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BBB 등급 회사채 시장에 구조적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하이일드 펀드 세제 혜택 종료로 핵심 투자 수요가 사실상 붕괴된 데다, 발행 기업들까지 조달 비용 부담 탓에 채권시장에서 은행 대출로 발길을 돌리며 시장 위축 속도가 한층 빨라지고 있다. BBB 시장의 보완장치로 도입된 적격 기관투자자 사모채(QIB) 제도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저신용 채권 생태계가 급격히 말라붙는 모습이다.
27일 금융투자협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한 ‘2026년 채권 및 크레딧시장 전망과 투자전략’ 포럼에서 발표를 맡은 윤원태 SK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한국 BBB 시장은 단기 변동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 자체가 붕괴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2025년은 신용 사다리 균열이 본격 확산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BBB 시장을 떠받치던 마지막 지지대였던 하이일드 펀드 세제 혜택 종료는 시장 수급을 근본적으로 흔든 요인으로 꼽힌다. BBB 등급 회사채는 기관 중심의 안정적 수요가 취약해, 그동안 하이일드 펀드가 전체 발행물량의 약 30%를 흡수하며 시장 유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세제 혜택이 지난해 말 종료된 직후 펀드 잔고는 감소세로 돌아섰고 BBB 인수 비중도 32%에서 28%로 축소됐다. 윤 부장은 “하이일드가 사실상 BBB 시장의 최후 방어선이었는데, 이마저 붕괴되며 시장 유동성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요 측면의 위축과 더불어, 발행기업들이 스스로 BBB 시장을 떠나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그는 “현재 BBB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보다 은행대출이 더 저렴하다”며 “민평 금리가 저유동성 시장의 스프레드를 과도하게 반영해 채권 금리가 실제 위험보다 높게 책정되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BBB 잔액이 통상 500억~1000억 수준임에도 민평 산정 기준 거래단위가 100억으로 설정돼 있어 실질 시장가격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BBB 시장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QIB 제도도 현실과 동떨어진 구조라는 지적이다. 적격투자자 대부분이 대형 금융사다 보니 BBB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하고, 발행 절차는 사실상 공모 수준으로 까다로워 사모채 특유의 속도와 유연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윤 부장은 “QIB는 취지는 좋았지만 BBB 기업과 기관 투자가 간 미스매치 해소에는 실패했다”며 “현 체계로는 실질적 보완 장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윤 부장은 BBB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국내 신용구조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해온 BBB 시장이 무너질 경우 크레딧 시장 전체에 거대한 충격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A급에서 BBB급을 거쳐 투기등급으로 이동하는 계단식 구조가 유지돼야 충격이 흡수되는데, BBB 구간이 사라지면 A급 약세가 곧장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전이되는 단층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 부장은 “BBB 시장은 시스템 안정성을 지탱하는 중간 계층이자 충격 흡수 장치”라며 “이 구간이 붕괴되면 산업별 자금 흐름이 왜곡되고 신용 리스크가 훨씬 빠르고 크게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BBB 시장 정상화를 위해 △하이일드 펀드 세제 혜택 복원 △민평 산정 체계 유연성 확대 △거래 기준 단위 완화 △저신용 발행 절차 간소화 등 정책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윤 부장은 “현재 구조에서는 시장의 자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한국 크레딧 시장 전체의 신용사다리를 유지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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