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기업과 기관들이 인공지능(AI) 전용 반도체인 AI칩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그 개발 방향과 원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아지게 됐다. AI칩의 세부기술은 연구주체마다 제각각이지만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다. 바로 전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 해법은 인간의 신경세포처럼 정보를 처리하는 신경칩 개발에 달려 있다.
인간의 신경이 얼마나 에너지 효율적인지는 일반 스마트폰과 인간의 두뇌를 비교해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신영수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가 지난해 가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갤럭시S3 스마트폰이 4.9㎾h의 에너지를 써야만 처리할 작업을 사람의 뇌는 불과 0.47㎾h로 마칠 수 있다고 한다.
왜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할까.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반도체칩이 불필요하게 복잡한 계산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강성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지능형반도체연구본부장은 “스마트폰이나 개인용컴퓨터(PC) 등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칩(AP·CPU·GPU 등)은 2진법으로 고도로 정밀한 계산을 하기 위해 ‘부동소수점 계산’이라는 복잡한 연산 작업을 하는데 이것이 엄청난 전력과 시스템 자원을 소모한다. 문제는 해당 칩이 이런 복잡한 연산 작업이 필요 없는 정보를 처리할 때도 부동소수점 계산을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손가락만 까딱하면 될 일을 온몸을 써서 처리하는 셈이다. 반면 사람의 두뇌가 사물의 시각정보나 인간의 음성정보 등을 패턴별로 분류해 처리하는 데는 부동소수점 계산과 같은 작업이 필요 없기 때문에 최소한의 에너지만으로도 인지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인간을 닮은 AI용 신경칩은 불필요한 연산 작업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개발 방향을 잡고 있다. 구글의 AI 소프트웨어 전문가인 굽타 수욕 박사도 지난해 분석한 자료에서 불과 8비트(Bit) 정도의 연산능력이면 인공신경망에 충분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물론 부동소수점 연산 기능을 제약하면 덧셈·뺄셈·나눗셈·곱셈과 같은 간단한 계산을 넘어서는 복잡한 데이터 처리가 어려워진다는 난점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기술인들은 데이터를 근삿값으로 변환하거나 연산 과정을 단순화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2020년 상용화할 토종AI칩의 성능
칩 크기 | 소모 전력 | 전자두뇌(코어) 개수 |
가로12㎜, 세로 12㎜ | 1W 미만 | 256개 이상 |
정부가 오는 2020년까지 기술 개발 및 상용화에 나서기로 한 토종 AI칩도 기본적인 절전 원리는 앞선 방식과 같다. 여기에 더해 AI칩이 스스로 에너지 소모량과 동작 속도를 최적 수준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적용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효율을 지닌 제품을 만들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해당 기술이 완성되면 토종 AI칩의 전력소모량은 1W 미만을 기록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효율을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같은 저전력기술에 더해 정밀한 회로집적 제조기술이 더해진다면 토종 AI칩의 상용화 전망은 한층 밝아지게 된다. 이미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AI칩을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정밀제조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삼성은 현재 가로, 세로 각각 12㎜인 칩에 160억개의 트랜지스터를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초미세공정을 완성한 상태다. 미국 시스템반도체 업체 엔비디아가 개발 중인 AI칩이 약 150억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중하는 수준인데 우리는 이미 이를 훨씬 넘어선 기술을 완성했고 다음 세대 기술을 넘보고 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용 반도체인 AP칩을 독자 생산하고 있지만 그 원천기술은 미국 반도체 설계 업체 ARM의 것을 이용하고 있어서 적지 않은 액수의 지적재산권 사용료 등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가올 AI칩 시대에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원천기술을 확보해 해외에 로열티를 주지 않도록 하겠다”고 토종 AI칩 개발의 배경을 소개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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