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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떠난 500일, AI로 버텼다…공백 메운 '디지털 레지던트'
사회 사회일반 2025.08.04 17:32:144일 서울 양천구의 이대목동병원. 박준범 이대목동병원 부정맥센터장(순환기내과 교수)이 부정맥 의심 증상으로 응급실을 통해 내원한 A 씨의 심전도(ECG) 검사 결과를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 모니터의 전자의무기록(EMR)에서 환자의 주요 병력을 확인한 박 센터장의 시선이 또 다른 모니터 속 영상으로 향한다. 왼쪽 모니터에는 14일 이내 치명적인 부정맥인 심방세동 및 심방조동이 발생할 확률이 92%에 달한다는 분석 결과가 제시돼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부정맥 예측 솔루션 ‘맥케이(Mac’AI)’가 A 씨의 ECG 검사 결과를 토대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부정맥 발생의 위험과 시점을 분석한 것이다. 이를 확인한 박 센터장은 A 씨에게 실시간 ECG 모니터링이 가능한 웨어러블 디바이스 착용과 함께 입원 처방을 내렸다. 흔히 부정맥 진단을 ‘두더지 게임’에 비유한다.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부정맥을 10초 남짓의 표준 ECG 검사로 잡아내기기가 쉽지 않아서다. 시너지에이아이가 개발한 맥케이는 부정맥 의심 환자의 ECG를 AI로 분석해 향후 14일 이내 발생할 부정맥의 시점을 예측한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언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근거를 제공하고 궁극적으로 뇌졸중 등 치명적인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다. 맥케이는 정상 ECG 데이터만으로 부정맥 27종의 발생 위험을 91.3%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는 확증 임상 결과를 토대로 2024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 2등급 의료기기 허가를 받았다. 올 4월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대상으로 선정돼 20여 개 대학병원에서 순차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2주라는 짧고 명확한 부정맥 예측 기간을 제시할 수 있는 기술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의료 AI 대표 기업 템퍼스AI조차 1년 이내 심방세동 위험을 예측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박 센터장은 “이제 AI가 단지 위험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시점을 제시해 의료진의 고민을 덜어주는 시대가 왔다”며 “2주 예측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진료 방식의 흐름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AI는 X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영상 검사를 판독해 의료진의 진단을 보조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치료 의사 결정을 돕는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문자·그림·영상 등 다양한 유형의 정보를 동시에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는 멀티모달 AI와 대규모언어모델(LLM)이 보편화되면서 질병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가까운 미래에 어떤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은지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8년 4건에 불과했던 의료 AI 제품은 2021년 102건, 2022년 149건, 2023년 213건 등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 추진에 반발한 전공의 1만 3000여 명이 병원을 떠나면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뉴노멀’ 상황은 진료 현장의 혁신을 가속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가장 먼저 변화를 맞은 곳은 의무 기록 작성 현장이다. 그동안 의료진은 하루에도 수십 건씩 쌓이는 입퇴원 서류와 각종 기록지, 보험 청구 문서 작성 등 진료 외 업무를 수행하느라 2~3시간을 허비해왔다. 하지만 새로 도입된 AI 기술은 타이핑 없이 음성인식으로 실시간 의무 기록을 작성하도록 돕고 진료 문서 초안도 작성해준다. “500일 넘게 이어져 온 의료 공백을 버티게 해준 동료”라는 게 의료 현장 관계자들의 평가다. 각종 행정 업무를 AI가 떠안으면서 부담이 줄어든 의료진이 환자에게 더 집중하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연세의료원은 지난해 11월부터 환자의 진료 기록 작성을 지원하는 AI 기반의 ‘와이낫(Y-Knot)’을 도입했다. 전공의 공백으로 남은 의료진의 업무 부담이 커지자 온프레미스(내부구축형) LLM 기반의 자동 임상 문서 초안 작성 시스템을 자체 개발했다. 응급의학과 퇴실기록지, 마취통증의학과 수술 협의 진료회신서, 퇴원기록지 등의 초안이 자동으로 작성되기 때문에 담당 의사가 확인 후 수정만 하면 된다. 유승찬 연세대 의과대학 의생명시스템정보학과 교수는 “시범 도입 후 퇴실기록지 1건 작성에 걸리는 시간이 약 66.4%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기존 의료진의 업무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AI 활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어 내부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은 국내 최초로 의료진과 환자 간 대화를 실시간 기록하고 요약해 의무 기록 작성까지 자동으로 시행하는 AI 기반 진료 음성인식 시스템을 구축했다. 올 3월부터 운영을 시작해 현재 소화기내과·신경과·종양내과 등 약 20개 진료과에서 의사·간호사·임상심리사 등 다양한 직군이 활용 중이다. 음성인식 정확도는 평균 96.1%, 요약문 정확도는 92.8%에 달한다. 김영학 서울아산병원 디지털정보혁신본부장은 “반복적인 기록 업무의 자동화로 의료진의 업무 효율성과 환자 중심 진료 환경을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며 “심폐소생술 등이 필요한 응급 상황에서 긴박한 의료진의 대화를 실시간 텍스트로 변환해 의무 기록으로 자동 저장하고 추후 활용할 수 있어 환자 안전을 지키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빅테크 'AI의사' 공세에…韓 '온프레미스 LLM'으로 반격
