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대선을 앞두고 금융권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 모두 시장 원리와 동떨어진 금융 산업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9일 “문재인 정부는 금융 산업을 다른 산업이나 서민을 돕기 위한 도구 정도로 여기고 금융 서비스도 공짜라고 생각했다”며 “이런 기조가 이어진다면 장기적으로 금융회사들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공약은 이 후보가 내세운 일명 ‘기본대출’이다. 기본대출은 신용 등급과 무관하게 1000만 원 정도의 금액을 무담보·저금리로 장기간 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공약에는 ‘약자가 고금리를 물고 부자가 저금리를 무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이 후보의 평소 신념이 담겨 있다.
문제는 저신용자에게 흘러들어간 여신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 후보는 지난해 경기도지사 자격으로 기본대출을 추진하면서 ‘은행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원리금 상환을 도(道) 정부가 100% 보증하기 때문에 은행은 손실 위험이 없고, 또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인데 무엇이 부담이냐”며 은행들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기본대출이 어떻게 짜일지 모르지만 은행으로서는 여신 부실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는 등 막대한 부담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본대출이 국민 100만 명에게만 제공된다고 가정해도 여신 총액은 10조 원에 이른다.
여당이 추진하는 이자제한법도 금융권에는 부담이다. 이 후보는 현재 연 20%인 최고 금리를 11.3~15.0% 수준까지 낮추는 게 적정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저금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이 없다면 국가가 최후의 대부 업체가 돼야 한다는 게 이 후보 측 대출 공약의 뼈대다. 그러나 국가가 잠재 부실 위험이 높은 대출을 무한히 대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결국 저신용자들의 고통이 더 커질 수 있다. 실제 대출 최고 금리가 지난 2014년 34.9%에서 지난해 20.0%까지 내려가는 동안 대부업 이용자 수는 약 268만 명에서 123만 명으로 급감했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줄어서가 아니라 불법 사채 등 비(非)제도권 시장으로 밀려난 사람이 늘어났을 것으로 금융권은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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