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단일 제철소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전남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찾았다. 여의도 면적 7배에 달하는 드넓은 부지를 지나 남쪽으로 더 달리자 총 93만 ㎘의 액화천연가스(LNG)를 담을 수 있는 거대한 흰색 탱크 6개가 줄지어 선 광양 제1 LNG 터미널의 모습이 드러났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가장 최근에 지어진 5·6호기 탱크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포스코그룹이 10여 년에 걸쳐 개발해낸 합금강 제품인 ‘고망간강’이 쓰였기 때문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 관계자는 “저장 탱크 구조는 전기밥솥과 흡사한데 콘크리트 껍데기 안에 특별한 철강 제품으로 만들어진 솥이 들어가 있다”며 “5·6호기의 경우 고망간강 후판으로 만든 솥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광양제철소에서는 이 고망간강 후판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열로를 막 빠져나온 고망간강 슬래브가 대형 압연롤을 통해 40m 길이의 후판으로 완성됐다. 후판은 광양 제2 LNG 터미널 공사 현장으로 보내져 추가로 건설 중인 LNG 탱크 7·8호기의 내벽으로 만들어진다. 내년 7·8호기가 완공되면 터미널의 LNG 저장 용량은 133만 ㎘로 늘어난다. 이는 한국 전 가구가 40일 동안 사용 가능한 난방용 가스 저장 용량에 해당한다.
보관을 위해 600분의 1로 압축해 액체화된 천연가스는 온도가 영하 163도까지 낮아진다. 일반 철판은 이 같은 낮은 온도를 견디지 못해 깨지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그동안 9%가량의 니켈이 함유된 니켈·알루미늄 합금강을 썼다. 포스코는 핵심광물로서 수급이 불안정하고 값비싼 니켈 대신 가격이 싸고 조달이 쉬운 망간을 활용한 제품을 개발했다. 기존 니켈 합금 소재와 성능은 같으면서 30%의 비용 절감 효과를 낸다. 이순기 포스코 수석연구원은 “고망간강 기술을 사용하면 원가가 절감될 뿐만 아니라 해외 기술을 적용할 때 부담하는 로열티를 낼 필요가 없어진다”고 했다.
포스코그룹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LNG 수출 제한을 완화하고 통상 협상 카드로 활발히 활용하면서 세계 LNG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LNG 수출국으로 지난해 한국의 미국 LNG 수입량은 512만 톤(전체 글로벌 수입량의 12%)을 기록했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 관세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고망간강과 LNG터미널 등을 앞세워 LNG 밸류체인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시장조사 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LNG 시장은 2030년까지 2269억 달러(약 331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망간강은 자석에 반응하지 않는 특이한 성질도 있어 초대형 변압기는 물론 잠수함과 함정, 군수용 전차 등의 스텔스(은폐) 기능을 위한 소재로도 활용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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