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판결이 난 뒤 생산 차질 물량만도 8만5,000대에 달합니다.”
박한우(사진) 기아자동차 사장이 정부를 향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통상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국내 완성차 공장인 기아차조차도 공장 가동에 부담을 느낀다는 호소다. 통상임금 파동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조선·철강 등 주력 제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23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박 사장은 지난 14일 열린 자동차산업발전위원회에서 정부 참석자들에게 “통상임금 판결 이후 늘어난 인건비 탓에 잔업과 주말 특근을 축소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위원회는 국내 완성차 업계와 부품 업계 대표들이 업계의 애로사항을 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정부 인사를 초청한 자리였다.
기아차는 지난해 10월 통상임금 1심 선고에서 패소한 뒤 사실상 감산(減産)에 들어갔다. 통상임금 1심 선고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가 통상임금으로 인정됐기 때문에 상급심에서 판결이 확정되면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계산되는 심야·연장·특근·잔업·휴일·연차 수당도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기준 기아차 노조원은 한 해 월 기본급의 750%에 해당하는 상여금을 받는데 상여까지 통상임금에 추가되면서 연간 기준 통상임금과 연동 수당들은 50% 정도 높아진다. 기아차 근로자들의 평균임금은 지난해 기준 9,300만원 수준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에서도 인건비가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여기에서 더해 통상임금까지 높아지게 되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는 게 기아차의 판단이었다.
문제는 특근과 잔업을 줄이면서 생산 탄력성을 잃었다는 점이다. 완성차 업체는 매년 말에 이듬해 생산량을 큰 틀에서 잡아두지만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판매량을 반영하기 위해 월별로 생산량을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기아차의 경우 예상보다 판매량이 늘어 생산량을 늘리려 해도 인건비 부담이 발목을 잡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아차가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모델별로 사정은 조금씩 다르다”며 “신차가 나와 수요가 급증할 때 물량을 더 찍어내려 해도 통상임금 탓에 라인 가동률을 높이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고민 끝에 지난달 중단됐던 생산 특근 운영을 다시 재개하기로 했지만 늘어난 인건비 부담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피해를 본 것은 사측만이 아니다. 추가 근로가 사라지면서 노동자들은 기존에 받던 수당조차 받지 못한다. 박 사장은 이날 회의에서 “특근과 잔업이 사라지면서 직원당 연 700만원 수준의 임금이 사라졌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부터 근무한 직원들은 판결에서 최종 승소할 경우 수천만원에 달하는 미지급 수당을 소급받을 수 있지만 연차가 낮거나 새로 입사할 직원은 특근과 잔업이 줄어들며 기대 임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통상임금으로 인한 가동률 하락은 가뜩이나 어려운 부품업체에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통상임금 파동은 기아차뿐만 아니라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조선소와 철강업체도 잇따른 통상임금 이슈에 몸살을 앓고 있다. 현대제철은 최근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패소하면서 3·4분기 당기순이익이 기존 1,929억원에서 381억원 순손실로 적자 전환했다. 재계는 주력 제조업 전반이 부진의 늪에 빠진 만큼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고임금 문제로 활력을 잃어가는 산업이 적잖은데 법원에서 중대한 위기를 야기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