사회 사회일반 2025.08.04 17:34:27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인간 의사를 뛰어넘는 의료 인공지능(AI) 모델을 개발했다고 발표해 의료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세계적인 의학 저널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실린 진단이 까다로운 질병 사례 304건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실험한 결과 MS의 ‘AI 진단 오케스트레이터(MAI-DxO)’는 최대 85.5%의 진단 정확도를 구현해냈다. 반면 인간 의사들은 평균 20%를 맞히는 데 그쳤다. 의사 역할을 하는 5개의 AI 에이전트들이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제미나이’ 등 주요 AI 모델에 질의하는 방식으로 전문의들의 치료 방안 논의 과정을 모방한다. MS는 MAI-DxO가 비용을 의식하도록 설계돼 상용화될 경우 각국의 보건의료 비용 재정을 절감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헬스케어 업종은 구글·MS 같은 빅테크 기업들에 장기간 안정적 매출을 안겨줄 수 있는 매력적인 수익원이다. 시장조사 기관 마케츠앤드마케츠는 글로벌 AI 헬스케어 시장이 연평균 41.8%씩 성장해 2030년 1818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한국은 우수한 정보통신기술(ICT) 역량과 양질의 의료 데이터 등을 토대로 글로벌 평균치를 크게 웃도는 50.8%의 연평균성장률(CAGR)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의료기관들도 대규모언어모델(LLM) 자체 개발에 한창이다. 서울대병원은 올 3월 3800만 건의 전자의무기록(EMR),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유전체 데이터 등을 가명화해 학습시킨 ‘한국형 의료 LLM’을 완성했다. 기존의 의료 LLM은 미국 등 서구권의 의료 지식에 최적화돼 있고 한국어로 된 의료 텍스트나 국내 의료법·진료지침 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한림대의료원은 코난테크놀로지와 손잡고 전담 LLM을 탑재한 생성형 AI 플랫폼 ‘HAI(Hallym Artificial Intelligence)’를 구축했다. 클라우드에 의존하지 않고 기관 내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온프레미스 방식은 민감 정보를 다루는 의료기관의 디지털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지표로 꼽힌다. 윤희성 학교법인 일송학원 이사장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의료 인력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이번 HAI 개발은 의료 현장의 변화를 이끄는 의미 있는 전환점”이라며 “AI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의료 현실에 맞게 적용하고 이끌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신의료기술평가 유예로 '의료 AI' 진입 문턱 낮춰
사회 사회일반 2025.08.04 17:33:18현재 국내에서 개발된 의료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들은 대부분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제도를 활용해 시장에 진입한다.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제도는 안전성은 확인됐으나 유효성에 대한 임상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의료기술에 대해 평가를 유예해 임상 현장에서 비급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한시적으로 시장 진입을 허용해 평가에 필요한 근거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임상 현장에서의 실사용 경험을 축척하고 매출 발생을 통해 시장성을 입증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유예기간은 기본 2년, 이후 최대 1회 연장을 통해 최대 4년까지 가능하다. 뷰노(338220)가 개발한 ‘뷰노메드 딥카스’는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제도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 딥카스는 일반 병동에 입원한 환자의 24시간 내 심정지 발생을 예측해 의료진의 선제 대응을 돕는 솔루션이다. 2022년 AI 의료기기 중 국내 최초로 유예 제도 적용을 받아 2023년부터 비급여 형태로 공급돼 현장 경험을 쌓고 있다. 딥카스는 일회성 매출이 아닌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비즈니스 모델이다. 의료 현장의 실사용 건수에 비례해 병상당 일 단위로 비급여를 청구한다. 뷰노는 지난해 딥카스 단일 제품으로만 100억 원 상당의 매출을 올렸다. 현재 상급종합병원 15곳을 포함한 84개 병원에서 딥카스를 활용하고 있다. 최근 신의료기술평가 유예기간이 2026년 7월 31일까지 연장됐다. 다만 의료계 현장에서는 의료 AI 발전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비급여 처방이 가능한 경우에만 의료 AI 도입이 활성화되는 구조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실제 진료에 활용하려면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과의 통합이 필수적인데 관련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도 병원들의 AI 도입을 막는 허들로 작용하고 있다. AI 기반 건강관리 플랫폼 헬미닥을 창업한 박형준 시화병원 호흡기내과장은 “늘어나는 의료 수요에 대응하려면 의료 생산성의 획기적인 향상이 필요하다”며 “LLM 기반 AI의 적극적인 도입과 활용이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AI 기술이 현장에서 먼저 활용되고 검증될 수 있도록 혁신 친화적 규체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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