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역학의 독특한 현상을 기존 원자 세계를 넘어 우리 일상에서 발견하고 이를 반도체 신기술과 양자컴퓨터 개발에 응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미국 물리학자 3명에게 주어졌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노벨위원회는 7일 전기회로에서의 거시적 양자역학 터널링과 에너지 양자화 현상을 발견한 공로로 존 클라크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 미셸 데보레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존 마티니스 교수를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0.1㎚(나노미터·10억 분의 1m) 크기의 원자 세계, 다시 말해 미시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여겨졌던 양자역학 현상을 우리 일상 세계인 거시 세계에서 발견해 오늘날 양자컴퓨터·양자암호·양자센서 등 양자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양자역학은 20세기 초 원자와 전자의 운동을 이해해나가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원자와 전자는 크기가 매우 작고 파동의 성질도 가져 일상의 사물과는 다른 독특한 현상, 즉 양자역학적 현상을 보인다. 양자 터널링과 에너지 양자화가 대표적 예다.
양자 터널링은 전자가 절대 통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벽을 통과하는 현상이다. 전자를 공으로 비유하면 벽을 향해 공을 수없이 많이 던졌을 때 가끔 한번씩 공이 벽을 통과해 반대편에서 관측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에너지 양자화는 원자나 전자가 에너지 준위(레벨)라고 부르는 정해진 에너지 크기만을 가질 수 있는 현상이다. 가령 일상의 사물이 1부터 100까지 다양한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면 원자나 전자는 5, 10, 15, 20… 같은 식으로 불연속적인 몇몇 에너지만을 가질 수 있고 그외 6이나 19 같은 ‘애매한’ 에너지는 가질 수 없다.
원자와 전자는 그 수가 많아질수록 기존에 없던 영향들을 서로 주고받기 때문에 홀로 있을 때의 양자역학 특성도 희미해진다. 수많은 원자와 전자가 서로 결합해 물질을 이루는 거시 세계에서는 웬만해서는 양자역학 현상을 관찰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하지만 거시 세계 역시 원자와 전자가 근간을 이루는 만큼 ‘보이지 않는’ 양자역학 현상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령 오늘날 반도체 칩(IC·집적회로)에서 전자는 전선을 따라서만 흘러야 하지만 점점 집적화·미세화할수록 양자 터널링 때문에 전류가 의도치 않는 흐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반도체 칩 설계 시 양자 터널링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셈이다. 또 에너지 양자화에 따른 에너지 준위는 오늘날 구글·IBM 등 글로벌 빅테크의 초전도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핵심 개념이다. 전기 저항이 0인 물질인 초전도체 2개 사이에 얇은 이물질을 끼워넣으면 그 안의 원자들이 두 가지의 에너지 준위만을 가질 수 있는 ‘조셉슨 접합’이라는 현상이 일어나고 이때의 두 에너지 준위를 각각 0과 1에 대응시켜 계산하는 게 초전도 양자컴퓨터의 기본 원리다.
수상자 세 사람은 이처럼 거시 세계에서의 양자역학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이들은 1984년 조셉슨 접합이 일어나는 초전도체 전기 회로를 만들고 이 안에서 다양한 수치를 측정하며 양자역학 현상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이 회로에서 전자들이 기존 이론과 달리 전압이 0인 상태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양자 터널링을, 특정한 양의 에너지만을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것으로서 에너지 양자화를 직접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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