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번 주 수원 장안구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열린 세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2047년까지 622조 원의 민간투자를 통해 경기 남부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삼성전자(500조 원)와 SK하이닉스(122조 원)가 이 일대에 반도체 공장 13곳, 연구시설 3곳을 신설해 총 37곳의 반도체 공장·연구시설이 집적된 세계 최대, 최고 규모의 ‘최첨단 시스템반도체 허브’를 만들겠다는 장밋빛 구상입니다. 정부는 650조 원의 생산 유발, 총 346만 명의 직간접 고용 창출 효과를 내리라고 기대하지만, “재탕 삼탕한 금액으로 국민을 호도하는 것” “총선용 뻥튀기 정책”이라는 야당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민간과 함께 2047년까지 경기 남부에 여의도 7.2배인 2102만㎡ 면적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한 것은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주도권 확보 경쟁이 ‘클러스터 국가대항전’으로 격화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일본은 구마모토현을 반도체 산업 재건 클러스터로 조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대표 건설사인 가시마건설이 붙어 ‘24시간, 3교대’ 공사 체제를 도입하더니 올해 말 생산 개시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대만은 TSMC 신주과학단지와 주변을 묶어 ‘대(大) 실리콘밸리’ 조성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미국은 반도체지원법(일명 칩스법)을 통해 390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애리조나(인텔)부터 뉴욕(마이크론)까지 전 국토의 클러스터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삼성전자는 주력인 메모리 시장 불황에 직격탄을 맞으며 라이벌 인텔에 2년 만에 반도체 매출 선두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반면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기업 대만 TSMC는 지난해 4분기 실적 방어에 성공하면서 파운드리 분야에서 독주 채비를 마쳤습니다. 정부가 반도체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재확인한 이유일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지금 선진국들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구축하기 위해 아주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우리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혁명의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모든 인적·물적·전략 자산을 총투입해 치열한 속도전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반도체 공장을 세우면 설계, 디자인, 후공정, 연구개발 등의 생태계가 조성되고 인프라 건설, 협력업체 동반 투자로 이어져 일자리 수백만 개가 생긴다”며 “이렇게 되면 지역상권이 활기를 되찾고 전국 곳곳으로 온기가 퍼져나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 퍼주기’ 이런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소재·부품·장비 협력업체 매출 및 일자리 증대 같은 ‘낙수 효과’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김동연 경기지사는 1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622조 투자가 자그마치 2047년까지다. 앞으로 23~24년 뒤 얘기까지 포함됐고 과거 전 정부 때 투자, 작년 발표한 삼성의 용인남사 300조까지 다 포함한 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소위 민생토론회를 통해 소수 대기업에만 영향을 주는 감세안 발표, 재건축 완화, 비수도권 미분양주택 구입시 보유 주택 수에서 제외 방침 등 선심성 정책을 하면서 정치적 행보로써 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윤 대통령이) 받고 있다”며 “선거 때 말고 평소에도 경기도에 좀 오셔서 가짜 민생 말고, 재탕 삼탕 말고 진짜 민생 얘기를 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해 줬으면 좋겠다”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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