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EQT가 국내 1위 전사적자원관리(ERP) 기업 더존비즈온(012510)의 경영권을 인수합니다. 거래 규모만 1조 3000억 원에 달하는 '빅딜'입니다. 이번 딜은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딜 이후 의무공개매수와 관련한 논쟁이 다시 촉발되고 있습니다. EQT가 김용우 더존비즈온 회장과 신한금융에는 시가 대비 약 28%의 두둑한 프리미엄을 얹어줬지만, 일반 주주들의 지분은 전혀 사들이지 않았기 떄문입니다.
이번 거래를 통해 최대주주와 주요 재무적 투자자는 확실한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이루면서 엄청난 경영권 프리미엄을 챙기게 됩니다. 반면 같은 회사 지분에 투자한 소수주주들은 경영진 변경이라는 큰 변화 앞에서도 자신의 주식을 제값에 팔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당했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막대한 자본이 오가는 빅딜 속에서 소수주주들이 외면 받은 이유와 배경 그리고 쟁점을 짚어보려 합니다.
①주당 12만원에 김용우·신한금융 지분 '핀셋 인수'
이번 딜의 핵심은 EQT가 김 회장과 2대 주주인 신한금융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핀셋'처럼 집어내 인수했다는 점입니다. EQT는 김 회장의 보유 지분 23.2% 전량과 신한금융 계열사들의 지분 14.4% 등 자기주식을 제외한 지분율 기준 총 37.6%를 보유하게 됩니다. 자기주식을 포함한 발행 주식 수 기준 지분율은 34.8%입니다.
인수 가격은 주당 12만 원으로 책정됐습니다. SPA 체결 전일 종가 9만 3400원과 비교하면 약 28.4%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적용됐죠. 더존비즈온의 전체 기업가치는 약 3조 7300억 원 수준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상법 개정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던 시장 전문가들은 EQT가 지배주주의 지분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매입하고, 일반 주주들의 지분에 대해서는 공개매수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번 딜 구조가 현행법상 불법은 아니지만, 글로벌 스탠다드와의 괴리를 지적하는 목소리와 기업 경영권 거래의 효율성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이 사실이죠.
② 인수설 먼저 나와 주가 변동성↑ 공개매수 불발에 한몫
그렇다면 EQT는 처음부터 소액주주를 배제할 생각이었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IB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EQT 내부에서도 처음에는 잔여 지분 100% 공개매수 카드를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소수주주 지분까지 모두 매수하고 상장폐지를 하거나, 지배력을 최대한 100% 가까이 끌어올리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시장 상황이 발목을 잡았다는 말도 나옵니다. 이번 거래 협상 과정에서 시장에 매각 관련 소문이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이로 인해 더존비즈온의 주가가 급등하는 등 변동성이 상당히 컸던 것입니다. EQT는 주가가 널뛰기를 하는 상황에서 자신있게 공개매수를 실행하기가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정보 유출에 따른 내부자거래 의혹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 국내 대부분의 국내 공개매수 거래 주관을 독식하던 NH투자증권에서 최근 선행매매 사실이 확인되며 큰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펀드로서 이런 규정에 민감한 EQT가 적잖은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매각설이 돌며 주가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공개매수를 진행했다가 자칫 내부자 거래 이슈에 휘말릴 수 있었다”며 “결국 시장의 잡음이 소액주주들에게 돌아갈 수도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린 측면도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③"대주주만 경영권 프리미엄 독식" 비판 피하기 어려워
다만 EQT는 이번에 100% 공개매수를 하지 않으면서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김 회장과 신한금융도 따지고 보면 소수주주들과 나눠 가져가야 할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식하면서 더 큰 돈을 벌게 됐죠.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논평을 통해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이런 거래는 기업 인수·합병이라 일컫지 않고 지배주주의 사적이익(Private benefit)을 위한 것으로 본다”며"이는 회사 전체를 매각하는 것과 구분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이 사내이사를 겸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자신만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장하는 것이 총주주이익 보호의무를 위반하거나 회사의 기회를 유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지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촉구했습니다.
소수주주가 외면당하는 근본 원인은 한국 상법과 지배구조 시스템에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국에서는 30~40%의 지분만 확보해도 이사회를 장악하고 경영권을 완벽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자본주의 시스템이 굳건하게 자리잡은 국가들처럼 굳이 100% 지분을 확보하지 않아도 지배력을 완벽히 행사할 수 있으니, 인수자 입장에선 비용을 줄이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국회에서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논의가 한창입니다. 경영권 지분 인수 시 잔여지분도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매수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다만 이 제도를 도입할 시 불거지는 문제점도 있어 논쟁에 불이 붙고 있습니다. 만약 더존비즈온 거래에서 이 제도가 적용됐다면 EQT의 자금 부담은 3조 원 이상으로 폭증했을 것이고, 딜 자체가 무산됐을 가능성도 큽니다. 이 때문에 M&A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100%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에 대한 불편한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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