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인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늦게까지, 가장 많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러한 높은 고용률의 이면에는 ‘일하는 즐거움’보다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만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과 은퇴 후 연금 수령까지 이어지는 소득 공백기, 이른바 ‘소득 크레바스(Income Crevasse)’가 고령층을 다시 노동시장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국민연금연구원 오유진 주임연구원의 ‘국민연금과 고령자 노동 공급’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가 20.3%에 달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상태다.
주목할 점은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이 37.3%(2023년 기준)로 OECD 평균(13.6%)을 크게 웃돌며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일본(25.3%)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통계청 조사에서 한국 고령층이 희망하는 근로 연령은 평균 73.4세였다. 그러나 계속 일하고 싶은 이유는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54.4%)’가 가장 많았다. ‘일하는 즐거움’(36.1%)이나 ‘무료함 달래기’(4.0%)보다 생계형 근로가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흐름의 근본 원인으로 턱없이 낮은 공적연금 수준을 꼽았다. 2024년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약 66만 원으로, 1인 가구 월 최저생계비(134만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서구 국가에서 연금이 은퇴를 가능하게 한다면, 한국에서는 연금으로 생계가 어려워 일을 끊을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여기에 법적 정년과 실제 퇴직 연령 사이의 괴리로 생기는 ‘소득 공백기’ 문제도 크다. 법적 정년은 60세지만 주된 일자리에서의 평균 퇴직 연령은 52.9세(2025년 기준)에 그친다. 반면 국민연금 수급 시작 연령은 1961~64년생이 63세, 1969년생 이후는 65세로 더 늦춰지고 있다. 직장을 떠난 후 연금을 받기까지 최소 10년이라는 ‘보릿고개’를 거쳐야 하는 셈이다.
보고서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출수록 연금액을 더 주는 ‘연기연금 제도’가 노동 공급을 늘리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당장의 소득 대신 더 많은 연금을 택하며 은퇴를 미루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적 모순은 남아 있다. 일정 소득을 넘기면 연금을 최대 50%까지 깎는 ‘노령연금 감액제도’가 대표적이다. 다만 보고서는 감액 기준 소득 자체가 높아 실제 많은 노인이 감액을 감수하면서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결국 한국의 고령자들은 연금이 있어도 일을 해야 하고, 연금이 나오기 전까지 생계를 위해서도 일을 해야 하는 이중의 압박 속에 놓여 있다. 보고서는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고령층 노동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정년 연장 차원을 넘어, 50대 초반에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개선하고 연금 수급 전까지의 공백기를 메울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일본처럼 기업에 70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newsuyeon@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