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10곳 중 6곳 이상이 미국의 관세 정책과 상법·노동조합법 개정 등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면서 신규 채용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면서 청년들은 올해도 혹독한 고용 한파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11일 한국경제인협회가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올 하반기 대졸 신규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10곳 중 6곳(62.8%)은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하반기(57.5%)보다 5.3%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수립한 기업(37.2%)이라도 채용 규모는 지난해보다 줄이겠다고 답한 비중이 37.8%에 달했다. 지난해 하반기(17.6%) 대비 20.2%포인트 급증했다.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기업 비율은 24.4%로 같은 기간 6.8%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기업들은 불확실한 경영 환경이 채용 규모를 줄이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 부과 시기와 대상을 게릴라식으로 밝히며 수출기업들이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정치권은 기업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법을 수차례 개정하고 노란봉투법까지 통과시키면서 국내 경영 환경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신규 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비중이 높은 업종은 건설·토목(83.3%), 식료품(70.0%), 철강(69.2%), 석유화학(68.7%) 순으로, 노란봉투법 및 관세 부과로 인해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곳들이 많았다.
주요 기업들은 인공지능(AI) 산업 확대와 모빌리티 전환 등 빠르게 변하는 전방 산업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적시에 뽑는 수시 채용으로 인사 정책을 바꾸는 상황이다. 올해는 대내외 환경의 변화까지 겹치면서 채용 계획을 잡기가 더욱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신입 사원을 채용해 교육하고 현장에 투입하기에는 경영 환경이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다”며 “필요한 인력을 즉시 뽑아야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고령화 빨라지고 청년 고용 줄어
"고용유연성 높이고 사회안전망 강화해야"
"고용유연성 높이고 사회안전망 강화해야"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임금이 40% 넘게 적었고 근속연수도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년과 임금을 지속적으로 올린 대기업이 고용은 줄이면서 지난 20년 간 대·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분석이다. 고용유연성과 사회안전망을 함께 높이는 방식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해야 청년고용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7일 ‘우리나라 노동시장 이중구조 실태와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경총은 보고서를 통해 “지난 20여년간(2004~2024년) 우리나라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임금 등 근로조건 격차가 지속되거나 더욱 심화되어 왔다”라며 “특히 진입장벽이 높은 대기업 정규직 내 고령자 고용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지난 20여년간 우리나라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특히 정년 60세 법제화의 영향으로 2010년대 중반 이후 대기업 정규직 가운데 고령자 고용이 급증하면서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더 어렵게 했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대기업들도 인력들이 늙어가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대기업 정규직 가운데 고령자 고용은 492.6%나 증가했다. 반면 청년 고용은 오히려 1.8% 감소했다. 대기업 정규직 내 고령자 고용 비중은 6.4%포인트 증가(2.9%→9.3%)했으나 청년 고용 비중은 오히려 6.4%포인트 감소(13.7%→7.3%)하면서 고용 비중도 역전됐다.
무엇보다 노조가 있는 대기업은 정규직의 고령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청년 고용도 위축됐다.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 가운데 고령자 고용은 2004년 대비 777.0%나 늘어난 반면 청년 고용은 오히려 1.8% 줄었다. 또 고령자 고용 비중은 2004년 2.7%에서 2024년 10.7%로 8.0%포인트 증가해 청년 고용 비중을 넘어섰다.
임영태 경총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노동법제와 사회안전망으로 두텁게 보호받는 약 12%의 대기업 정규직과 보호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약 88%의 중소기업 또는 비정규직으로 구분되는 우리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청년에게는 좌절감을 안기고 기업에는 활력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이라며 “2010년대 중반 이후 대기업 정규직 가운데 고령자 고용은 급격히 증가하고 청년 고용은 위축된 현상은 정년 60세 법제화로 대기업 정규직 내 세대 간 일자리 경합이 더욱 치열해진 결과”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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