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최근 금융계열사 지분정리에 잇따라 나서면서 배경과 정리작업이 어디까지 이어질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삼성 측은 일단 불필요한 순환출자 구조를 개선하고 선택과 집중으로 그룹의 약한 고리인 금융계열사를 키우려는 조치라고 설명한다. '생명과 자산운용' '증권과 선물'처럼 연관성이 큰 계열사끼리 묶어 역량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과 제조계열 간 분리작업과 금융계열사 간 지분정리가 동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지배구조와 연관한 해석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제조업계열에 비해 금융계열의 후계이전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난관이 많다는 점도 주목할 변수다.
이런 견해의 끝단에는 중간금융지주 설립 등이 자리한다. 삼성생명의 제조계열사 지분매각이라는 현실적인 난관이 여전함에도 후속조치의 흐름에 따라 최근의 지분정리가 다양한 시나리오로 전개될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금융지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삼성의 중간금융지주 설립은 더 어려워졌다"면서도 "하지만 보험업법 개정안이 추진되고 있는 등 삼성의 지배구조와 관련한 변수가 난마처럼 얽혀 있어 특정 시나리오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이른 시점"이라고 말했다.
◇지분 단순화로 금융사 시너지 제고=생명과 증권은 모두 지점 축소, 희망퇴직 등 몸집 줄이기 과정에 있다. 저금리 등으로 보험과 증권의 앞날이 그만큼 불투명하다. 생명이 지난 9일 자산운용을, 증권이 선물 지분 100%를 인수한 데 대해 '시너지'를 강조한 삼성 측의 '순수한' 입장표명의 이면에는 이런 엄혹한 현실이 있다. 생명으로서는 자산운용 역량을 키워 저금리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각오다. 세계 10위권 생보사 가운데 자산운용사를 계열사로 확보하지 않은 곳은 메트라이프 1곳에 불과하다. 글로벌 보험사로 도약하려면 자산운용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실제 생명은 2012년 UBS글로벌자산운용과 제휴한 것을 비롯해 지난해에는 영국에서 6,000억원에 육박하는 빌딩을 매입하는 등 운용수익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그런 차원에서 100% 지분인수로 생명의 일개 사업부처럼 기능할 자산운용사의 축적된 노하우를 수혈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도 같은 계열인 선물을 자회사로 편입해 영업 시너지 제고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식·채권·환율을 아우르는 현선물 통합 서비스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증권은 자산운용 지분(1,219만주) 매각과 선물 지분(250만주) 매입으로 총 1,8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된다. 이를 종잣돈 삼아 신규 사업을 추진할 여지도 있다.
다만 이런 설명에도 미흡한 구석은 있다. 삼성의 그간 계열사 운영 등을 감안할 때 지분관계 때문에 그룹의 시너지가 부족했다고 보기도 애매한 탓이다. 한 금융계 인사는 "자본시장법 통과 이후 증권사도 선물회사 사업을 다 할 수 있어 삼성증권이 선물을 인수해 얻는 이익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며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려는 시도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삼성 소식에 밝은 한 소식통은 "금융계열사들의 지분정리 작업이 제조업보다 상대적으로 느리게 진행돼왔다"며 "의미 있는 지분정리가 추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계열사 간 지분정리, 과연 그 끝은 어디=삼성은 지난해 말부터 생명이 카드와 화재 지분을 사 모으고 전기와 SDS 등 전자계열사들이 생명 지분을 파는 등 제조와 금융 분리작업에 박차를 가해왔다.
이번 조치도 이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생명은 현재 카드 34.41%, 화재 10.4%, 증권 11.4% 등의 지분을 갖고 있다.
지분매각이 완료될 경우 비상장사인 자산운용과 상장사인 카드는 금융지주회사법상 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한다.
금융계에서는 앞으로 전자가 보유한 카드 지분(37.5%)도 생명으로 매각되고 생명이 화재와 증권 지분을 추가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생명 밑에 금융사를, 전자 아래 제조업체를 모아 지배구조를 개편할 것이라는 진단과 맞물린다. 생명이 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이고 SDS 상장을 추진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에 필요한 실탄도 확보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생명 중심의 금융계열사 수직화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계도 있다. 삼성처럼 보험사를 지주로 하는 비은행지주회사가 제조업 등 일반 자회사를 소유하지 못하게 한 금융지주법 개정안이 국회의 관문을 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생명은 전자 7.6%, 호텔신라 7.5%, 물산 5.1%, 제일모직 0.2% 등의 지분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 전자만 해도 14조원이 넘는다. 규모도 크지만 주주 이익이 걸려 있어 해법 찾기가 어렵다.
물론 중간금융지주의 불씨가 살아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가령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생명은 5년 내 삼성전자 주식을 순차적으로 팔아야 한다. 기왕에 전자 지분을 팔아야 한다면 삼성이 어떻게든 묘수를 찾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중간금융지주가 어려울 경우 일단 제조와 금융계열을 분리하고 나중에 상장을 전제로 에버랜드 중심의 지주사로 갈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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