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이 방한 기간 비무장지대(DMZ) 방문을 추진했지만 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불허로 무산됐다는 보도가 나와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한 달 일정으로 지난 6월 30일 귀국한 유흥식 추기경이 통일부를 통해 방문을 신청했지만 ‘48시간 전에 승인받아야 한다’라는 절차를 어겼다는 이유로 유엔사가 승인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복수의 군 관계자에 따르면 휴가를 맞아 한국을 방문한 유 추기경의 DMZ 방문 신청은 통일부가 예정일에 임박해 이뤄졌다. 유엔사는 통상 신원 조회 등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방문 예정일 48시간 전에 사전 승인을 받도록 정하고 있다. 결국 유엔사는 방문 예정일에 임박해 이뤄진 신청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출입을 허가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유엔사는 “최근 유 추기경 방문 요청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출입을 위한 기존의 프로토콜(절차)과 일치하지 않았다”며 “유엔사는 JSA에 출입하는 모든 개인의 안전과 보안을 책임지고 있으며 이 책임을 매우 엄중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땅에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심지어 전 세계를 아우르는 종교적으로 상징성이 높은 유 추기경의 방문 신청 사례같이 유엔사가 출입 시점과 북한의 상황 등을 이유로 비(非)정치적 방문을 과도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엔사가 입맛에 맞춰 민간인의 출입 허가를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까지 들린다. 당장 지난해 5월 국방부 출입기자단이 5사단 현장 견학을 통해 최전방 감시초소(GP) 상황을 생생하게 취재해 국민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는 “현행 작전 중인 GP에 민간인의 출입은 제한된다”고 통보하며 거절했다.
서울경제신문도 올해 2월 육군을 통해 경기 파주시 공동경비구역(JSA·캠프보니파스) 내 군사분계선(MDL)과 가장 근접한 감시초소(GP)로 알려진 오울렛 초소(OP) 출입을 요청했지만 유엔사의 출입 불허로 취재에 나서지 못했다.
정부, 유엔사 ‘비군사적 DMZ 출입통제’ 손본다
주목할 점은 서울경제신문 출입 신청에 앞서 올해 1월 3일 대한민국 최북단 마을인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대성동마을 내 대성동초등학교 제 56회 졸업식에는 유엔사가 직접 국방부 출입기자단 취재를 요청하고 허가한 바 있다.
심지어 12·3 비상계엄으로 정국이 혼란스럽고 군 내부도 주요 지휘부가 직무정지 되면서 동요가 많아 북한의 오판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지난 4월에는 한미 장병을 격려한다는 명분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육군 1사단과 JSA(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 방문은 허가했다. 유엔사가 DMZ 출입 허가를 입맛에 따라 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평화적 메시지를 전하려는 종교 지도자의 방문 통제 이유로 유엔사가 (통일부의)출입 신청 시간 자체만 언급한 건 지나치게 취약한 명분”이라며 “한국 또는 한국의 인사가 먼저 (북한과)접촉하거나 유화 메시지를 선제적으로 내는 걸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서는 유엔사가 비군사적 목적의 비무장지대(DMZ) 출입까지 통제하는 것은 과도해 허가권 문제를 협의하고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도 유흥식 추기경의 DMZ 방문 불허를 계기로 유엔사가 비군사적 목적의 비무장지대(DMZ) 출입까지 통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과 관련해 허가권 보완 문제를 협의해 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유엔사의 DMZ 출입 통제권과 관련해 “DMZ 출입 문제와 MDL(군사분계선) 통과 문제에 있어 유엔사와 의견차가 많은 탓에 군의 긴박한 작전 과정에서 애로상황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정전협정상 조항을 보면 허가권과 관련해선 군사적인 성질에 속한 것으로 한정돼 있고 비군사적 성질은 (권한이) 다르다는 지적이 많아 비군사적인 DMZ 출입에 대한 제도적 보완과 개선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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