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도로가 갑자기 꺼지며 차량이 푹 빠지는 사고, 경기 지역의 아파트 단지 앞 인도에서 불쑥 생겨난 커다란 구멍, 지방 도시 주택가의 골목길에 난 원형 함몰. 국내에서는 최근 크고 작은 싱크홀(지반 함몰)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싱크홀의 원인은 다양하다. 지하에 땅속 동공이 자연적으로 형성돼 있다가 무너지는 경우도 있고, 지하수 과다 사용이나 노후화된 상하수도관 누수처럼 인위적 요인이 겹쳐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도시 인프라가 복잡하게 얽힌 곳에서는 공사 중 굴착과 진동이 방아쇠 역할을 하면서 싱크홀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하 변화를 미리 알아내는 것이 유일한 예방책”이라고 강조한다.
레이더와 위성, ‘보이지 않는 땅속’을 보다
싱크홀을 탐지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다양한 기술을 동원한다.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 중 하나가 지하투과 레이더(GPR·Ground Penetrating Radar)다. 전자파를 땅속으로 쏘아 반사되는 신호를 분석하면 지하의 빈 공간이나 약해진 지층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좁은 지역 단위로 정밀 조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넓은 지역을 동시에 조사하기는 어렵다.
이 한계를 보완하는 기술이 위성 간섭합성개구레이다(InSAR·Interferometric Synthetic Aperture Radar)다. 위성에서 보내는 마이크로파 신호를 통해 지표면이 미세하게 내려앉는 변화를 포착하는 방식이다. 몇 밀리미터 단위의 움직임도 장기간 축적해 추적할 수 있어, 싱크홀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선별할 때 활용된다. 서울 도심 일부와 인천 송도, 대전 도심 등에서는 실제로 InSAR 데이터를 활용한 지반 안정성 모니터링이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외에도 지하수 모니터링 역시 중요한 방법이다. 특정 지역의 지하수 수위가 갑자기 낮아지거나 물길이 바뀌면 지하 공동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주요 도시 지하수 관측망을 통해 지반 안정성과 싱크홀 발생 위험을 동시에 분석하고 있다. 최근에는 드론을 이용해 항공 사진을 촬영한 뒤 인공지능(AI)으로 지반 미세 변화를 감지하는 시도도 활발하다.
싱크홀 안심 지도, 도시 안전의 나침반
과학적 탐지 기술이 쌓이면 결국 목표는 ‘예방’이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최근 다양한 방식으로 싱크홀에 대비하기 위한 위험 지도를 개발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은 지하시설 노후화와 대규모 개발공사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반복되는 땅꺼짐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 누구나 위험 정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땅꺼짐 안심지도’를 구축 중이다. 이 지도는 도시 지하에 묻힌 상하수도관, 열수송관, 지하철 등 지하시설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인공지능(AI)이 시설 밀집도와 주변 지반 특성을 종합 평가해 위험-주의-안전 3단계로 구분해 표시한다. 관리자는 물론 일반 시민도 위험 지역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사고 예방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KICT는 안심지도를 더욱 정밀하게 만들기 위해 새로운 기술들을 접목하고 있다. 가로등이나 교통 표지판에 센서를 부착해 땅속 진동과 변형을 실시간 감지하고, 매일 같은 구간을 다니는 버스에 ‘지하 블랙박스’를 설치해 이상 신호를 수집하는 방식이다. 또한 기상 변화와 굴착공사 위험도 반영해 지도 예측력을 높이고, 디지털 트윈 기술을 연계해 실제 도시 지반 상태를 3차원으로 구현할 계획이다. 연구진은 “땅꺼짐은 발생 횟수는 적지만 인명 피해로 이어지기 쉽다”며 “과학적 감시와 안심지도를 통해 최소한 사망자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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