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 최초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의 런웨이(패션쇼에서 모델이 걷는 무대)에 오른 김원중(31)씨는 모델계 유망주였다. 보그와 아레나 등 유명 잡지의 모델로 활동하던 동갑내기 박지운(31)씨 역시 촉망받는 블루칩이었다. 패션모델 세계에서 한마디로 ‘탑(top)’의 위치를 자랑하던 1987년생 두 청년은 지난 2011년 모델 옷을 벗고 패션 사업가로 변신했다.
2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 대표는 “어느 날 박 대표와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 털어 놓은 꿈이 ‘패션 브랜드 창업’으로 일치했을 때의 그 설렘과 떨림을 기억한다”며 “새로운 도전을 위해 용기가 필요했지만 ‘옷쟁이’ 한번 제대로 되어보자는 갈망이 워낙 컸다”고 창업 당시를 회상했다. 잘 해오던 모델 활동을 줄이고 창업에 나선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은 만류했다. 섣부른 판단이라는 우려의 시선 속에서 패션 브랜드 ‘팔칠엠엠(87mm)’은 탄생했다.
출사표는 던졌으니 뭔가를 보여줘야만 했다. 모델 일을 하면서 늘 디자이너들과 함께 다니며 일했지만 패션 전문성을 배운다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 박 대표는 “옷을 입고 느낌을 살리는 것과 디자인을 직접하고 판매하는 일의 차이는 컸다”며 “시장 조사, 고객 반응 분석, 디자인 아이디어 제안 등 다양한 분야를 새롭게 공부하며 계속해서 각오를 다졌다”고 강조했다.
처음에 두 대표는 패션 아이디어를 상품에 반영해 줄 전문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며 남성 티셔츠 몇 종을 온라인 마켓에서 선보였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고 점차 본인들의 디자인 비중을 높여갔다. 이후 독창적인 브랜드의 성공을 위해 사업 범위를 ‘남성 클래식 패션’으로 좁혀 잡았다. 두 대표가 말하는 남성 클래식 패션은 정장이 아니다. 팔칠엠엠의 디자인 모토인 ‘No concept, but good sense’는 특별한 콘셉트에 얽매이지 않고 센스를 나타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젊은 또래 디자이너들의 상품과 차별성을 두기 위한 고객 맞춤형 전략을 택했다. 고객의 반응 데이터를 분석해 취향에 맞게 원단을 직접 개발하는 시스템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객이 선호하는 원단 두께와 밀도, 색상 배합 등을 세세하게 고려해 상품에 반영하면서 팔칠엠엠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지난 2014년을 시작으로 팔칠엠엠은 유명 패션쇼인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잇따라 올랐다. 홍대에 오프라인 매장도 세웠다. SNS 팔로워 규모는 20만명에 육박한다. 시즌마다 선보이는 약 50종의 스타일은 패션업계의 화제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해외 고객들의 구매 문의도 늘어 올해 초에는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 ‘카페24’ 서비스를 이용해 영어·중국어·일본어 버전의 온라인 스토어를 열었다. 박 대표는 “온라인을 통해 북유럽과 러시아 등 생각지도 못한 지역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며 “K패션 혹은 K스타일 디자이너들의 위상이 글로벌 곳곳에서 통한다는 현실을 새삼 실감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글로벌 무대에서 고객들의 만족도와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것. 김 대표는 “잘 나가던 패션 브랜드가 몇 달 만에 고객들로부터 박한 평가를 받고 천천히 잊혀지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며 “그렇게 되지 않도록 고객과의 소통을 지속해서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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