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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예정된 전쟁’ 승자와 패자 그리고 전리품

정민정 국제부장

보복 악순환에 미중 교역 단절 위기

관세, 해운, 희토류 등 전방위 통상전쟁

대중 AI칩 규제에도 中 기술자립 속도

한미협상…치밀한 전략으로 국익 지켜야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이 결국 발발했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2017년 동명의 저서를 통해 패권국인 미국과 도전국인 중국의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포문을 열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맞받아치면서 미중 무역전쟁은 날로 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145%, 중국은 미국에 125%까지 관세율을 올려 사실상 양국 교역은 단절된 상태다. 급기야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글로벌 상품 무역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0%에서 0.2%로 대폭 낮췄다. 트럼프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시진핑의 강령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트럼프 2기에 펼쳐지는 무역전쟁의 양상은 1기 때에 비해 훨씬 거칠고 강도도 세다. 관세와 비관세 장벽이 결합한 ‘하이브리드 통상전쟁’은 미중 무역전쟁 2라운드의 달라진 풍경이다. 협상을 종용하는 미국의 압박에 중국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희토류 수출 통제, 위안화 절하 등 보복 카드를 하나씩 꺼내놓고 있다. 홍콩발 미국행 소포 접수가 중단됐고 중국 항공사들의 보잉 항공기 인도가 금지됐다. 특히 소포 접수 중단은 알테쉬(알리·테무·쉬인) 직구를 이용하는 미국 소비자들의 불편을 극대화한 조치라는 점에서 허를 찌른 묘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도 연일 강공 모드다. 관세로 시작한 대중국 압박 전선을 해운과 코로나19 기원 등으로 확장하고 있다. 코로나19 기원 문제는 중국 정부가 ‘아킬레스건’으로 여기는 사안이다. 최근에는 엔비디아와 인텔의 인공지능(AI) 칩 중국 수출 제한을 강화한 데 이어 의회와 함께 중국 AI 딥시크를 겨냥한 제재에도 나섰다. 하지만 중국의 기술 발전과 독자 생태계 구축을 촉진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딜레마다. 관세장벽이 높아질수록 탄탄한 내수를 앞세운 중국 빅테크들의 기술 자립이 속도를 낼 수 있어서다. 실제 AI 기술 격차는 빠르게 줄고 있다. 미 스탠퍼드대 ‘AI 인덱스 보고서 2025’를 보면 미중 최고 AI 간 성능 차이는 2월 기준 1.7%로 지난해 1월(9.3%)보다 많이 줄었다. 이를 반영하듯 중국에서는 ‘촨젠궈(川建國)’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어 표기(川普·촨푸)에서 착안해 트럼프가 중국을 건국했다는 의미를 담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괴롭힌 덕분에 중국인들이 똘똘 뭉쳐 성과를 내고 있다는 역설적 표현이다.



미국 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관세가 시진핑의 날을 만들었다(U.S. Tariffs Make Xi Jinping’s Day)’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강한 우려를 전했다. 서방 동맹이 균열을 내고 글로벌 기업들의 친중국 행보가 가속화하는 등 역효과가 크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 행보도 문제로 지목됐다. 전 세계에 부과한 상호관세로 미 국채가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역풍을 맞자 일주일 만에 90일 유예 조치를 내놓았다. ‘유연성’이라고 강변했지만 시 주석에게 자신의 ‘아픈 곳(pain point)’을 제대로 들킨 셈이다. 중국 역시 경제적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다. 저장성·장쑤성·광둥성 등 주요 수출 지역에서는 미국발 주문이 자취를 감추면서 상당수 공장이 강제 휴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가난한 시절을 겪었던 중국인과 풍족한 삶만 누렸던 미국인의 경제전쟁에 대한 내성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국은 선거가 없는 나라다. 미국은 2년마다 선거를 치러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내년 중간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정된 전쟁, 마지막에 누가 웃을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전쟁이 끝날 무렵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승자의 주변에서는 전리품을 두고 치열한 수싸움이 펼쳐질 것이다. 얼마나 치밀하게 전략을 짜느냐에 따라 전리품을 취할 수도, 전리품 신세가 될 수도, 혹은 부수적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지난주 일본에 이어 이번 주엔 우리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예정된 전쟁 속에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를 첫 시험대가 다가오고 있다.

정민정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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