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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트황에게 쫄지 않는다, 왜?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챗GPT가 ‘시진핑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쫄지 않는 모습을 그려줘’라고 부탁했을 때 그린 그림. 출처=챗GPT




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올 상반기 키워드는 단연 '관세'입니다. 트럼프발 통상 리스크로 골치 많이 아프시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궁극적인 타깃은 ‘G2’의 수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입니다. 트럼프는 '메이드 인 차이나' 딱지가 붙은 모든 제품에 관세를 매길 기세로 새로운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백악관은 중국 일부 수출품에 누적된 관세율이 245%에 달한다고도 밝혔을 만큼 무자비한 관세 폭탄을 던지고 있죠.

그런데 트럼프 1기인 5년 전과 명확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중국이 미국에 쉽게 움츠러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반도체 분야에서 이 현상은 더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미국발 반도체 리스크가 커지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반도체로 보복 관세를 가한 것이 대표적이죠. 일부 미국산 반도체 제품에 대한 관세를 84%에서 125%로 인상해 미국 업계를 잔뜩 긴장시켰다가 해제하기도 했죠. (심지어 메모리 반도체는 아직도 보복 관세를 풀지 않고 그대로 매기고 있습니다.)

의외의 상황이 전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제일 당황스러운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닐까 싶습니다. 4년 전엔 자신의 말 한마디에 벌벌 떨던 중국이, 왜 크게 펀치 한 방을 날려도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 없을까.

지금부터 중국의 반도체 업계 상황을 살펴보며 어떤 점이 시진핑의 무기로 작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중국이 한국 반도체 생태계에 던지는 메시지까지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시진핑 머릿 속 “트럼프, 소·부·장에서도 이제 좀 해볼 만 할 것 같은데?”


모건 스탠리가 낸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 현황. 반도체 장비(equipment)와 낸드 플래시의 연도별 자급률 증가가 굉장히 눈에 띕니다. 반면 GPU나 CPU, D램 자급률은 상당히 낮아 향후 몇 년 간 중국의 급소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자료출처=모건 스탠리


우선 중국의 전반적인 반도체 생태계 수준을 짚고 가볼텐데요. 모건 스탠리의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에 관한 표를 보시겠습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정권 말기인 2020년과 올해 2025년을 비교해보면 재밌습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일만큼 중국의 반도체 국산화 속도가 돋보입니다.

특히 반도체 장비 분야가 흥미롭습니다. 2020년에는 단 5%에 불과했던 내재화율이 단 5년 새 16%나 증가한 21%로 점프했습니다.

중국 반도체 장비 1위 업체 나우라 뿐만 아니라 에이멕(AMEC) 등이 열심히 장비를 국산화한 결과라고 해석됩니다. 나우라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조금 더 자세히 해보려고 합니다.

중국은 반도체 장비 기술 확립에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듭니다. 최근에 취재하면서 들었던 가장 주목했던 이야기 중 하나인데요. 중국 반도체 양산 라인에 있는 미국산 장비의 껍데기를 벗겨보면 거의 대부분이 중국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고 합니다.

여기엔 두 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중국이 미국 장비사가 가지고 있는 부품의 지적재산권(IP) 침해 여부보다는 일단 ‘(좋게 말하면) 기술 습득’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고요. 베더라도 장비를 돌릴 수 있을 만큼 현지 부품 제작 수준이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또 취재 뒷이야기를 좀 더 풀어보면요. 최근 업계에서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장비를 자국에 반입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제보를 많이 받습니다. 여러 번 비슷한 정황이 체크돼서 미국 정부가 집계하는 수출 데이터를 들여다봤더니 정말 지난해 4분기 무렵부터 올 2월까지 반도체 장비 수출이 급격하게 줄어든 흔적이 보입니다. 국산화가 너무 빨리 진행된 결과인 것인지,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인지는 더 들여다봐야 하겠지만 아무튼 흥미로운 데이터인 건 분명합니다.

반도체 설계에 필수적인 EDA 툴의 성장 역시 괄목할 만합니다. 5년 새 10%p 늘었는데요. 우리는 EDA 툴 하면 케이던스, 시높시스, 지멘스 등 미국 브랜드를 떠올리는데요.

