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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기재부의 나라는 없다

서민우 경제부 차장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경제 관료가 ‘이게 기획재정부의 나라냐’며 한탄했다. 과도한 권한을 비판하는 말이 아니었다. 새 정부 들어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조직의 초라한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한때 ‘경제 컨트롤타워’로 불리며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하던 기재부는 이제 인사에서도, 정책에서도, 협상에서도 모두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인사 패싱이다. 이재명 정부 대통령실 참모진이 거의 갖춰진 가운데 유독 기재부 1급이 전통적으로 맡아오던 경제성장수석실 성장경제비서관 자리만 공석이다. 반(反)기재부 기류 속에서 그나마도 금융위원회 출신이 갈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무역 협상에서도 존재감은 옅었다. 최근 한미 무역 협상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최종 타결을 위해 미국에 갔지만 현지 브리핑을 앞두고 핵심 내용은 이미 대통령실이 발표했다. 4월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가 줄라이 패키지를 직접 발표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예산실의 힘도 빠졌다. 이 대통령은 경기지사 시절 기본소득과 기본주택에 반대하던 당시 기재부 장관을 향해 ‘이게 기재부의 나라’냐고 쏘아붙였다. 불신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 예산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산실장이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마다 직접 참석해 발언을 메모한다. 12조 원 규모의 민생 지원금에 보편·차등 결합안을 낸 것도 예산실이다. 예산실의 뻣뻣함이 사라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그는 공직사회를 ‘로봇 태권V’에 비유하며 조종석에 철수나 영희 중 누가 앉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과거 기본소득 도입이나 전국민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을 놓고 기재부를 비판했지만 최종 결정권은 당시 대통령에게 있었다.

13일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기재부 예산 기능 분리안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조직 개편과 관계없이 기재부의 권한과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그럼에도 반도체 100% 관세 부과,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협상, 내년도 예산 편성, 경기 침체 대응 등 과제는 쌓여 있지만 무력감만 커지고 있다.

‘이게 기재부의 나라냐’는 말은 이제 현실과 맞지 않는다. 중요한 건 조직을 어떻게 개편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을 어떻게 ‘일하게’ 만드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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