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국가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인재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 인력을 보강하는 차원을 넘어서 반도체 인재가 많은 경쟁국에서 외부 인재 ‘입도선매’에 나서며 국경을 넘는 핵심 인재 쟁탈전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는 최근 대만에서 2년 이상 메모리반도체 유관 경력을 지닌 엔지니어를 채용하고 있다. 직무는 메모리 사업 개발과 영업·공급망 관리 등이다. 기술직 인력을 전문적으로 영입하기 위한 리쿠르터(채용전문가)도 모집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 인력 채용에 나선 것은 대만이 세계 AI 반도체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혀가는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활용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가속기용 메모리 시장을 넓히는 한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 점유율 확대를 위한 현지 팹리스 고객 확보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올해 5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컴퓨텍스 2025'에 13년 만에 다시 참가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현지에서도 범용인공지능(AGI) 컴퓨팅랩과 어드밴스트프로세서랩(APL) 수십 개 직무에 걸쳐 반도체 경력 채용 공고를 냈다. 이 조직들은 모두 AI 반도체 솔루션을 개발하는 곳이다.
반대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은 한국 인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말 국내 첫 대학생 공채를 진행한 마이크론이 대표적이다. 마이크론은 지난달 일본 히로시마 공장에서 일할 한국 엔지니어를 모집했고 내년 가동 예정인 싱가포르 HBM 패키징 공장에서 일할 사람도 구할 계획이다. 중국 창신메모리는 기존 대비 3배 넘는 연봉을 제시하는 식으로 국내 반도체 인력에 접근하고 있다. TSMC와 소니·도요타·덴소의 파운드리 합작사 JASM도 지난해부터 이공계 대학원 커뮤니티 등을 통해 꾸준히 채용 공고를 냈다.
한국 반도체 기업이 미국 실리콘밸리 등 해외 인재를 영입하는 사례는 과거부터 흔했지만 최근 몇 년 새 AI 반도체 중심으로 업계 판도가 바뀌며 되레 국내 ‘S급 인재’ 유출 걱정이 커지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22~2024년 글로벌 반도체 공장 착공 개수는 71개로 앞선 3개년(57개)보다 24.5% 증가했다. 곳곳에서 수천 명 이상의 숙련 인력이 추가로 필요해지면서 인력 쟁탈전이 격화한 것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전문 헤드헌터는 “기존에는 해외 반도체 기업들이 싱가포르 등 동남아 인력을 주로 선발했지만 최근 삼성전자 실적 하락 등으로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진 틈을 타 국내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의 인재 영입에 힘을 보태기 위해 정부도 발 벗고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KOTRA에 인재 유치와 관련된 홍보·조사·연구 등을 맡는 해외인재유치센터를 설립했다. 센터는 올해 미국(뉴욕·실리콘밸리)과 영국(런던), 싱가포르 등 4개 지역에서 인재 유치 세미나와 채용 박람회를 열 예정이다. 이를 통해 첨단산업 부문에서 2030년까지 1000명의 해외 인재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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