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려고요? 구매는 안되구요, 구독만 가능해요. 구매해도 지금 배송받으려면 2-3주 여유는 잡으셔야 해요. 저희만 그런게 아니라 여기 입점한 가전제품은 다 그래요.”
6일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합정점 내 가전제품 매장. LG와 삼성, 쿠쿠, 쿠잉 등 가전제품 회사에서 판매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모두 고객들에게 배송이 불가하다고 안내했다. 재고가 남아있는 상품을 구매해 들고 가는 건 가능하지만, 현재 상품이 공급되지 않아 신규 배송 주문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LG 매장 직원은 “홈플러스에서 대금이 입금되지 않은 상태라 전날부터 TV, 냉장고, 청소기 등 모든 상품의 납품이 전부 중단됐다”면서 “이미 주문을 완료한 고객들에게도 사실상 배송을 무기한 기다려야 하는 상태니 취소를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매를 희망하는 고객들을 다른 매장으로 안내하는 아이러니한 풍경도 생겨났다. 이날 삼성 매장 직원은 청소기를 배송 주문해달라는 70대 여성 고객의 요청에 “홍대 매장에서도 같은 모델을 판매하고 있다”며 돌려보냈다. 납품 재개 시점이 불투명한 상황해 배송 일정을 장담하기 어려운 탓이다.
같은 날, 홈플러스 월드컵점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이날 홈플러스 직원은 “가전 회사 중에서는 그나마 쿠쿠만 배송이 됐었는데, 이젠 싹 다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전날부터 모두 공급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동서식품, 오뚜기, 삼양식품 등 식품회사에 이어 LG전자, 삼성전자, 쿠쿠전자 등 가전제품 회사들이 줄줄이 홈플러스에 제품 납품을 중단했다. 홈플러스로부터 1월 매출 대금을 정산받지 못하자 공급을 멈추기로 결정한 것이다.
공급 재개 시점은 불투명하다. 납품업체들은 대금이 들어오는대로 공급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홈플러스 측은 아직 지급 시기를 공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홈플러스에서 돈을 언제 준다는 일정이 나와야 납품을 다시 할 수 있을텐데, 아직 아무런 공문이나 공지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유통 업계에서는 이 같은 납품 중단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도 마트는 정상영업한다고 강조해왔으나 팔 물건이 없으면 사실상 정상 영업은 불가능하다.
지금 같은 추세대로라면 홈플러스가 남은 기간 할인 행사를 치를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홈플러스는 대규모 할인 이벤트인 ‘홈플런’을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진행하기로 예고했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 중에서는 다른 마트들에는 납품 안 하고 홈플러스에만 납품하는 곳들이 있다”며 “대기업이 납품을 중단하면 중소기업들까지 납품 중단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언급했다.
홈플러스 직원들 역시 불안감을 드러냈다. 안수용 홈플러스지부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홈플러스가 힘들다면 함께 견뎌야 한다'며 버텼는데 우리의 헌신은 배신으로 돌아왔다”며 “현장에서는 회사가 언제 망할지, 폐점이나 정리해고로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몰라 직원들의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협력사들에 대금 지급이 지연되고, 전자기기·식자재 등의 납품이 줄줄이 중단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선 “우려가 많다”면서 “직원들은 홈플러스 매장 내 작은 테넌트 공간이 비는 것만 봐도 가슴이 철렁한데, 이제는 매장 내 매대 자체가 빌까봐 불안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에 홈플러스는 납품업체들을 설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업 회생 절차 개시로 인해 일시 중지됐던 일반 상거래 채권에 대한 지급을 이날부터 재개했다며 관련 업체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홈플러스 측은 “현재 가용 현금 잔고가 3090억 원이고 3월 동안에만 영업활동을 통해 유입되는 순 현금 유입액이 약 3000억 원 수준으로 총 가용자금이 6000억 원을 넘는다”며 “이날부터 일반 상거래 채권에 대한 지급을 재개했으며 순차적으로 전액 변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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