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련해 준비자산으로 단기 국고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금리 왜곡과 통화정책 수행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 11일 ‘스테이블코인과 단기 국고채’ 세미나를 열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 안전한 준비자산이 필요하다면서 단기 국고채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필규 자본연 선임연구위원은 “스테이블코인과 단기 국고채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린 문제”라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단기 국고채 발행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은 만기 1년 이하의 단기 국고채가 없으며 2년물 이상 중·장기물이 국채시장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만기 1년 이하 구간은 통화안정증권(통안증권)이 대체해 왔다. 이때 단기 국고채가 도입되면 91일물 통안증권 등 동일 만기 채권 사이에서 경합할 수밖에 없다. 통안증권은 한국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해 은행 등 금융기관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유가증권이다.
국고채는 정부의 장기 자금 조달 수단이고 통안증권은 통화정책 집행 과정에서 유동성을 흡수하거나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행되는 만큼 성격과 역할이 다르다.
이번 논의는 특히 의미가 있다. 자본연은 민간 연구소이기는 하지만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의 연구 용역을 주로 수행하기 때문에 당국의 입장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그간 단기 국고채 발행 제약 사유로 통안증권 존재를 들어왔지만 이번 논의가 노선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의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인 만큼 준비자산 마련 과정에서 단기 국고채 논의가 재점화되고 기재부와 한은 간 협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학계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실수요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고 지적할 만큼 단기 국고채 수요 확보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단기 국고채 흥행 실패로 이어질 경우 통안증권을 비롯한 단기금리가 오르고 기업어음(CP)·양도성예금증서(CD) 등 단기 신용물 금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원화 지폐에 대한 초과 수요가 없어 채권 수요 확대를 장담하기 어렵다”며 “달러화는 초과 수요가 있어 국채 수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단기 국채를 발행할 경우 대규모 만기 도래에 따른 재정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년 미만의 단기채 위주로 발행하면 한꺼번에 만기가 돌아와 상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반면 장기채는 여러 해에 걸쳐 세입으로 채무 상환을 분산할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자금시장에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은 대부분 단기로 유동화돼 발행된다"면서 "단기 금리 관리가 그래서 중요한건데 단기 국고채 도입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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