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살과 5살 두 자녀를 둔 직장인 김모(41)씨는 요즘 주식 시장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결혼 전 데이트레이딩으로 재미를 본 그는 7년 만에 찾아온 강세장이 주식으로 돈을 불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외벌이로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자녀 교육비와 집 대출금, 생활비 등을 제외하면 주식에 투자할 여윳돈을 마련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리스크를 지고 뛰어들기도 힘들다. 김씨는 오늘도 팍팍한 가계 살림에 붉게 물든 주식 시황을 물끄러미 쳐다만 본다.
코스피가 2,400시대를 열며 강세장에 진입했지만 개미(개인투자자)의 투자 심리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6월 한때 1조원 이상을 순매수하며 주식 시장으로 귀환할 듯 보였던 개미들은 코스피가 오르자마자 차익 실현으로 원금 찾기에 바쁘다. 연일 신기록을 쏟아내는 이달에는 421억원을 팔았다. 국내 주식형 펀드도 8거래일째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주가는 계속 오르는데 개인들은 여전히 주식투자를 멀리하거나 그나마 갖고 있던 주식과 펀드를 처분하기에 바쁘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①가계 부채의 덫에 걸려 주식시장 섣불리 못 뛰어들어
증시가 7년 만에 박스피를 돌파하고 최고치를 경신해도 개인은 잠잠하다. 개인이 주식투자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가계부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가계신용잔액은 1,359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1% 증가했다. 지난 14일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1,512조6,223억원)의 90%에 이른다. 가계신용은 일반 가정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이나 외상으로 물품을 사고 진 빚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코스피가 박스권에 머물렀던 2011~2016년 가계신용의 연평균 증가율은 8.1%로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4.42%)을 두 배 웃돌며 가파르게 불어났다. 3월 말 기준 소득 대비 가계대출비율(LTI)은 205.5%다. 2년 동안 소득을 고스란히 모아도 빚을 못 갚을 만큼 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 시장을 기웃거릴 여유가 없다. 김학균 미래에셋대우 투자분석부장은 “가계의 부채 증가로 주식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는 표현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②실질 소득도 감소해 주식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해
가계부채가 늘어도 소득이 늘면 주식으로 눈을 돌려볼 만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4분기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득은 447만4,0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1.2% 감소했다. 전년 대비 가계의 월평균 실질소득 증가율이 2013년부터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가계부채 압박 속에 소득이 줄어드니 가계 실질소비지출도 2014년 4·4분기 이후 9개 분기 연속 감소세다. 지난해 4·4분기 실질소비지출은 -5.1%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었던 2009년 1·4분기(-7.3%)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전체 가구의 평균 소비성향이 하락하는 가운데 그동안 상대적으로 높은 평균 소비성향을 보였던 40대와 60대의 감소 폭이 큰 것도 주식 시장에는 악재다.
③부동산은 주식시장의 적
14일 기준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말 대비 19.16% 오르며 2010년(21.9%) 이후 7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20.08%(262조원) 불어났다. 하지만 절대적인 규모로 보면 우리나라 GDP를 두 배 이상 웃도는 부동산에 못 미친다. 한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주택 시가총액은 전년보다 220조원(6.3%) 증가한 3,732조222억원이다. 우리나라에서 2년 동안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모두 합쳐도 주택가격 총액에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다. 코스피가 박스권(2011~2016년)에 머물 때 시총이 266조4,412억원 증가한 데 비해 주택의 시총은 779조5,277억원 불어났다. 한국 사회에서 오랜 기간 누적돼온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만들어낸 단면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식 시장이 경제 규모에 비해 성장하지 못했던 것에는 부동산 시장으로의 쏠림 현상도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④주식에 대한 피해 의식 증시 입성 막아
늘 고점에서 물렸다는 학습효과도 개인들의 증시 입성을 막는 요인이다. 6년간 지속됐던 박스권 장세를 경험한 개인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지금의 장세가 두렵기만 하다. 언제 또 추락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코스피가 2,400시대를 열며 강세장을 이어가지만 국내 주식형 펀드(ETF)에서는 4일부터 8거래일 연속 자금이 순유출되고 있다. 지난해 말 대비 코스피 시총이 262조원 늘어나는 동안 증시 부동자금은 107조원에서 111조원으로 4조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올 들어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10조원 넘게 사들였고 기관은 대형주 위주의 투자로 상승장에서 쏠쏠한 수익을 얻고 있지만 개인들은 여전히 눈치만 보는 셈이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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