 경로 없이 출발지와 목적지를 오가는 ‘도어투도어’ 방식이 가능한 시범운행지구는 9곳(21.4% 비중)에 불과하다. 나머지 33곳은 모두 버스처럼 정해진 노선을 따라 운행하는 방식이어서 다양한 도로·교통 환경에서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 자율주행 선진국인 미국·중국이 특정 지역 전체에서 자율주행을 허용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도 미중처럼 자율주행 시험이 전면적으로 가능한 지역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서울시 등 주요 도심으로 시범운행지구 단위를 확장하고 민간 사업자 주도로 완전자율주행 유상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제도·행정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흠제 서울시의회 의원은 “자율주행을 꽃 피우려면 사업자들이 마음껏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시범운행지구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안전 예방 등에 관한 지자체 책임을 강화하는 행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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