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첨단전략산업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150조 원 규모 국민성장펀드에 기존 정책펀드인 혁신성장펀드가 통합된다.
1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혁신성장펀드를 주관하는 KDB산업은행은 기존에 조성한 펀드를 올해까지 운용하고 내년부터는 국민성장펀드에서 혁신 성장과 관련한 투자와 출자 사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정부는 민간자금의 손실을 방어하기 위한 후순위 투자금 1조 원을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고 산업은행은 올해 말까지 국민성장펀드 전담 조직을 설치한다.
혁신성장펀드는 문재인 정부의 뉴딜펀드에 이어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산업 지원 펀드지만 두 펀드의 집행률이 48%로 낮아 문제로 지적됐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 펀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분산된 펀드를 통합해 운영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은에 전담 부행장 신설…일관성 확보 숙제
정부가 기존 정책펀드 규모의 10배 이상인 150조 원 이상의 국민성장펀드에 속도를 내자 산업계와 투자업계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산업은행에 12월까지 이를 전담할 국민성장부문 부행장과 60명 규모의 조직을 신설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전략산업에 투자금을 붓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정부 교체로 5년마다 오락가락하는 정책펀드가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은 국민성장펀드를 중심으로 정책펀드를 통합해 운영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150조 원의 규모가 그 간 10조~20조원 안팎인 정책펀드를 압도하는 수준인데다, 정책금융기관 주체별로 각각 펀드를 운영하면 중복과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막대한 자본이 장기간 필요한 인공지능(AI),2차전지, 우주항공 등의 분야에 대해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상대적으로 자본 규모가 작은 국내에서 지원 주체가 분산되면 정책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지원대상 겹쳐 일원화 필요 지적…60명 규모 꾸려 전략산업 집중투자
현재 혁신성장펀드가 지원하는 산업 대부분은 국민성장펀드의 지원 대상과 겹친다. 국민성장펀드는 AI,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바이오·백신, 수소·연료전지, 항공우주·방산, 모빌리티, 원자력·핵융합, 미디어·콘텐츠, 로봇 등 11개 분야에 지분투자, 인프라, 2%초저리 대출로 지원할 계획이다. 15조 원은 정부 재정을 포함한 기금에서 후순위 투자자로 참여하고 중순위와 선순위는 민간에서 75조 원을 유치한다. 이 밖에 산은이 추진하는 전략산업기금이 대출을 집행하는 구조다.
대상이 겹치는 것 외에 그간 혁신성장펀드의 집행률이 저조한 점도 통합의 배경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수익성이 나지 않는 기술 기업에 대해 민간 주도의 투자가 일어나지 않으면서 공공과 민간이 매칭 형태로 펀드를 조성하는 혁신성장펀드의 집행률이 낮았다”라며 “국민성장펀드처럼 정부가 재정을 포함해 손실 가능성이 높은 후순위를 받쳐야 민간에서 투자가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간접투자는 기존 산은 간접투자실 담당 전망
무엇보다 정권 입맛에 따라 달라지는 정책 펀드 전략 변경이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혁신성장펀드의 전신인 문재인 정부의 뉴딜펀드는 20조 원 규모로 당시로서는 대대적인 투자를 예고했으나, 실제 조성 규모는 11조 8322억 원에 그쳤다. 특히 대통령이 언급한 특정 산업에 투자처를 찾거나, 일자리 생성 기준에 따라 투자처를 선정하는 등 단기간 정책 목표에 끼어맞추려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과도한 정부 주도에 대한 문제점을 근거로 마중물 역할을 강조한 혁신성장펀드로 개편하며 9조 2556억 원의 펀드를 조성했다. 결과적으로 두 펀드를 합쳐 실제 집행금액은 절반 이하인 10조 1323억 원에 그쳤다. 이 밖에 구조조정을 위해 도입한 기업구조혁신펀드도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해 집행률이 저조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모펀드(PEF), 벤처캐피털(VC) 등 민간 투자자들은 산은의 간접투자 역할 재조정에 주목했다. 산은의 간접투자실은 펀드 출자자 중 큰 손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국민성장펀드 중 35조 원에 해당하는 간접투자는 기존의 산은 조직에서 담당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나머지 직접투자(15조 원), 인프라 투·융자(50조 원), 초저리대출(50조 원)은 산은 국민성장펀드부문에서 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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