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가덕도신공항 사업을 수주했던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사실상 ‘백기’를 들면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터져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13조 7000억 원으로 추산됐던 사업비는 현재 얼마가 더 들어갈지 예상하기도 어렵다는 게 건설 업계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가덕도 사업을 부실 SOC 사업의 교과서라고 보고 있다. 이 사업은 문재인 전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22년 4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으며 본격 추진됐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경제성이 없다고 평가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합심해 예타 면제를 결정하면서 13조 7000억 원의 예산 투입이 결정됐다.
하지만 예타가 면제되면 단순히 비용대비편익(B/C)이 낮다는 문제를 넘어 공사 자체가 부실하게 기획되고 결과적으로 공기와 공사비가 모두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초 조사가 부족하니 설계가 부실하고 이에 따라 공사 계획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여름철에 태풍이 오게 되면 초비상인데 이런 위험을 감수하려면 공항을 튼튼하게 지어야 한다”면서 “조금이라도 파손이 나면 공사 기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고 안전성을 담보하려면 공사비도 많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주먹구구로 밀어붙인 SOC 사업들이 국가 재정 건전성에 막대한 부담을 안기게 된다는 점이다. 2019년 예타 면제를 받아 추진되고 있는 새만금국제공항이 대표적 사례다. 예타 면제 전 이 사업의 B/C는 0.479로 기준치인 1을 밑돌았다. 국토부는 이용객 수요를 연 60만 명으로 추정했지만 실제로는 여기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더 우세하다. 당초 8000억 원대였던 공사비는 현재 1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핵심 공약이었던 서부경남 KTX와 문재인 정부 시절 남과 북을 잇겠다며 추진된 강릉~제진 동해북부선도 모두 예타를 면제받은 뒤 추진되다가 표류하면서 혈세를 낭비한 사업들이다.
우리나라 재정 건전성은 이미 급격히 빠른 속도로 망가지고 있다. 2021년 970조 7000억 원이었던 국가채무는 2024년 1175조 2000억 원으로 뛰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역시 이 기간 43.7%에서 46.1%로 상승했다. 인구구조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증가와 전 세계가 뛰어든 인공지능(AI) 투자 경쟁, 에너지 전환까지 재정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엉뚱한 사업에서 국가적 자원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는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기면 신용등급 절하를 각오해야 한다”며 “대선 과정에서 선심성 공약이 쏟아지고 있어 건전성 사수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선심성 SOC 사업이 반복되지 않도록 B/C 분석을 철저하게 하고 예타 면제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정욱 국립한국교통대 교수는 “표를 얻기 위해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공항 건설 계획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라며 “정확한 수요 예측에 기반해 경제적 타당성을 따져 건설 여부를 결정하고 정치적 외압을 막을 수 있는 독립적인 의사 결정 체계를 더 늦기 전에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가덕도신공항을 비롯해 예타 면제를 강행한 사업들이 재정 부담과 사업성 미비로 잇따라 좌초되면서 정부 내부에서도 예타 면제를 더욱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 특히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고속철도특별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해 예타 면제를 압박하고 있다. 해당 건설 사업(11조 2999억 원)은 국토부 사전 타당성 조사에서 비용 대비 편익이 0.483에 그쳤는데 1이 넘지 않아 경제적 효용보다 비용이 더 큰 사업이다. 하지만 국토부의 올해 핵심 추진 과제 중에 달빛고속도로 예타 면제가 포함돼 있다.
정부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재정 건전성과 수요 분석을 동시에 고려하면 예타 면제를 해서는 안 되는 사업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예타 제도 자체의 실효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재정 당국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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