요즘 업계에서 중국 EDA 툴 역시 '쓸만하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습니다. 프리마리우스(Primarius), 엑스피딕(Xpeedic), 엠피리언(Empyrean) 등 중국 EDA 3대장이 주로 언급되는데요. 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프리마리우스는 한국 반도체 설계 기업들을 상대로도 영업하는데, 미국 업체만큼은 아니지만 '꽤 쓸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거기다가 우리가 자주 이야기하는 메모리 공급 비율도 정말 많이 컸습니다. 특히 낸드플래시의 비중이 대단히 늘었습니다. 5년 새 23%p가 증가했죠. 이건 YMTC의 성장 덕분입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D램보다 YMTC, 중국의 낸드 성장에 더욱 긴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고용량 서버에서도 점차 YMTC 활용도가 높아져 점차 중국 내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입니다.

“삼성, 우리 깐부 맞지?” 이달 시진핑 주석의 ‘최측근’인 중국 서열 6위 딩쉐샹(오른쪽 세번째) 중국 상무부총리가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공장을 찾아 상호 이익을 추구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사진= CC-TV캡처


중국의 관세 철회 대상에 메모리 반도체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이 이유에서입니다. YMTC 등 중국 현지 업체가 과잉 공급 수준으로 중국 내수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고, 게다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이 우시·시안 등 영내에 버티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마디로 "미국 마이크론 없어도 메모리는 해 볼만 하지 않겠는가"하는 판단이 녹아 있는 거죠.

단연 압도적 장비 투자와 운영 팹 개수. 자료출처=SEMI


모건 스탠리의 분석대로라면 아직 CPU는 10% 미만, AI 칩의 핵심인 GPU의 자급률은 0%입니다. 트럼프는 엔비디아의 H20 수출을 규제했던 것처럼, 앞으로 AI 칩에 대한 압박 강도를 한층 더 높이고 부속 메모리인 HBM 거래선을 조이면서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찌를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분야가 향후 승부처입니다. 중국 회사들이 압박 속에서도 하나 둘씩 국산화를 이뤄갈지, 미국의 촘촘한 그물망 속에서 고도화한 성장이 제한될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내용인 것 같습니다.

중국이 이렇게 성장할 동안…한국은 대체 뭘 한건가




중국 YMTC의 128단 낸드. 사진제공=YMTC


사실 이번 기사에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지금부터입니다.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쫄지 않는 이유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자신감과 확신에 찬 인풋(input)이 있었기에, 아웃풋(output) 또한 해볼만 하다고 느껴지는' 심플한 논리입니다. 그런데 이 기조가 말이죠. 한국 반도체 생태계에도 큰 메시지를 던집니다.

지금부터 앵글을 살짝 한국 쪽으로 돌려볼까요?

K-반도체는 현재 어떤 위치에 와 있나. 외형은 거대합니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생산 능력에서 지존의 위치에 있고,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기반으로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하는 등 관세 리스크를 굉장히 잘 이겨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삼성·SK하이닉스에서 딱 한 단계만 아래로 내려보면 우리나라가 지금 중국을 얕보는 건 고사하고 비빌 레벨이 아니라는 게 바로 체감됩니다. 반도체 장비 회사인 나우라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겠습니다.



중국 1위 나우라? 아무리 좋아봤자 기술 후진국의 변방 장비 기업 아닌가. 아닙니다.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의 대표주자인 세메스와 비교해보면 생각이 약간 달라집니다. 위 표를 보시면, 세메스의 매출은 지난 5년 동안 2조원 대 매출에 갇혀 있는 것으로 집계됩니다. 영업이익 또한 낙폭이 꽤 큰 편이라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나우라는 매년 아주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2022년부터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세메스를 따돌리기 시작했는데요. 2023년, 2024년 비교가 안될만큼 큰 격차를 벌리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ASML, 도쿄일렉트론, 램리서치, KLA 등 기라성같은 5대 반도체 장비사 바로 다음인 6위에 랭크될 것으로도 예상됩니다.

