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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CEO의 임기

■황정원 마켓시그널부장

韓선 임기 5년 넘는 수장 드물어

단기 성과 급급…긴 플랜 못 세워

장기 실적 낼만한 환경 조성해야

황정원 마켓시그널부장




지난해 은퇴한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의 최고투자책임자(CIO) 크리스토퍼 에일먼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CIO 중 한 명이다. 그는 미국 내 운용 규모 2위 공적연금에서 24년을 CIO로 활동했다. 에일먼은 퇴임 후 글로벌 컨설팅그룹 맥킨지와의 인터뷰에서 “2년마다 변화를 주지 않는,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장기적인 의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사회를 위해 자산관리 비용과 파트너십 비용 등 10년간의 재무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미국 CIO의 평균 재임 기간은 약 6.33년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5년 이상 조직을 이끌고 있는 CIO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실적과는 무관하게 정권이나 이사장 교체에 따라 흔들리는 구조여서다. 통상 부동산 등 대체투자 성과는 5년이 지나야 나오는데 실적 반영조차 힘든 것이다. 그나마 올해 허장 대한지방행정공제회 CIO가 3년 더 자리를 이어가게 됐다.

서원주 국민연금 CIO와 전범식 사학연금 CIO는 연임에 성공했으나 기간은 단 1년이다. 다시 기회를 받더라도 1년씩 매번 평가를 받아야 한다. 외부에서 와 첫 1년을 조직 파악 등에 쏟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 플랜을 세울 여건은 없다시피한 셈이다. 외부에서는 긴 안목으로 수익을 내라고 요구하는데, 정작 단기 성과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서 CIO의 경우 3년 연속 최대 수익률을 기대해볼 만한 여건인데도 새 정부 들어 이사장이 교체되는 상황이어서 사실상 올해까지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공모 절차가 진행 중인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는 벌써 내정자가 있다는 설이 들린다.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로 눈을 돌려보자. 은행연합회장을 역임한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은 5연임을 하며 14년을, 박종복 전 SC제일은행장도 10년을 맡았다. 이들 모두 외풍을 비교적 덜 맞는 외국계 은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가 올해 5연임으로 10년째 수장직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시중은행에서는 은행장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임기 2년에 1년 연임으로 고작 2~3년일 뿐이다. ‘관치 금융’ 그림자 속에 정권에 따라 금융지주 회장의 거취가 들썩이고 지주 회장은 또 후계자가 치고 올라올 타이밍이 되면 싹을 잘라버리기 때문이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일벌레’였던 윤종규 전 KB금융그룹 회장은 특이한 케이스다. 3연임을 했던 그는 2014년 취임 이후 9년간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리딩금융그룹’ 지위를 굳히는 데 막대한 역할을 했다. 손해보험·증권·생명보험 분야 인수를 통해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강화했고 5조 원대 순이익을 올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실적도 좋았지만 그 역시 정권이 바뀐 뒤 ‘용퇴’를 결정했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본격적인 CEO 인선이 시작됐다. 항상 외부 인사가 차지했던 산업은행 회장과 수출입은행장에 ‘내부 출신’을 선임한 것은 상당히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제 관심은 민간 금융사다. 임기 만료를 앞둔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의 연임 여부에 시선이 쏠려 있다. 또 지난해 외부 ‘낙하산’ 인사를 막아내고 선임됐던 윤병운 NH투자증권 사장도 역대 최대 실적에도 다시 연임 테스트를 앞두고 있다. KB증권 김성현·이홍구 대표,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대표, 장원재 메리츠증권 대표, 오익근 대신증권 대표도 곧 임기 만료가 된다. 이들 중 대다수는 연임을 해도 1년짜리 임기를 더 보장받을 뿐이다.

콜로라도주 연금 CIO가 미국 주 연금 CIO를 대상으로 학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CIO의 근속 연수가 오래될수록 연금의 운용 실적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성과 시장 신뢰가 따라준다면 장기적인 실적을 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퇴임하는 자리에서 “3·6년마다 바뀌는 CEO 체계에서 장기 계획을 세우고 성과가 서서히 나오는 투자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윤종규 전 회장의 일침을 곱씹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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