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 보험사 인수 추진을 공식화했다. 한국투자금융그룹은 그간 매물로 나온 보험사의 유력한 매수 후보로 거론될 때마다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어왔다. 그러나 경쟁사로 꼽히는 비은행 금융지주인 미래에셋과 메리츠가 모두 보험 계열사를 두고 시너지를 내며 치고 나가자 김 회장이 승부사 본색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김 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한투그룹의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보험사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매물로 나온 보험사들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BNP파리바카디프생명 등에 대한 인수설이 있는데 구체적인 후보가 있느냐고 묻자 “여러 선택지를 두고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한투그룹 경영진 차원에서 보험사 인수를 공식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투그룹은 보험사 매물이 나올 때마다 유력 인수 후보로 꾸준히 거론됐다. KDB생명(2022년), ABL생명(2023년), 동양·ABL생명 패키지 매각(2024년), BNP파리바카디프생명(2025년) 등 햇수로만 4년째다. 투자은행(IB) 업계는 한투그룹의 투자설명서(IM) 수령 사실에 유력한 원매자가 나타났다고 들떴다가 막상 입찰에는 모습이 보이지 않자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올 2월에도 한투그룹의 생보사 인수설이 수면 위로 부상했지만 “구체적 협상 등은 없다”며 인수설을 잠재운 바 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라 보인다. 한투그룹 외연 확장과 사업 다각화의 키를 쥔 김 회장이 보험사 인수 의지를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한투그룹 내부에서도 증권에 치우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동시에 계열사 간 시너지를 증진하는 차원에서 보험사 인수의 필요성을 크게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IB 업계 관계자는 “오너 그룹 사이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존재한다”며 “비은행 금융지주인 미래에셋과 메리츠 모두 보험 계열사를 통해 사업 레버리지를 일으켜 성장 속도를 높인 점이 한투그룹 차원에서도 의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 다각화로 외연 확장…'종합금융그룹 도약' 속도낸다 [시그널]
그룹내 한투證 자산비중 80% 넘어
PBR 0.52배에 시총도 4.2조 불과
보험사 인수로 실적 캐시카우 확충
계열사간 시너지 측면서도 매력 커
자산 규모 큰 생보사 인수에 눈독
미래에셋·메리츠와 격차 줄일 기회
보험사 인수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던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 인수 추진으로 입장을 선회한 배경은 크게 세 가지가 꼽힌다. 한투그룹 전체 자산과 실적에서 증권사 의존도가 80%를 웃돌며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필요성이 커졌고 금융지주로서 추가 사업 기회 발굴과 존재감 확대를 위해서는 보험사 인수로 자산 규모를 확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은행 금융지주 경쟁사인 미래에셋과 메리츠의 급격한 사세 확장도 한투그룹의 보험사 인수를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김 회장 개인적 측면에서도 한투그룹의 보험사 인수는 그의 오랜 꿈인 종합금융그룹 도약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투그룹은 시중에 매물로 나온 다수 보험사에 대한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유력 인수 후보로는 BNP파리바카디프생명 등 중형 보험사가 거론된다. 현재 우리금융지주가 인수를 추진 중인 동양·ABL생명 건도 금융 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다시 매물로 나올 경우 인수 타진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명보험사 인수가 여의치 않을 경우 롯데손해보험도 인수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한투그룹이 이처럼 폭넓게 보험사 인수에 관심을 두는 건 우선 포트폴리오 다각화 필요성이 부쩍 커졌기 때문이다. 한투지주의 지난해 말 자산 총액(연결 기준)은 109조 2202억 원인데 이 중 한국투자증권 홀로 90조 7214억 원을 차지해 비중으로는 83.1%에 해당한다. 한국투자저축은행(9조 230억 원, 9.9%), 한국투자캐피탈(5조 5819억 원, 6.1%) 등 계열사도 있지만 증권에 비해서는 존재감이 미미하다.
실적을 뜯어보면 한투지주의 증권 의존도가 한층 두드러진다. 지난해 연결 기준 한투지주 영업이익은 1조 1995억 원이었는데 한투증권은 1조 2837억 원이었다. 자회사인 증권 실적이 지주 실적을 웃돌며 한투증권의 한투그룹 내 영업익 비중은 107%로 집계됐다. 적자를 기록한 여타 계열사 실적을 증권이 상쇄한 영향이다. 증권이 호실적을 낼 때는 지주 실적이 상승하는 효과를 내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실적 급락이 불가피한 것이다.
지주사 실적이 특정 계열사 성과에 따라 오르내리며 한투지주에 대한 시장 평가도 박한 편이다. 비은행 금융지주 중 지주사 단일 상장 체제를 유지하는 메리츠금융지주(138040)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2.34배인 데 반해 한투지주는 0.52배에 불과하다. 시가총액도 크게 차이 난다. 메리츠금융지주의 시총은 22조 5431억 원인데 한투지주는 4조 1794억 원에 불과하다.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한 관계자는 “실적이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점을 고려해도 시총이 다섯 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은 기업 펀더멘털과 주주 환원 측면에서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밸류업(국내 증시 재평가) 측면에서도 포트폴리오 다각화 필요성이 부각되는 것이다.
자산 규모 확대, 시너지 측면에서 보험사 인수는 매력적인 선택지다. 특히 한투지주는 손보사보다는 생보사 인수를 눈여겨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생보사는 보험계약 건당 납입금이 크고 종신연금보험 등 저축성 상품을 통한 수신 기능을 갖고 있어 자산 규모가 손보사에 비해 크다. 또 한투그룹 내 자산운용 역량을 바탕으로 시너지를 내기에 손보사보다는 생보사가 더 유리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비은행 금융지주 중 경쟁사로 꼽히는 미래에셋과 메리츠의 급격한 성장도 한투지주의 보험업 진출 발걸음을 재촉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래에셋과 메리츠는 각각 미래에셋생명(085620)과 메리츠화재 등 보험 계열사를 보유했지만 한투지주는 증권을 제외하고는 실적 캐시카우를 하기에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자산운용·벤처캐피털·저축은행 등이 전부다. 경쟁사가 보험 계열사의 탄탄한 자금을 기반으로 계열사 간 시너지를 높이는 데 반해 한투지주는 증권사의 개인기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김 회장 개인 측면에서 볼 때 보험업 진출은 한투지주의 진정한 종합금융그룹 도약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투그룹은 카카오 대비 딱 1주 적은 주식을 가져 카카오뱅크 2대 주주(27.16%)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사실상 보험사만 인수하면 종합금융그룹 반열에 오르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 회장은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고문으로 모시고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 등을 멘토로 삼는 등 한투그룹의 종합금융그룹 도약 청사진을 오래전부터 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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