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놓는 경제 대책을 평가하는 기준은 뭘까. 상황에 따라 답이 갈릴 수 있겠으나 정책의 정당성, 실효성, 수용성, 지속 가능성 등 네 가지가 핵심 평가 기준이 될 것 같다. 정부 정책에 명분(정당성)이 있어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고(수용성) 동시에 실질적 효과를 내야 하며(실효성) 무엇보다 지속 가능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6·27 부동산 대책은 최소한 80점은 되는 대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더 이상 집값이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전 국민적 기대감 속에 대책 발표 직후 전체 시장이 안정되는 강력한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번 정책을 주도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관료적 역량도 주효했다. 그는 6월 6일 실장 자리에 오른 뒤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기까지 20여 일의 기간에 매일 집값 동향과 부동산 정책 방향을 직접 보고받으면서 정책 설계를 주도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획재정부 1차관을 연이어 지내면서 ‘찔끔’ 대책으로는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는 학습 효과를 체득한 것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남은 한 가지 문제는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다. 주택대출 한도를 6억 원으로 묶어버린 이번 정책은 일종의 대증요법으로 봐야 한다. 길어야 1년이지 2년·3년씩 쓰기 어렵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진단이다. 서울경제신문이 국내 이코노미스트 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부동산 대책 점수가 5.65점(10점 만점 기준)에 그친 것이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부동산 시장을 두고 “해피 엔딩이 금방 올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이다. 작게 보면 공인중개업소, 이사, 인테리어 업체들부터 크게 보면 은행·건설사들까지 대출 제한 대책의 직접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될 텐데 하염없이 돈줄을 묶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우리 민족의 핏줄에는 부동산이라는 DNA가 흐르고 있다. 여기서 DNA는 오랜 세월 누적적으로 기억된 학습 효과다. 지난해 서울역사박물관이 내놓은 ‘조선 후기 부동산 매매 문서’를 보면 효령대군의 후손이 보유했던 종로 기와집이 18세기 동전 약 600냥에서 19세기 2만 8000냥으로 47배 뛰어 매매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 가치에 환산해서 견줘 보면 4000만 원이었던 집값이 약 19억 원으로 뛴 것이다.
튀어 오르는 집값을 이대로 둬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집값 상승을 억누르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야기한 것처럼 “지대(地代) 추구의 경제에서 생산성 분야로 돈이 흐르는 경제”를 만들려면 민족의 DNA를 뜯어고친다는 각오로 중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부가 앞으로 내놓을 부동산 대책의 요체는 세금이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DNA를 바꿀 수 있는 유전자 화학물질은 세금 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출이야 받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세금은 무덤에 들어가지 않는 한 끊임없이 목을 옥죄기 때문이다.
개인적 견해로는 75세 이상 고령층의 장기보유주택에 대한 양도세 완화를 제안하고 싶다. 하나금융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0세 이상 고령층의 자산 85%가 부동산에 묶여 있다. 소액 1주택자라면 양도세 부담이 높지 않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2채 이상 집을 갖고 있거나 1채만 있더라도 점점 집값이 올라 팔고 싶어도 못 판다는 고령 인구가 적지 않다. 이 돈이 일부만 시장에 풀려도 우리 경제에 강력한 성장 엔진이 될 것이다. 집값 안정 효과는 덤이다. 이때 양도세 완화와 동시에 보유세 인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1주택 서민의 생계비가 부담스럽다면 20억 원 이상 고액 주택에 대해서만 인상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이렇게 해야 보유세는 낮고 양도세는 높은 우리나라의 비정상적 세제 구조를 고칠 수 있다.
물론 집권 여당 입장에서는 ‘부자 감세’라는 공격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민주당이 내세웠던 정치 철학과도 정반대의 길이다. 하지만 이 정도 결기 없이는 한민족의 부동산 DNA를 개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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