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부는 그동안 “401k 상품에 가상화폐 옵션을 추가하려는 이들은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퇴직연금에 가상화폐를 편입하는 것을 사실상 반대해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5월에는 해당 지침이 철회됐고 이번에 401k에 가상화폐를 담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미국의 은퇴연금 시장 규모는 43조 달러(약 5경 9700조 원)에 달한다. 이 중 약 9조 달러가 401k에 보관돼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가상화폐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산운용사와 투자 관리자들이 가상화폐에 주목하면서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의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퇴직연금 시장을 개방하는 데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아 실제 편입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예측이 있지만 업계에서는 비트코인과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 수백억 달러의 자금이 흘러들어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401k 전체 자산 9조 달러의 1%만 가상화폐 시장으로 들어와도 900억 달러가 시장에 유입되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이 행정명령이 블랙록과 피델리티 등 가상화폐 ETF 운용사에 호재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상화폐 수요가 늘면서 채굴 기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6일부터 이달 5일까지 서학개미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미국 상장 채굴 기업인 비트마인(BMNR)이었다. 국내 투자자들은 올 6월 초 상장한 이 기업의 주식을 한 달간 2억 5833만 달러어치나 사들이면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비트마인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본사를 둔 코인 채굴·투자 기업이다. 특히 이더리움을 대규모로 매입해 보유하는 전략을 앞세워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수혜주로 부각된 점도 국내외 투자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상장 첫날 7.75달러에 장을 마감했던 비트마인은 한때 종가 기준 135달러까지 치솟으며 1642%의 주가 상승률을 나타내기도 했다.
개인뿐 아니라 주요 기관투자가도 채굴주에 주목하고 있다. JP모건은 지난달 말 가상자산 채굴주에 대한 분석 보고서에서 “비트코인 채굴 수익성은 최근 반감기(2024년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13개 채굴 업체 중 10개 업체의 채굴 수익성이 7월 비트코인 가격 상승률을 상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표적 채굴주인 마라홀딩스(MARA)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비중 확대’로 상향하고 연말 목표가를 19달러에서 22달러로 올렸다. 또 다른 채굴주인 클린스파크(CLSK)에 대해서는 최우선 추천 종목 등급을 유지하고 목표가를 14달러에서 15달러로 높여 잡았다.
전문가들은 미국 지니어스법 통과로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이 가속화되면서 채굴주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가상자산을 직접 보유하지 않더라도 관련 산업의 수혜를 누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니어스법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주요 가상자산을 증권이 아닌 상품으로 간주하고 거래소, 수탁사, 발행 기업에 대한 규제를 명확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채굴 기업 입장에서 규제 불확실성을 크게 줄이고 제도권 수혜를 기대하게 하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된다. 여기에 가상자산 ETF 실물 상환 허용 등 투자 인프라 확대 조치가 병행되면서 관련 산업의 투자 매력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특정 종목을 선별하는 것이 어렵다면 발키리비트코인마이너스(WGMI)와 같은 가상자산 채굴 기업 ETF를 편입하는 것도 안전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해당 ETF 편입 기업들의 매출은 올해 52% 늘고 내년에도 57% 증가하면서 외형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년간 해당 ETF의 주가 상승률은 38%에 이른다.
다만 투자에 앞서 주의할 점도 있다. 채굴 기업은 비트코인 가격 하락 시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데다 채굴 난도 상승이나 해시레이트 변동에 따라 수익성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시레이트는 채굴 컴퓨터가 초당 수행하는 연산 횟수로, 얼마나 빠르게 비트코인을 캐낼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고정비 부담이 크고 자산의 상당 부분이 가상자산인 만큼 회계적 손실 리스크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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