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 상장 논란을 피해갈 수 있는 대기업 계열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예 금지하면 우리 산업계의 자금 조달도 막힐 수 있습니다.”
최근 만난 한 증권사 임원은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 화두가 된 중복 상장을 두고 ‘자금 조달을 통한 신사업 투자’를 강조했다. 이에 최근 10년 기록을 뒤져봤다. 2015년 이후 코스피 시장에 중복으로 오른 대기업 계열사는 약 20개. 이들이 조달한 금액은 29조 1841억 원이다. 증권신고서를 살펴보면 공모자금 대부분은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R&D), 인수합병(M&A)에 쓰였다. 증권업계의 시각이 아예 틀리지는 않은 것이다.
중복 상장이 문제가 되는 것은 모회사 주식의 디스카운트 때문이다. 투자자는 회사의 재무제표, 사업, 미래 비전을 보고 주식을 산다. 핵심 사업을 떼어내 중복으로 증시에 올리면 당연히 모회사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 분할해 상장시킨 LG화학, 2021년에만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 등 2개 기업 IPO를 진행한 카카오 등의 주가는 장기간 부진했다. 개인투자자의 원성이 높아지고 이를 의식한 당국이 중복 상장 문제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 정치권에서 아예 법 개정 움직임까지 생기는 최근 흐름을 산업계는 받아들이고 자성해야 한다.
다만 단순히 모회사가 상장사라고 해서 모든 자회사의 신규 상장을 막는 것은 곤란하다. 자회사가 신사업 추진을 위해 새로 인수한 스타트업인 경우, 모회사가 지주회사인 경우 등 중복 상장의 유형은 각기 다르다. 자회사 IPO로 자금을 조달해 새로운 산업을 개척하는 측면도 분명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시설 투자와 R&D 목적 공모자금 12조 7500억 원을 모으지 못했다면 우리나라의 2차전지 산업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최근 법 개정 흐름이 전면적인 중복 상장 금지보다는 모회사 주주 보상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다행스럽다. 잦아들지 않는 논란 속에서 투자자들의 주주 권익을 보호하면서도 우리 산업계의 성장 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출구전략’을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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