이 매출은 한국과 중국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대변해주는 예시 같습니다. 중국이 YMTC, CXMT, SMIC 같은 메이저 칩 메이커부터 반도체 뿌리까지 얼마나 전방위적으로 투자해왔고, 공격적으로 투자를 한다면 빠른 시간 안에 경쟁력을 높아질 수 있단 걸 잘 보여줍니다.

각 반도체 공정 별 반도체 장비 회사들의 장악력. 나우라, 화칭(Hwatsing)같은 중국 기업들은 보여도 우리나라 업체는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 자료출처=욜


2019년 당시에는 반도체 변방이었던 중국이 어느새 미국에 '잽'을 날릴 정도의 실력을 갖출 만큼 빠르게 격차를 줄여나간 것은 당국의 ‘매우’ 파격적인 지원 덕분입니다. 지난해 6월 중국 반도체 정부가 출범한 3기 반도체 펀드는 1기(약 20조 원)와 2기(약 40조 원)을 합친 액수를 뛰어넘는 69조 원(3440억 위안) 규모입니다. 대출이나 세액공제가 아닌 직접 보조금을 쥐어주면서 확실한 실탄을 쥐어주는 것도 특징입니다. 중국이 극자외선(EUV) 장비 개발한다는 건 그냥 비웃고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특유의 기형적인 반도체 생태계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 사태 당시에는 ‘소부장 자립화’ 프레임이 상당히 주목받았죠. 하지만 약 6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우리의 약점인 소부장 생태계는 전혀 개선되지 못했습니다.



정부에 따르면 국내 소부장 수입 의존도는 수년 째 70% 수준에서 하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삼성·SK 반도체 공장을 이루는 70%가 외국 제품이라는 얘긴데, 글로벌 시장의 약육강식 무한 기술 대결에서 굉장히 불리한 스탯입니다. 반도체 장비 분야는 2005년부터 21년째 무역 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을 만큼 경쟁력이 보잘 것 없습니다. 반도체의 근간인 실리콘 웨이퍼도 1970년부터 약 50년 내내 무역수지 적자인데, 선진 기업인 일본 시네츠, 섬코 대비 후발 기업인 국내 SK실트론 혼자만의 힘으로는 경쟁이 되지 않는 수준'이라는 게 현실적이고 냉혹한 평가입니다.



이달 우리나라 정부는 2027년까지 26조원으로 계획돼 있던 반도체 산업 관련 재정 투자규모를 33조원으로 확대하고, 이 중 소부장 투자 지원을 21조 6000억 원으로 책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건당 150억 원, 기업 당 200억 원 한도에서 반도체 소부장 기업의 신규 투자 30~50%를 지원한다는 것도 포함했죠. 그러나 주요국 업체과의 기술 격차, 개별 기업에 관한 육성 정책을 따져보면 이건 정말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지금 그나마 정부가 ‘영끌’해서 지원하기로 한 금액은 마치 코로나 펜데믹 때 시민들에게 나눠줬던 지원금처럼 임시적인 투자 보조금 성격이 강합니다. 중국처럼 기업들의 지갑에 팍팍 현금을 꽂아주는 직접보조금이 있으려면 ‘반도체특별법’이 제정돼야 하는데, 이건 언제쯤에나 통과가 될지 오리무중입니다.

또 정부는 재작년 12월에 '산업 공급망 전략회의’를 개최하고 2030년까지 주요 품목의 특정국 수입 의존도를 기존 70%에서 50%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6월에 ‘공급망 안정화 프로그램’이라는 걸 발표하기로 돼 있었는데, 어지러운 시국과 때 아닌 대선 국면으로 흐지부지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경기 이천시에 있는 SK하이닉스를 방문해 'K-반도체'를 주제로 반도체 기업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HBM 등 최고조의 반도체 기술과 화려한 반도체 팹의 모습을 보며 자부심을 느낀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요. 그가 △팹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장비들의 원산지 비율수십 년 째 열악한 경쟁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황 △과감한 투자와 제도 개선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중국의 반도체 성장 모델에 대한 이야기까지 함께 생각을 해봤다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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