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스닥시장에서 계약 상대방과 금액 등을 밝히지 않는 ‘깜깜이 수주 공시’가 늘고 있다.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깜깜이 수주 공시’를 이용한 투기적 거래를 반복적으로 펼치고 있어 대규모 손실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영우디에스피는 1일 코스닥시장에서 10.39%나 올랐다. 주가상승의 이유는 ‘단일판매·공급계약’ 공시. 하지만 영우디에스피는 계약 상대방도, 계약 금액도 밝히지 않고 “계약기간이 12월31일까지인 장비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만 공시했다. 장비공급계약 상대방의 영업비밀 요청으로 세부내용은 일정 기간 종료 후 다시 공시한다고만 밝혔다. ‘깜깜이 수주 공시’에도 영우디에스피의 주가는 장중 한때 12% 이상 오르며 연중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깜깜이 수주 공시’는 코스닥 부품·장비업체의 단골 주가상승 재료다. 지난달 30일 테라세미콘(123100)은 계약 내용이 비공개인 장비수주계약 체결을 공시한 후 다음날 6.63%나 올랐고 AP시스템(054620)·HB테크놀러지(078150)·3S(060310)·제이씨케미칼(137950) 등 코스닥 부품기업 대부분이 계약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공시를 재료로 주가가 상승했다.
수주 정보가 없는 공시에도 주가가 오르는 이유는 개인 투자자들의 수주 공시를 무조건 호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스닥에 상장된 장비업체 중 상당수가 삼성디스플레이·LG전자 등 대기업을 고객사로 보유하고 있어 백지공시 직후 주식 관련 카페나 커뮤니티에서는 “계약 상대방은 삼성디스플레이가 확실하다” “계약 금액이 역대 최대라는 내부 정보를 들었다”는 식의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떠돌게 된다. 특히 이런 ‘깜깜이 수주 공시’가 일부 선수(투기세력)만 아는 공시로 개미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AP시스템의 경우 1월12일 깜깜이 공시 이후 이틀간 40%나 주가가 올랐지만 정작 계약 내용을 밝힌 3월31일 정정공시 이후에는 하락세로 반전했다. 5월12일 수주공시는 계약 내용 공개 시점이 5월31일에서 12월21일로 연장되며 그동안 상승폭을 그대로 반납했다.
‘깜깜이 수주 공시’가 공시 위반은 물론 아니다. 현행 공시제도는 계약 상대방의 요청이나 영업기밀 등의 이유로 공시유보를 허용한다. 정지헌 한국거래소 공시제도팀장은 “영업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단일판매·공급계약과 시설투자 등 2개 항목에서는 공시를 유보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증시 전문가들은 이런 깜깜이 수주 공시가 개인투자자들의 막연한 추측성 매매로 이어져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제도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했다. 정 팀장은 “공시유보는 최첨단 기업의 기술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정보 비대칭의 문제도 있다”며 “공시유보 신청을 할 때 사유를 면밀히 검토하고 유보기간 종료 후 바로 비공개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지혜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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