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불공정 탈세 혐의가 큰 중견기업 사주와 고소득 대재산가에 대한 전방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대기업·대재산가에 이어 중견기업 사주일가로 범위를 넓히면서 본격적인 ‘기업 사정’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국세청은 7일 중견기업 사주일가, 부동산 재벌, 고소득 대재산가 등 95명에 대해 전국 동시 세무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숨은 대재산가(히든 리치)’라고 불리는 이들은 대기업과 달리 정기 순환조사와 기업공시 의무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국세청은 조사 대상 과세 기간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기존 기업별 조사 방식과 달리 이번에는 관련인 선정과 과세기간 설정 등 조사범위의 폭을 넓혀 엄정하게 검증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과거 주로 활용했던 개인별 재산·소득자료, 외환거래 등 금융정보, 내외부 탈세 정보뿐만 아니라 사주일가의 해외 출입국 현황, 고급별장·고가미술품 등 사치성 자산 취득 내역, 국가 간 정보교환 자료 등을 종합 분석해 조사대상자를 선정했다. 중견기업 사주일가 그룹에 대해서는 300억원 이상 재산 보유를 기준으로 분석했고 부동산 재벌은 자산 1,000억원 이상, 고소득 대재산가 그룹은 자영업자와 전문직종 같은 자수성가형 부자 중 100억원 이상 보유를 기준으로 했다. 조사 대상 95명의 재산은 총 12조6,000억원이다. 1인당 평균 1,330억원으로 재산 유형별로는 주식이 1,040억원, 부동산이 230억원이다. 나머지는 이자·배당 등 금융자산으로 추정됐다. 특히 5,000억원이 넘는 대재산가도 7명이나 됐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31명으로 가장 많았고 건설업(25명), 도매업(13명) 등의 순이었다.
국세청이 밝힌 주요 혐의 사례를 보면 한 법인의 사주 A씨는 해외여행 및 호화 사치품 구매에 법인카드를 사용했고 해외 거래처 용역대금을 부풀려 송금한 뒤 자금을 돌려받아 사주 자녀의 유학비용과 해외체류비에 썼다. 또 다른 사주 B씨는 자신이 소유한 개인 사업체를 수출거래 중간에 끼워 넣는 수법으로 기업자금을 변칙 유출해 가족의 해외부동산 취득자금과 자녀 유학비용으로 사용해 과세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되기도 했다. 이들은 세무법인이나 회계법인, 로펌 등의 자문을 구해 거래구조를 설계했던 것으로 국세청은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세청이 대기업·대재산가, 고소득사업자, 역외탈세, 민생침해 탈세 사범 등으로부터 추징한 탈루 세금은 10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번에 중견기업 등 ‘숨은 대재산가’로 범위를 확장하면서 ‘기업 사정’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업계에서 나온다. 국세청은 앞으로도 대재산가 그룹의 불공정 탈세행위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국세청은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 기업 사주의 횡령·배임 등 중대한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검찰·공정거래위원회 등 유관기관에 통보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계획이다.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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