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마세라티의 정신에는 질주 본능이 서려있다. 1926년 마세라티 창업주인 알피에리 마세라티가 첫 번째 레이싱 모델인 ‘티포 26’에 탑승해 이탈리아 ‘코파 플로리오’에서 우승을 거둔 것이 시작이다. 1930년대에는 8기통 경주용차인 이른바 ‘8CM(8 Cilindri Monoposto)’차량을 선보이며 메르세데스-벤츠, 페라리 등 당대의 그랑프리 레이싱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타지오 누볼라리, 아킬레 바르치 등 이탈리아의 전설적 레이서들도 마세라티 차량을 타고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끌어냈다. 단순히 고급차 브랜드가 아닌 압도적인 고성능 차량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마세라티를 찾는 이유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마세라티는 변화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세라티는 올 해까지 모든 라인업의 전동화를 목표로 제시했다. 2028년에는 전체 제품군을 전동화 모델로 선보인다. 마세라티가 선보이는 첫 전기차 모델은 그란투리스모 폴고레.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과 섬세한 엔지니어링을 통해 110년 역사를 전동화에 담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28일 그란투리스모 폴고레를 타고 서울 강남에서 인천 인스파이어 리조트까지 약 80㎞를 달렸다.
그란투리스모 폴고레는 시작부터 달랐다. 시동을 걸자 전기차라는 것을 잠시 잊은 듯 엔진의 진동이 느껴졌다. 마세라티는 헤리티지의 핵심 요소인 V8엔진의 사운드를 디지털 음향 기술로 재현했다. 마치 내연기관차를 탄 듯 하부에서 엔진 진동도 느껴졌다. 마세라티 관계자는 “순수 전기차로서 마세라티 마니아들을 만족시키 위한 요소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한산한 도로에서 가속 패달을 밟자 공차 기준 2320㎏의 무거운 차량이 가볍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밟는 그대로 치고 나가는 스포츠카의 재미를 전기차에 그대로 옮겨 심은 셈이다. 실제 전기차는 최대토크에 도달할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내연기관차와 달리 모터의 힘이 처음부터 높게 작용할 수 있어 속도를 높이기 좋다.
더욱이 그란투리스모 폴고레에는 300㎾(킬로와트) 전기모터가 세 개나 탑재됐다. 차체의 65%에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했고, 마그네슘과 플라스틱 소재도 포함됐다고 한다. 공기저항개수도 내연기관 모델보다 7% 개선됐다. 최고출력 778마력, 제로백(시속 0㎞에서 100㎞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7초.
고속 주행 상황에서도 불안함은 없었다. 그란투리스모 폴고레는 바닥을 꽉 움켜잡고 코너링할 때도 안정적인 주행을 이어갔다. 배터리가 차량 하부에 T자형으로 배치돼 무게 중심을 바닥으로 최대한 끌어내린 덕분이다. 주행 방향을 바꿀때도 관성이 감소해 더욱 빠른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 마세라티 측 설명이다. 그란투리스모 폴고레에는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탑재됐다. 복합기준 1회 최대 충전거리는 341㎞다.
우아한 디자인도 압권이다. 긴 보닛과 네 개의 펜더가 교차하는 차체의 곡선에서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마세라티 고유의 디자인인 ‘코팡코’ 등 클래식한 요소를 유지한 채 고성능을 위한 다양한 요소들을 추가한 결과다. 루프 라인은 하강하는 느낌을 더해 역동적인 느낌을 강조했으며 마세라티 특유의 ‘넵튠 삼지창’ 로고가 새겨진 필러 곡선도 눈길을 끈다. 헤드램프에는 마세라티의 새로운 시그니처인 수직형 라이트가 적용됐다. 그란투리스모의 전장·전폭·전고는 각각 4960㎜·1960㎜·1375㎜다.
편의 사양도 대거 추가됐다. 그란투리스모에는 반응성이 뛰어난 최신 마세라티 인텔리전트 어시스턴트(MIA)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장착됐다. 여러 개의 탭을 기반으로 화면을 구성해 한번의 터치로 시트·룸밀러 포지션, 실내 온도 등을 맞춤 설정할 수 있다. 이와함께 블루투스로 두 대의 스마트폰을 동시 연결할 수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액티브 차선 보조장치와 3D 로드뷰, 후방 비상제도 등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도 넉넉하다.
다만 비포장도로에서 하부 소음이 두드러지는 점은 아쉬웠다. 노면의 바닥과 진동이 운전석에 불쾌하게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차체가 낮은 만큼 가속방지턱 등 둔덕에 걸릴 것 같은 불안함도 있다. 가격은 2억 6620만 원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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