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중소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연기금·공제회 등 기관투자가(LP)가 해외 부동산 투자 부실 우려로 감사원 조사 대상이 되면서다. 지난해 대형 PEF가 앞다퉈 조(兆) 원 단위 펀딩에 나서며 LP 자금을 쓸어간 것과 달리 펀딩에 실패한 중소형 PEF 입장에서는 올해도 만만찮은 해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PEF 운용사 간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소수 대형 운용사 중심으로 통합 작업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중소형 PEF 운용사들이 신규 블라인드 펀드(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고 모집하는 펀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연초만 해도 지난해보다는 경쟁 환경이 나아졌다며 펀드 조성에 자신감을 보였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블라인드 펀드 조성 경쟁에 나선 중소형 PEF 운용사는 SKS 프라이빗에쿼티(PE), 원익투자파트너스, E&F PE, 코스톤아시아(CORSTONE ASIA) 등 10여 곳 이상에 이른다.
이들은 연기금·공제회가 지난달부터 감사원의 특별 감사 대상이 된 것이 자금 마련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감사원은 지난달 연기금·공제회에 ‘해외 대체투자 특별감사’를 다시 시작한다고 공문을 보냈다. 감사원은 앞서 지난해 8월 연기금과 교직원·행정 등 8개 주요 공제회를 대상으로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현황을 살펴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KDB산업은행의 정책자금 운용에 대한 집중 감찰이 시작되면서 관련 감사도 일시 중단됐는데, 해가 바뀌어 감사가 다시 이뤄지면서 불똥이 튀고 있는 셈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소형 PEF는 펀드 총액의 절반가량을 연기금·공제회에서 투자받는다”며 “소수 인원으로 운영되는 연기금·공제회가 감사 대응에 집중하면서 펀드 출자 관련 업무는 후순위로 밀렸다”고 설명했다.
중소형 PEF 투자가 많던 새마을금고의 출자 전면 중단도 치명타다. 새마을금고는 지난해 간부들이 PEF 운용사에 출자하며 뒷돈을 받는 비리가 적발된 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투자 문제까지 불거지며 신규 출자를 전면 중단하고 경영 쇄신에 돌입했다. 새마을금고는 그간 수시 출자로 PEF 시장에 수천억 원의 자금을 공급해왔다. 업계에서는 올 하반기에나 새마을금고가 경쟁입찰 방식으로 출자를 재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소형 PEF 운용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펀드를 조성하지 못할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MBK파트너스·한앤컴퍼니 등 대형 PEF 운용사가 1조~2조 원대 블라인드 펀드를 조성하면서 LP 자금을 쓸어간 탓에 이들은 펀드 목표액을 채우지 못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8월 30일 약정액 1조 5000억 원인 엠비케이파트너스스페셜시튜에이션이호를 등록했다. 이외에 스틱인베스트먼트가 지난해 2월 16일 스틱오퍼튜니티 펀드 3개(총 1조 5802억 원), 한앤컴퍼니가 6월1일 한앤컴퍼니제4의1호와 2호(총 2조 1519억 원) 등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 시장은 매해 성장하고 있지만 실상을 보면 소수 대형 업체가 기관 자금을 독식하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기관 전용 사모펀드 약정액은 138조 8000억 원으로 2022년 말(125조 3000억 원) 10.8% 성장했다. 전체 사모펀드 수는 같은 기간 1098개에서 1127개로 2.6% 증가했다. 사모펀드 수가 늘어난 것보다 총액 증가 속도가 더 큰 것으로 소수 펀드에 자금이 집중됐다는 분석이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지난해 12월 열린 연차총회에서 “(양극화가 가속화하며) 아시아 사모펀드 시장에서 운용사 간 통합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IB 업계의 한 임원은 “국내 PEF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대형사 중심의 시장 재편이 불가피할 것”이라면서도 “차별화 투자 전략 등으로 PEF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던 중소형 운용사가 사라지는 것은 LP들의 투자 포트폴리오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 손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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