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디지털자산 규제 체계를 빠르게 정비하며 증권과 가상화폐를 아우르는 ‘슈퍼앱’ 시대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가상화폐 양대 규제기관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친(親)가상화폐 성향의 수장 인선과 시장구조 법안 추진으로 공조를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반면 한국은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며 디지털자산기본법 발의가 내년으로 미뤄지면서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마이클 셀릭 CFTC 위원장은 22일(현지 시간) 제16대 CFTC 위원장으로 공식 취임하며 “의회가 미국을 세계의 가상화폐 수도로 굳히게 될 시장구조 법안을 대통령 책상으로 보낼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시장구조 법안은 올 7월 하원을 통과한 클래리티(CLARITY) 법안을 토대로 증권거래위원회(SEC)와 CFTC 간 디지털자산 규제 권한을 명확히 구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등 주요 가상화폐 현물에 대한 감독 권한이 CFTC에 상당 부분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전통 증권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온 SEC 중심의 규제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미국 디지털자산 산업 육성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안은 현재 상원 은행위원회와 농업위원회가 각각 논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내년 1월 마크업(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기 전 최종 검토하는 심의 단계)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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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상화폐 양대 규제기관인 SEC와 CFTC 수장이 모두 친가상화폐 인물로 채워진 점도 규제 전환에 힘을 싣는다. CFTC 신임 위원장인 셀릭은 대표적인 친가상화폐 성향 인물로 분류된다. 그는 최근까지 SEC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의 수석 법률고문이자 폴 앳킨스 SEC 위원장의 선임 자문관으로 재직하며 SEC와 CFTC 간 규제 공조를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셀릭 위원장은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 시장 워킹그룹에 참여해 백악관 디지털자산 보고서 작성에 관여하기도 했다. 해당 보고서는 SEC·CFTC 간 규제 권한 정리와 시장 구조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강조한 바 있다. 셀릭 위원장 인준과 관련해 데이비드 삭스 백악관 가상화폐·인공지능(AI) 차르는 “미국이 ‘디지털자산 규제 드림팀’을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의회에 시장구조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주문하면서 미국이 추진 중인 증권·가상화폐 통합 슈퍼앱 구상도 한층 가시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폴 앳킨스 SEC 위원장이 앞서 가상화폐 정책 전환을 선언하며 밝힌 슈퍼앱 라이선스 구상은 증권과 가상화폐, 예치(스테이킹), 파생상품 등을 단일 라이선스 아래에서 취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처럼 SEC, CFTC, 주별 라이선스로 쪼개 관리하던 방식을 벗어나 하나의 라이선스만 취득하면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 미국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CFTC가 최근 가상화폐를 파생상품 담보로 공식 허용한 것도 슈퍼앱 체제 전환을 위한 사실상의 1단계 조치로 해석된다.
미국이 이처럼 규제 체계를 정비하며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는 반면 한국은 제도 공백이 장기화되는 모습이다. 디지털자산에 대한 포괄적인 규율 체계를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둘러싸고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충돌하면서 내년 1월 발의로 넘어갔다. 토큰증권(STO) 관련 법안 역시 다른 현안에 밀려 12월 정기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본격화되고 있는 디지털자산 산업 육성 속도전에서 한국만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는 ‘가상화폐는 위험하다’는 인식 아래 소송 중심 규제를 펼치면서 미국의 가상화폐 산업 성장이 사실상 정체돼 있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며 “백악관과 SEC, CFTC가 잇달아 규제 기조 전환에 나서며 이 같은 친가상화폐 정책 조치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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